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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명)

명나라말기의 화폐전쟁

by 중은우시 2013. 4. 27.

글: 이동군(李冬君) 

 

명나라중엽이래, 구라파제국은 돛을 달고 동쪽의 중국으로 몰려왔다.

유럽인들은 백은(白銀)을 가지고 온다. 그때 중국은 막 백은화폐화를 시작한 때였다.

포르투갈인들이 먼저 와서 마카오에 자리를 잡고, 중국과 일본을 왕래했다. 일본에서 수입한 백은을 중국에 수출했다. 스페인인들도 와서 여송(呂宋, 필리핀)을 점령하고 아메리카에서 백은을 가져왔다. 세계의 2대백은산지는 모두 최대한 백은을 채굴했다.

명나라는 은본위였고, 재정개혁을 하면서, "일조편법"으로 세금을 거두었다. 실물을 모두 은량으로 환산한 것이다.

왜 "은량제"를 하고 "은본위제"를 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백은이 주화폐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양을 재어서 사용하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표준적인 화폐주조형식을 가지고 갯수에 따라 유통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용때는 양을 쟀고, 냥(兩)을 단위로 했다. 비록 은량제는 이미 낙후된 것이지만, 어쨌든 귀금속을 주화폐로 한 것이다. 귀금속을 화폐로 하면 화폐에 독립적 가치가 있다. 이전이 소위 전법, 초법은 모두 권력이 화폐를 지배하는 것이다. 화폐가 나타내는 것은 국가권력이고, 그 자체의 가치가 아니다. 은폐는 다르다.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지고 유통되는 것이고 신용은 국제적인 지급능력에 의지한다.

은량졔는 은을 국가재정이 명문으로 삼은 것이다. 일단 백은이 유실되면, 국가의 재정수입은 완성하기 어렵다. 백은국제화는 중앙집권도 좋고, 군주전제도 좋고, 어떻게 백은공급을 보장하겠는가. 백은유통을 장악하려면 국제시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명나라말기, 백은이 급격히 감소한다. 왕조는 유실에 놀라고, 은량제는 동요한다. "일조편법"을 시행하기 어려워진다. 백은부족은 국제금융위기를 불러왔다. 그리고 명말의 재정위기도 몰고 온다. 이어서 다시 경제위기와 사회위기가 나타났다.

백은이 왜 부족하게 되었는가? "공급부족"이다. 왜 공급부족인가? 이유는 "금은 비싸고 은은 싸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금본위이다. 가치가 덜어진 백은으로 중국의 상품을 사갔고, 금은의 가격차이를 이용하여 중국의 황금을 가져갔다. 그때 중국은 금융습격에 대하여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청나라말이 되어 비로소 "방휴(鎊虧)"를 알게 된다. "방"은 영국화폐 파운드를 가리킨다. 관례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영국파운드를 기준으로 하였다. 금은 비싸고 은은 싸므로 영국파운드환율이 올랐고, 은량 혹은 은원으로 지급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이를 "방휴"라고 불렀다.

중국은 백은과 함께 가다보니 방향을 잃게 된다. 농업문명으로 세계를 보고, 토지와 인구를 보았다. 상업문명의 눈으로는 세계의 자연형태 즉 토지와 인구를 볼 뿐아니라, 세계의 상업형태 즉 시장과 소비도 보았고, 더더구나 세계의 화폐형태 지급과 유통을 보았다. 화폐유통이 있는 곳이 바로 세계이다. 금은가격비율을 뒤흔들게 되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천조(중국)에서 어찌 천하 이외에 자본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랴. 그는 화폐를 왕권으로 주재할 수 있었다고 여겼고, 왕권주의는 반드시 중농억상은 아니었다. 조건만 맞으면 중상주의로 갈 수도 있었다. 명조는 중상주의로 한걸음 내디딘 상태였다. 이 한걸음은 바로 백은의 길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허공을 밟았다. 명나라가 생각지 못했을 뿐아니라, 스페인의 합스부르크왕실도 생각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생각했다. 왕권은 마음대로 황금과 백은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둘 다 왕권보다 위에 있는 '보이지않는 손'의 존재를 몰랐었다.

합스부르크왕실이 금과 은을 가득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으로 운송해오자 그들은 스스로 세계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여긴다. 세빌리아 항구는 스페인제국이 세계를 통제하는 핵심이 된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자신이 쌓아놓은 금과 은 무더기 속에서 무너진다.

중상주의의 스페인은 자본형식의 금은수출을 제한했다. 그의 실체경제는 금은재부와 상응하는 현물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물가가 올랐다. 물가를 낮추기 위하여, 제품수출을 제한하고, 국외 주로 중국에서 상품을 구매하여 국내소비수요를 만족시킨다. 거대한 부는 생산력이 되지 못하고, 구매력이 되었다. 입국의 근본을 산업기초에 놓지 않고, 상업이익의 버블에 놓았다. 서계여(徐繼畬)는 스페인에 "금은기(金銀氣)"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금은기'가 충만한 스페인에서 화물수출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쌀마저도 산지는 여전히 여송(필리핀)이었다.

 

서계여는 스페인의 입국에 셋이 있다고 보았다: 항해, 상업, 화폐주조, 삼합일. 그래서 "금은기"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이 쇠약해졌다" 그들이 '부유하여 적이 없었기 대문이다.' 왜냐하면 부유하여 적이 없을 정도였던 합스부르크왕조와 대명왕조의 두 왕조는 모두 전쟁으로 쇠락한다. 먼저 스페인은 영국과 싸우고, 명나라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싸운다. 이 두 건의 전쟁은 명나라의 백은줄을 끊어버린다. 스페인이 패하자 은의 사용을 줄이게 되고, 명나라는 은의 유입이 없어진다. 일본이 패하자, 이때부터 아예 쇄국을 하고, 명나라에 은을 공급하던 루트를 막아버린다. 이 두 가지 은공급로는 청나라의 목숨줄이었다. 스페인과 일본에 의하여 양쪽이 모두 끊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