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손호(孫皓): 동오의 마지막 황제

중은우시 2012. 9. 20. 21:51

 

글: 아정(阿丁) 

 

 

 

손호는 삼국시대 마지막 동오의 황제이다.  자는 호종(皓宗)이고 또 다른 이름은 팽조(彭祖)이다. 비록 팽조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겨우 42년밖에 살지 못했다(팽조는 고대의 장수하였다는 전설상 인물). 손호의 부친은 손화(孫和)이고, 손권의 셋째 아들이다. 신분은 폐태자(廢太子)이다. 폐위되었을 뿐아니라, 마지막에는 손준(孫峻)에게 사사(賜死)당한다. 당시 나이 30살이었다.

 

부친이 죽었을 때, 손호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부친의 비참한 운명은 그에게 씻어버릴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런 그늘하에 손호가 기형적으로 성장하지 않기는 힘들었다. 여러해 이후, 의외로 황제위에 등극한 손호는 위요(韋曜)를 주살한다. 원인은 바로 국사편찬자인 위요가 손호의 부친 손화의 전(傳)을 두는데만 동의하고, 죽어라 기(紀)를 쓰는데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충설명해야 할 것은 "기"는 제왕을 위하여 쓰는 것이고, 손화의 신분은 남양왕이었다.

 

처음에 손호는 위요에게 상당히 잘 대해주었다. 손호는 술을 좋아했는데, 자주 신하들을 불러서 연회를 베풀었다. 매번 마실 때마다 7되(升)를 마셔야 했다. 이 양을 마시지 못하는 관리들은 결과가 모두 좋지 않았다. 손호는 몇몇 황문(黃門)을 배치하였는데, 명칭을 "사과지리(司過之吏)"라고 불렀다. 이들은 대신들이 술을 제대로 마시는지를 감독하는 것이다. 7되를 다 마신다고 하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산기중상시인 왕번(王蕃)은 7되를 마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손호는 사람을 불러서 그를 보내주라고 한다. 조금 지나서 다시 그를 불렀다. 그런데 왕번은 얼굴이 평소와 같고 정신이 말짱챘다. 그러자 손호는 그가 가짜로 취한 척했다고 욕을 하면서 이는 분명히 다른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며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다. 위요는 주량이 2되였다. 손호는 사람을 시켜 그에게는 몰래 차로 바꿔주게 한다. 왕번을 대한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나중에 "이차대주(以茶代酒)"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손호는 위요에게 이렇게 잘 해주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사관(史官)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부친을 위하여 '기'를  쓰게하기 위함이었다. 손호도 위요가 강직하여 그대로 사서를 쓰는 것을 겁냈다. 자신이 저지른 각종 난감한 일들을 사실대로 적어놓을까봐 우려했다. 그러나, 위요는 결국 그의 이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냥 동호(董狐)를 만나러 가는 것을 택한다(즉, 죽음을 택한다). 그는 사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처음에 등극했을 때, 손호는 여러가지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인다.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을 재해에서 구제해주고, 부세를 감면해준다. 그리고 남는 궁녀들을 돌려보내서 홀아비들과 결혼시켜준다. 조야와 민간에서는 그를 "영주(令主)" 즉 명군(明君)이라고 부른다. 그때의 사람들은 손호의 신정치에 대하여 아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동오의 미래에 대하여 기대가 충만했다. 그러나, 손호는 돌연 그들을 실망시킨다. 위치가 공고해지자, 그의 살인게임이 시작된다. 먼저 그를 황제위에 올려준 공신 만욱(萬彧), 장포(張布)등의 삼족을 멸한다. 그리고 손휴(孫休)의 황후를 비밀리에 죽여버린다. 심지어 자신의 동생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손호의 총희(寵姬)는 사람을 보내어 공공연히 길거리에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다. 그러다가 진성(陳聲)에게 체포된다. 진성은 손호의 총신이다. 그는 황상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손호는 정치적인 두뇌가 있어 강도범을 처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호의 정치적 판단은 달랐다. 총희가 그에게 호소하자 바로 진성을 붙잡아 온다. 그리고 발갛게 단 톱이 진성의 목을 잘라버린다. 또 다른 대신중이 하소(賀邵)가 있다. 그는 명장 하제(賀齊)의 손자이다. 직간하기로 유명했다. 손호가 포악한 모습을 보이자 글을 올려서, 손호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한다. 자신은 주지육림에서 지내면서 백성들과 병사들은 지꺼기만 먹게 한다는 것이다. 그도 손호의 톱에 목숨을 잃는다. 사서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하소는 죽을 때 "졸무일어(卒無一語)" 기실 하소가 말을 하지 않고, 아프다고 하지도 않은 것이 의외는 아니다. 그는 죽기 전에 중풍으로 이미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잔인하게 뇌졸중환자를 대하는 황제는 손호 한 사람 뿐일 것이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만일 손호의 집권기간동안 오나라의 국기를 설계했다면,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사람의 얼굴가죽을 벗기는 칼과 붉게 달구워진 톱을 겹치면 될 것이다. 이 양자는 손호의 등록상표이다. 확실히 아주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공포수단으로 유지되는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晋)나라에 투항한 후, 손호는 진무제(晋武帝) 사마염(司馬炎)에 의해 귀명후(歸命侯)로 봉해진다. 대우가 괜찮은 편이다. 어느 날, 사마염이 왕제(王濟)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손호가 곁에 있었다. 왕제가 묻는다: "듣기로 당신은 사람의 얼굴가죽을 벗기고, 사람의 발굼치를 자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왜 그런 것인가?" 손호가 대답한다: "신하가 군왕에게 무례하면 그것은 낯짝이 없는 짓이다. 그래서 그의 얼굴가죽을 벗기는 것이 가장 적합한 벌이다." 당시 왕제는 두 발이 곧게 펴져서 하마터면 사마염에 닿을 뻔했다. 손호는 이로 인하여 약간 조롱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에게 이것을 물은 사람이 가충(賈充)이라고 한다. 손호의 대답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노비가 주군을 모살하려 하는데, 이렇게 대우하는게 좋지 않단 말인가?" 가충은 멍해진다. 왜냐하면 그가 위나라신하일 때, 일찌기 다른 사람을 시켜 조모(曹髦)를 죽이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번은, 사마염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연회를 베푸는데, 연회때 가무로 흥을 돋구고 있었다. 이때 손호에게 묻는다. 듣기로 너희 오나라의 음악이 괜찮고, <이여가(爾汝歌)>를 즐겨 부른다는데, 귀명후(손호), 그대가 한 수 불러주면 어떤가? 손호는 정말로 노래를 부른다: "옛날에는 너와 이웃이었는데, 지금은 너의 신하이다. 너에게 술 한잔을 올리니, 너는 만수무강하라."(昔與汝爲隣, 今與汝爲臣, 上汝一杯酒, 令汝壽萬春)" 원래 사마염도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 때의 가치관으로 보자면 손호는 어쨌든 일국의 군주였다. 그에게 배우처럼 노래하게 시키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손호는 잘 대응했다고 말할 수 있다. 너 사마염은 스스로 짐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너를 '너(汝)'라고 부르겠다. 이건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니, 네 잘못이다.

 

이것은 손호의 IQ가 낮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최소한 아주 기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변태들은 모두 아주 총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