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한운(吳閑雲)
도가의 비조를 말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태상노군(太上老君)을 떠올린다.
태상노군은 도덕천존(道德天尊)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노자(老子)이다. 개략 북위(北魏)시기부터 시작하여, 그는 태상노군이라고 존칭하게 된다.
노자는 춘추시대 말기에 생활했고, 초(楚)나라 고현(苦縣) 여향(勵鄕)사람이다. 그는 주왕조의 도서관리인을 지냈고, 중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가, 사상가의 한 명이다.
노자는 "도(道)"를 가지고 우주만물의 변화를 해석했다. 일체의 만물은 정반 양면이 있으며,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대립에서 전화될 수 있다. "정부위기, 선부위요(正復爲奇, 善復爲妖)". "화혜복지의, 복혜화지복(禍兮福之倚, 福兮禍之伏)." 그리고, 세상의 사물은 모두 "유"와 "무"의 통일이다. "무"는 기초이고, 유무는 상생한다. "천하만물은 유에서 태어난다. 유는 무에서 태어난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게 있으면 덜고(損有餘), 모자라는게 있으면 보충하는 것이다(補不足)", "인간의 도리는 그러나 다르다. 모자라면 해치고 남으면 받든다."
노자는 도가학설의 발전에 공로가 가장 크고, 영향을 가장 깊이 미쳤다. 그래서 나중에 도교는 그를 도조(道祖)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만, 노자는 도가이념은 가장 먼저 제기한 사람이 아니다.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도"를 얘기한 사람은 "육웅"이다. 그는 노자보다 500여년 일찍 태어난 사람이다.
육웅은 고대 초나라의 창시자이고, 첫번째 국군(國君)이다. 그는 상나라말기에 생활했으며, 사서에는 그의 조상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황제(黃帝)는 2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정비 누조(嫘祖)는 두 명을 낳았다. 큰아들은 현효(玄囂)이고, 작은 아들은 창의(昌意)이다. 창의의 아들은 전욱제(顓頊帝) 고양(高陽)이고, 고양의 아들은 칭(稱)이다. 칭의 아들은 권장(卷章)이고, 권장의 아들은 중려(重黎)이다.
중려는 남방의 끝에 거주했는데, 그가 불씨를 전하고, 사람들에게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그는 화정지관(火正之官)에 봉해지고, "축융씨(祝融氏)"를 사성(賜姓)으로 받는다. 축융씨의 후예는 8개의 성으로 나뉜다: 기(己), 동(董), 팽(彭), 독(禿), 운(鄖), 조(曹), 짐(斟), 미(芈). 역사에서는 "축융팔성"이라고 부른다.
육웅은 바로 이 팔성중 한 갈래인 '미'성의 후예이다. '미'는 글자 모양이 양(羊)을 본떴으며, 음은 'Mie"라고 읽는다. 양이 내는 소리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초나라가 없어서, 육웅은 미성부락의 대추장에 불과했다. 그는 법술을 잘 알고, 종교적인 명망이 있었고, 정치적 두뇌가 있었다. 개략 120살까지 살았다. 그가 99살이 되었을 때, 주문왕의 스승이 된다.
육웅은 <육자>라는 책을 후세에 전했고 합계 22편이다. 나중에는 실전된다. 지금은 14편만이 남아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육자의 도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육웅이 말했다: "정치적 명령을 내리는 것은 천하에 복을 주기 위함이다. 이를 도라고 한다."
육웅이 말했다: "강해지고 싶으면 반드시 부드러움으로 지켜야 한다. 강해지고 싶으면 약한 것으로 보호해야 한다. 부드러움이 쌓이면 반드시 강해지고, 약함이 쌓이면 반드시 강해진다. 그 쌓은 것을 보면 화복지향을 알 수 있다."
육웅이 말했다: "사물은 이쪽이 줄어들면 저쪽이 넘친다. 이쪽이 성공하면 저쪽이 실패한다. 손영성휴(損盈成虧)는 생기고 없어진다."
이상의 설명은 <육자>에 이미 "도"의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수유(守柔), 변증등 도가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도'에 관한 기록이다.
현재까지 도가의 개산지조는 육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중에 주무왕, 주성왕은 모두 육웅을 스승으로 삼는다. 은상을 멸망시키고, 주왕조를 건립한 후, 각 공신을 대거 책봉할 때, 육웅을 남방 초국의 국군으로 봉한다.
초국은 이때 탄생한 것이다. 주나라의 부속국이 된다. 봉지는 개략 지금의 호북성 단강구(丹江口) 일대이다.
그래서, 육웅은 독립된 영지를 가지고, 문호를 세운다. "초"를 국호로 하여 '미'성에서 분리되어 나온다. 그의 후손은 그의 이름중의 '웅'자를 따서 씨(氏)로 삼는다. 이는 '웅웅열화(熊熊烈火)'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초왕일계의 후예가 모두 웅씨인 원인이다.(그들은 미성부락의 한 갈래이고, 그들의 조상의 성은 '미'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웅'씨를 가진다.)
그러므로, 육웅은 역사상 도가의 개산비조이다. 그리고 초국의 첫번째 개국지군이기도 하다.그리고 웅씨의 최초 시조이다.
당시 제후국의 국군은 5개 등급으로 나뉘는다:공, 후, 백, 자, 남. 육웅의 초국은 제4등인 자작(子爵)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의 작위는 아주 낮았다. 영지도 불쌍할 정도로 작았다. 겨우 오십리의 땅이었다.
왜 이렇게 작았는가? 왜냐하면 작위를 받을 때 육웅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면 차는 식는 법이다. 약간이라고 나눠받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육웅이 너무 오래 살았서 그의 아들인 웅려(熊麗)도 이미 죽었다. 그의 손자는 웅광(熊狂)인데, 웅광도 이미 죽었고, 웅광의 아들이 바로 웅강(熊絳)이다.
웅강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래서 웅강으로 하여금 육웅의 초나라국군지위를 물려받게 한다.
그래서, 나중의 초나라군주는 항항 불만이 있었다. 주나라천자가 영지를 나눠주는데 불공평했다는 것이다. 초나라의 영지를 너무 적게 주었다. 작위도 너무 낮게 주었다. 이것은 모두 조상이 너무 일찍 죽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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