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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선진)

사인피(寺人披): 궤변천재의 생존철학

by 중은우시 2012. 8. 15.

글: 하당월색(荷塘月色) 

 

진문공(晋文公) 중이(重耳)는 진헌공(晋獻公)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인덕이 아주 좋았다. 궁중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으므로, 그는 할 수 없이 여기저기를 유랑하는 생활을 한다. 국외로 도망간지 19년후, 비로소 그는 진나라로 돌아와서 국왕에 취임한다. 이때 나이는 이미 환갑이 넘었다. 진나라사람들은 그의 덕행을 높이 샀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따르고자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과거에 진문공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했다. 그들은 피살될까봐 두려웠고, 그래서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하고 대책은 내놓았다.

 

그중 진회공(晋懷公)이전의 대신 여생(呂甥), 극예(郤芮)등은 바로 전형적인 반대파의 대표인물이었다. 그들은 진문공이 자신을 제거할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궁중을 불태워 진문공을 죽여버릴 계획을 세운다. 이 때, 일찌기 두번이나 상사의 지시를 받아 중이를 추살하려 한 적이 있는 사인피(寺人披, '사인'은 환관이라는 뜻이고, '피'가 이름이다. <국어>에는 勃鞮라고 되어 있다)는 그들의 음모를 듣고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정말 목숨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구나. 이것은 아주 가치있는 정보이다. 만일 내가 이 일을 진문공에게 얘기한다면, 나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고, 공을 세워 이전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다. 지금은 오로지 이 길 뿐이다.

 

그래서 사인피는 몰래 진문공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진문공은 아예 그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을 전한다: 예전에 내가 포성(浦城)에 있을 때, 군왕이 너에게 나를 추살하라고 명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 도착할 수 있었는데, 너는 공을 세우기 위하여, 그날 바로 도착했다. 이뿐아니라, 내가 담을 넘어갈 때, 너는 끝까지 쫓아와서, 나의 소매를 잘랐다. 게다가 나중에 내가 적국의 군왕과 위하의 가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 너는 진혜공의 지시를 받아 나를 죽이러 왔다. 원래 진혜공은 너에게 삼일내에 나를 쫓아가라고 하였지만, 너는 어떻게 하였는가? 너는 공을 빨리 세우고 싶어서, 하루만에 바로 도착했다. 나는 정말 네가 공을 세워 승진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뼛속까지 한을 품은 것인지, 나를 죽여야 시원하겠는지? 네가 상황을 잘 파악한다면 내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빨리 돌아가서 잘 반성하고 있어라."

 

사인피는 진문공의 이 말을 들은 후, 자세히 생각해본다. 진문공은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큰 일을 할 사람이다. 그는 원한으로 바로 나를 죽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기회를 찾아야 겠다. 어찌되었건, 현재의 상황하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생존이 최우선이다. 이때 그는 마음 속에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 카드를 써야할 때가 되었다. 정보이다. 사람이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붙잡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만장심연에 떨어질 것인지, 이것은 생존의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그럼 사인피는 어떤 생존지혜를 가졌는지 보도록 하자.

 

첫째, 남의 밥을 먹으면 그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동정을 구하는 생존지혜이다. "군명은 지켜야 한다. 이것은 고대이래의 법이다. 나는 형여(刑餘)의 사람이다. 상사에게 딴 마음을 품을 수는 없다. 상사가 싫어하는 사람은 내가 반드시 그를 없애야 한다. 상사가 급해하는 것을 이루어주고, 상사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이것은 부하로서 당연히 해야 할 직책이다.

 

이것은 바로 사인피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다. 그는 이약시강(以弱示强), 이퇴위진(以退爲進)의 전략을 썼다. 중이가 그를 질책할 때, 그는 비록 두려웠지만, '삶'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중이에게 죽기살기식으로 보복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중과부적이다. 살아남기가 어렵다. 동시에 그의 첫 마디에는 부드러운 가운데 강함을 품고 있다. 현재 너도 군왕이 되었다. 설마 너도 너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냐. 잘 생각해봐라.

