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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육권(鬻拳): 초(楚)나라의 무사도(武士道)

by 중은우시 2012. 9. 19.

글: 사걸붕(史杰鵬) 

 

육권은 등장하면서 한 가지 큰 일을 한다. 그는 초왕에게 간언한다: "이번 일은 내 생각에 이렇게 해야 합니다. 내말을 들으십시오" 초왕은 고개를 흔든다. "내 생각에 그래서는 안될 것같다." 그러자 육권은 두 마디도 하지 않고 무기를 꺼내서 초왕을 겨누면서 말한다: "오늘 내 건의를 듣지 않으니, 나 육권의 눈은 대왕을 알아보지만, 무기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는 무송(武松)같은 깡패가 하는 짓이다. 하늘이고 땅이고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초왕은 놀라 나자빠질 정도가 되어 할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른다. 상앙이 멸족의 법을 만든 이후, 모두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육권과 같은 친척일 것이다. 칠촌팔촌, 평소에는 내왕이 없지만, 정부에서는 그런 것은 따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유전인자를 찾아서 모조리 목을 베어버린다. 다행히 그 때는 상앙이 아직 출생하기 전이었다. 초왕은 육권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육권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나는 국왕에게 무기를 겨누었으니 이는 예의를 벗어났다. 나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어야 겠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다리를 잘라버린다.

 

다리가 없는 사람도 음식만 축낼 수는 없다. 음식도 돈이 든다. 당시 폐물이용의 전통에 따라, 절름발이 육권에게 정부에서 아주 적합한 일자리를 마련해준다.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 그러나 그가 지키는 것은 무슨 공장이 문이 아니라, 수도 영(郢)의 대문이었다. 그 문과 이 문은 다르다. 어쨌든 그는 귀족이다. 그러므로, 육권의 칭호는 무슨 '수위실의 육씨"가 아니라, "대혼(大閽)"이었다. '대(大)"자를 앞에다 붙이니 보통 문지기와는 다르다. 어쨌든 육권은 장관급의 간부라고 할 수 있었다.

 

절름발이 육권이 이에 대하여 정부에 감사해 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얼마후 그는 다시 성격을 드러낸다. 다시 한번 군왕에 대드는 것이다. 아래에 그 경위를 소개한다.

 

초무왕은 일찌기 작은 소국인 권국(權國)을 멸망시키고, 귀족 두민(斗緡)을 보내어 관할하게 한다. 얼마후, 두민은 반란을 일으킨다. 초무왕은 분노하여 병력을 보내어 그를 제거한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권국의 유민들을 초나라의 나처현(那處縣)으로 이주시키고, 염오(閻敖)를 지방장관으로 보낸다. 초무왕이 죽은 후, 초문왕이 즉위한다. 그는 파인(巴人)과 연합하여 신국(申國)을 공격한다. 그런데, 파인들에게 미움을 사서 파인들이 오히려 초왕을 공격하게 된다. 먼저 나처현을 함락시키고, 곧이어 수도 영을 향하여 진군한다.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나처의 지방장관 염오는 맨몸으로 용강을 헤엄쳐 건너서 수도로 돌아온다. 초문왕은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래서 염오를 사형에 처한다. 그러나 염오의 친족들은 이에 불복한다. 초문왕에게 "뭐때문에 패전하면 도망도 못치느냐.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포로도 큰 돈을 주고 데려와서 영웅으로 대우하지 않느냐. 스스로 도망쳐 왔고, 국가가 돈한푼도 쓰지 않지 않았느냐?"

 

초문왕은 먼저 국내를 안정시키고 다시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로 결정한다. 성밖의 파인군대는 큰 이익을 노릴 수있겠다고 생각하여 찬바람을 무릅쓰고, 공세를 강화한다. 그러나, 파인들은 금방 실망한다. 겨울은 지나고 봄이 왔다. 초문왕은 내부단속을 어느 정도 했다고 느끼자, 부대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서 파인들과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진지(津地)에서 패전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잔여병력을 이끌고 수도 영으로 도망쳐 온다. 그러나 육권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초나라는 패전한 군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는 초나라의 국왕이다. 패번하고 도망쳐 오다니, 너는 체면을 나몰라라 해도 되지만, 초나라는 그럴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초문왕은 잔여병력을 이끌고 북상하여 황국(黃國)을 공격한다. 이들 패잔병으로 파인을 상대하기는 어렵지만, 약소국인 황국은 충분히 칠 수 있었다. 적릉(踖陵)에서 황국군대는 초나라병사들에게 대패한다. 초왕은 이제는 귀국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추지(湫地)로 갔을 대, 몸이 좋지 않았다. 마침 한여름 육월이어서 날씨가 무더웠다. 마치 마른생선처럼 거기서 죽음을 맞이한다.

 

강직한 육권도 이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확실히 만일 자신이 그 때 국왕을 성으로 들어오게 했더라면, 국왕이 사방을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그가 사방을 떠돌지 않았다면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잔혹하고 각박한 분석끝에 육권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고 결론내린다: "안되겠다. 나는 나 자신에게 벌을 내려야 겠다."

 

이번에는 자신의 또 다른 다리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신의 목을 잘라버렸다. 유언으로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죽은 후, 반드시 나를 질황(絰皇, 초문왕의 능침 궁전의 전정)에 묻어달라. 나는 국왕에게 미안하고, 죽어서라도 국왕의 무덤을 지키겠다."

 

초나라사람들은 아주 감동을 받는다.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가. "대혼"이라는 직위는 그의 가족을 위하여 남겨두고, 그의 공헌을 기린다. 이때부터 육권의 자손은 모두 "대혼"을 세습한다.

 

육권의 이야기는 필자로 하여금 일본의 무사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군주를 존중하고, 대의를 존중한다; 대의를 위하여라면 군주의 뜻도 거슬린다.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은 용감하게 진다. 이것이 대체로 중국의 무사도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