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침묵은 일종의 인생선택이다

중은우시 2013. 4. 27. 00:06

글: 왕립군(王立群) 

 

태평흥국4년 오월, 여러달의 전투를 거쳐, 오대십국(五代十國)중 마지막 할거정권인 북한(北漢)정권이 송나라의 판도에 편입되었다. 주세종, 송태조의 여러번에 걸친 정벌에도 함락시키지 못했던 태원(太原)이 송태종에 의해 마침내 함락된 것이다. 그는 북한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태원의 구성을 철저히 파괴하여 단지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긴다. 그는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할만한 이유가 있다. 기고만장한 송태종은 여기서 정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벗어난 결정을 내린다: 즉시 출병하여 연운십육주를 수복한다.

 

송태종의 이 결정은 첫째는 득의망형(得意忘形)이고 둘째는 형세오판이다.

 

북한은 십국중 유일하게 북방에 할거하던 정권이다. 이 정권은 요나라의 군사지원과 견고한 태원성, 그리고 사병의 완강한 전투력에 의존하여 29년을 버텼다. 나중에 주세종, 송태조가 여러번 정벌하려 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한다. 주세종, 송태조가 실현하지 못한 것을 송태종이 실현한 것이다.송태종은 북한을 송나라의 판도에 편입시켰을 뿐아니라, 고성 태원을 철저히 소멸시킨다. 한편으로 북한을 평정한 것은 송나라의 통일과정에서의 중요한 성과이고, 다른 한편으로, 송태조를 넘어서고 싶어했던 그로서는 마침내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이중의 기쁨, 특히 후자로 인하여 송태종은 지나치게 흥분한다. 송태종은 득의망형하여 술에 취한 사람처럼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북한을 평정하는 중심은 태원성의 포위공격이었다. 관건은 원군을 치는 것이었다. 요나라의 원군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것이었다. 당시 원군을 막는 책임은 서산을 이십년간 지켰던 곽진(郭進)이 부담했다. 관진은 먼저 도착하여 유리한 지세를 점령하고, 요나라군이 강을 건널 때 돌연 공격하다. 요군은 싸우지도 않고 혼란에 빠진다. 송나라군은 기회를 잡아 추살하고 요군은 대패한다. 이 전투에서 곽진은 지리적인 우세를 점하고 요군의 경적심리를 이용하여,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임무를 완성한다. 요나라군대는 병력과 장수를 잃었다. 이것은 태원을 점령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송태종이 요나라의 군사력을 저평가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송태종은 태원을 정벌한 후, 즉시 유주를 정벌하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태원을 몇달간 포위공격하면서, 양초는 다 써버리고, 군대도 피로한 상태하에서, 송태종은 돌연 새로운 작전목표를 세우고, 즉시 집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합한가?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완전히 상반되는 의견이 나온다.

 

첫째, 극력 찬성하는 파이고, 둘째, 극력 반대하는 파이다.

 

찬성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반대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첫째, 싸울 수가 없었다. 연운십육주를 정벌하는 것은 송태종의 임시로 정한 결정이다. 여러가지 준비업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준비(양초), 심리적인 준비도 포함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태평흥국 4년 정월에 출병하여 오월에 태원을 함락시키기까지, 연속 수개월간 행군, 작전, 공성을 벌여, 사병들은 피로했고, 장기간에 걸친 긴장감을 이제는 잠시 늦추어야 할 때가 되었다.

 

둘째, 싸우고 싶지 않았다. 태원이 함락된 후, 여러 장수들은 한숨을 내쉰다. 이제 논공행상을 기다렸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논공행상이 있기도 전에 연이은 출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장병들은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두가지 간단한 이유는 단순하 송나라군대의 측면에서 본 것이다. 그렇지만 황급히 연운십육주에 출병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반대자들은 황제의 위엄에 눌려, 침묵을 선택한다. 그들은 송태종을 너무나 잘 알았다. 송태종은 살벌하고 독재적이다. 일단 결정하면, 바꾸지 않는다. 이런 황제의 앞에서 대신들이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침묵은 일종의 인생선택이다.

기실, 침묵은 일종의 아주 복잡한 인생선택이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침묵은 금이라고. 확실히 그렇다. 어떤 상황하에서는 침묵이 화를 피할 수 있다.

"침묵은 금이다"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줄을 서야할 때도 있고,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재난을 선택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때는 침묵이 화(禍)이다.

강권, 폭력의 앞에서 침묵은 일종의 항쟁이다. 침묵은 일시의 인내이다.

침묵은 권해야 소용없는 사람에 대한 지혜로운 선택이며, 침묵은 고집불통인 사람에 대한 유일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