 

둘째, 말은 극단적으로 하지 말고, 일도 극단적으로 하지 말라. "포성사람이나 적국사람이 나와 무슨 관계인가, 즉위하면 포성사람도 없고, 적국사람도 없다" 당신은 그 당시에 진국에 있지 않았다. 포성사람이나 적국사람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당시의 당신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지금 진국의 국왕이다. 이제는 포성이나 적국에서처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생존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를 가지고 생존을 구한다. 사인피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음미해보라. 비록 나는 지금 군왕인 당신에게 살 길을 간청하고 있지만, 나도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지는 않겠다. 먼저 시한폭탄을 하나 매설해놓겠다. 사람은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사람은 백일동안 계속 좋을 수 없고, 꽃도 백일동안 붉지는 못하다. 모든 일은 자신에게 여지를 남겨두어야 하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네가 될 수 있다. 포성, 적국의 교훈을 기억해라.

 

셋째, 경전을 인용하여, 진문공에게 삶을 구한다. 내가 당신에게 삶을 부탁하는 것은 기실 당신을 구하기 위함이다라는 것이다. 관중은 제환공의 허리띠를 화살로 맞춘 적이 있지만, 제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즉, 제환공은 자신의 허리띠를 쏜 일을 따지지 않고 그로 하여금 자신을 보좌하게 했다. 그래서 제환공은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보고할 것이 있다. 당신이 나를 거절하면, 그것은 당신이 생명을 거절하는 것이고, 강산사직을 거절하는 것이다.

 

사인피는 제환공, 관중의 일을 끌어냈다. 이는 중이와 제환공을 동격으로 만든 것이다. 만일 네가 나를 용사허지 않으면 네가 어떤 결말이 나올지 봐라. 설마 당신은 멍청한 무리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 "당시에 그렇게 했던 사람은 많다. 그런데 왜 신만 벌하려 하십니까." 이 말 속에도 또 말이 있다. 당신이 겁을 준다고 해도 좋고, 경고를 한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벌불책중(罰不責衆)이다. 어긴 사람이 많으면 다 처벌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군왕이 되는데 문제가 있다. 뭐가 옳은지는 당신이 판단해라, 어쨌든 나는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넷째, 상대방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을 마지막에 두었다. 정보를 제공하고 삶을 구하는 것이다. 보라. 이전에 나는 군왕을 위하여 생각했고, 현재는 당신이 군왕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위하여 일하고 싶다. 내 손에는 믿을만한 정보가 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가치가 아주 크다. 당신이 거절한다면, 큰 화가 닥칠 것이다.

 

사인피의 생존지혜는 선물을 가지고 온 것이다. 정보를 가지고 생명과 바꾸는 것이다. 보라. 나는 그냥 맨입에 온 것이 아니다. 아무런 공이 없으면 녹을 받을 수 없다. 나는 여, 극 두 사람의 음모를 너에게 알려주겠다. 이전에 나는 너를 죽이려고 했다. 그것은 부득이한 일이었다. 지금 내가 너를 구해주려고 한다. 이것은 나에게 성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중이에 있어서 뭐라고 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혈광지재(血光之災)를 피할 수 있는 부적이다. 결국, 사인피와 같은 사람은 누가 세를 얻으면 그를 따른다. 왜 굳이 오는 사람을 거절하는가. 진문공은 확실히 일반적인 군주보다는 도량이 넓었다.

 

사인피는 절벽에서 삶을 구하였다. 그가 의존한 것은 지혜와 언변이었다. 삶을 구하는 행위가 약간의 매국노와 비슷하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 설사 다른 사람이 걸을 길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저 삶을 구할 수만 있으면, 그저 결과적으로 살 수만 있다면, 주인이 누구이든지 신경쓸 것이 없다. 비록 그가 말하는 '충성'은 약간은 철면피이지만, 그가 그런 상황하에서 절처봉생(絶處逢生)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지혜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