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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마균(馬鈞): 제갈량보다 뛰어난 발명가

by 중은우시 2012. 8. 15.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제갈량은 정치가, 군사가일 뿐아니라, 저명한 발명가이다. 그는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발명해 촉군의 불벌시 보급을 보장했고, 연노(連弩)는 촉한이 적을 제압하는 비밀병기였다. 삼국시대 조위의 정예병은 기병이었고, 손오는 수군이었다. 그런데, 촉한은 노병(弩兵)이었다. 노병의 위력은 마침 기병, 수군의 극성이다. 연노의 발명은 조위, 손오로 하여금 최약국인 촉한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제갈량과 동시대에 마균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중국과학기술역사상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다. 그의 일부 발명창조와 기술혁신은 제갈량을 뛰어넘었을 뿐아니라, 생산력의 제고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마균은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4가지 발명창조와 2가지 뛰어난 개선아이디어를 낸 바 있다.

 

첫번째 발명창조는: 지남거(指南車)의 재현이다.

 

원고시에 중국의 조상들은 지남거를 발명했다. <고금주>, <지림>, <귀곡자>등 고대서적에 모두 기록이 있다. 지남거의 내력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황제와 치우의 전쟁시, 치우가 안개를 만들자, 황제가 지남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주시기에, 남방의 월상씨(越裳氏)가 진공을 하고 돌아갈 때, 방향을 잃었고 주공단(周公旦)은 지남거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동한 말기에 이르러, 지남거는 실전된다. 당시 미균은 급사중으로 있으면서 자주 산기상시 고당륭, 효기장군 진랑과 얘기를 나누었다. 고당륭, 진랑은 지남거를 믿지 않았다. 마균은 이치를 내세워 싸웠다. 고당륭, 진랑 두 사람이 말한다. 선생의 이름은 '균'이고 자는 덕형(德衡)인데, '균'은 기구의 모형이고, '형'은 물품의 경중을 잴 수 있는 것이니, 만일 경중에 기주이 없다면 어떻게 기구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마균은 이론상으로 나는 당신들을 당할 수 없지만, 내가 만들어서 보여주겠다고 한다. 두 사람은 위명제에게 보고하고, 위명제 조예는 마균에게 지남거를 제작하도록 명령한다. 얼마후 전설의 지남거를 마균이 다시 만들어낸다.

 

두번째 발명창조는: 번수차(水車)를 제조하다

 

마쥔은 경성 낙양에 거주했고, 성안에는 빈 땅이 있어서 채소밭을 하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물을 댈 수가 없었다. 마균은 이를 보고 '번수차'를 만들었다. 강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돌리는데 아무런 힘도 들지 않아서 아이들도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도잇에 비가 많이 올 때면 지상의 물을 강으로 돌려보낸다. 관개문제도 해결하면서 배수작용도 효과적으로 발휘한다.

 

세번째 발명창조는: "수전백희(水轉百戱)"를 연구제작했다.

 

어떤 사람이 나무인형을 바친다. 그러자 위명제가 묻는다. 이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겠는가? 마균이 말한다. 가능합니다. 그러자 위명제는 그에게 제작을 명한ㄴ다. 마균은 나무바퀴로 틀을 만들고, 수력으로 움직이게 하여, 나무인형을 나무바퀴위에서 각종 동작을 하게 만들었다. 춤을 추는 인형도 있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인형도 있고, 말을 타고 검을 쓰는 인형도 있으며, 거꾸로 서 있는 인형도 있으며, 밀가루를 찧는 인형도 있고, 투계하는 인형도 있고, 각양각색의 관리도 있다. 이들 나무인형은 생동감있고 변화가 다양했다. 위명제는 손뼉을 치며 멋있다고 칭찬한다.

 

네번째 발명창조는: "직릉기(織綾機)"를 개량한다.

 

직릉기는 인민들이 생산실천과정에서 발명한 간단한 기계이다. 옛날의 직릉기는 50개경선과 60개경선의 구분이 있어, 각각 50개답구와 60개답구로 나뉘었다. 조작하는데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는 여성들이 왕왕 피곤하여 허리도 펴지 못하고 생산효율도 낮은 거을 보고는 개량할 생각을 한다. 연구와 실험을 거쳐, 그는 12개답구로 개량한다. 사용해보니 효율이 올라갔을 뿐아니라, 일꾼들의 노동강도도 많이 감경되어, 여성들의 찬양을 받는다.

 

첫번째 개량아이디어는: 발석거(發石車)를 개조하는 것이었다.

 

조조는 일찌기 발석거로 원소를 격패한 바 있다. 마균은 이왕의 발석거는 1발씩 쏘게 되므로, 만일 적이 성루에 젖은 소가죽을 걸어두면 돌을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균은 이를 개조해보려 한다. 그는 발석거를 전륜식(轉輪式, 구르는 바퀴방식)으로 개조하고, 바퀴에는 큰 돌을 가득 쌓아두고, 기계로 바퀴를 돌려서 연이어 돌을 발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위력은 박격포에 못지 않을 정도이다. 만일 이런 무기가 대량생산되고 사용되어 하나의 병종을 이루었다면 백전백승이었을 것이다. 파괴력도 '벽력거'보다 백배 천배는 되었을 것이다.

 

두번째 개량아이디어는: 연노(連弩)를 개선한 것이다.

 

제갈량의 연노는 선진적인 치명적 무기이다. 한번에 화살을 수십발 연속으로 발사할 수 있다. 이는 조위의 군사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이 촉한의 연노를 노획하여 마균에게 보여준다. 마균은 말한다: "교묘하기는 교묘하지만, 개선할 여지는 있다." 그리고, 개선하여 연노의 위력을 5배로 늘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쉽게도 이 두 가지 개량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다. 원인은 학자인 배수(裴秀)가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그에게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원래 마균은 실천을 중시하고 이론을 중시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 학자와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와의 말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었고, 두 가지 아이디어는 그대로 버려지고 만다. 또 다른 학자인 부현(傅玄)은 마균의 아이디어를 극히 칭찬한다. 그는 조의(曹義)에게 이렇게 진언한다: 마선생의 두 가지 아이디어는 모두 국가의 정밀한 기기이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무기입니다. 약간의 목재와 두 사람의 힘만 있으면 되고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그에게 해보게 하지 않으십니까.

 

조의는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보고 조상(曹爽)에게 보고하게 한다. 조상은 무능하여, 이 일을 무시하고 결국 마균의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하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촉한의 연노와 손오의 수군은 일찌감치 무너졌을 것이고, 삼국통일은 더 빨리 완성되었을 것이다.

 

부현은 마균이 중용되지 못하는것을 개탄했다. 그는 마선생의 발명과 혁신은 노반(魯班), 묵적(墨翟, 묵자)과 장형(張衡)도 따르지 못할 정도라고 하였다. 노반과 묵적은 당시에 모두 중용될 수 있었고, 그들의 아이디어는 후세인들에게 무한한 이익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장형과 마균의 총명재지는 일생동안 발휘되지 못했고, 이것은 인재를 중시하지 않은 결과이니, 실로 한탄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