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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보시라이사건의 후속발전

by 중은우시 2012. 5. 1.

글: 위경생(魏京生)

 

보시라이사건의 후속발전은 어떤 모습일까? 이것은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이다. 일반백성들의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관료계, 경제계에서는 더욱 큰 관심사이다. 소식에 따르면, 보시라이사건이 발생한 후, 돈있는 사람들의 이민수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돈있는 사람에는 경제계의 사람도 있지만 ,관료계의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는가? 그것은 사건의 본질부터 얘기해야 한다.

 

이번에 보시라이를 끌어내린 것은 이전의 당내투쟁과는 다르다. 80년대이전의 당내투쟁은 마오쩌둥시대나 덩샤오핑시대를 포함하여 모두 정치적인 이유로 전개되었다. 1989년이 전환점이었다. 자오즈양(趙紫陽)은 부패를 이유로 정치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실패한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무슨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서 조자양의 계파를 숙청하지 못한다. 명분상 그다지 당당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래서 90년대 천시통(陳希同)사건부터 시작하여, 정치적인 이유는 더 이상 주요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는 반드시 부정부패로 포장되어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널리 받아들인다. 원인은 한편으로 공산당과 백성들이 모두 더 이상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정치적인 이유를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이 부정부패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89년의 민주화항쟁에서 뚜렷이 드러난 경향이다. 부정부패를 이유로 삼는 것이 인민대중의 호응을 받을 수 있고, 한꺼번에 상대방을 때려눕힐 수 있다.

 

보시라이사건은 또 하나의 다른 모델이다. 그리고 하나의 전환점이다. 부정부패모델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부정부패를 이유로 당내투쟁을 진행하는 것은 이미 너무나 자주 본 만천과해(瞞天過海), 이대도강(李代桃僵)의 수법이다. 더 이상 일반백성들의 호응을 불러모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꺼번에 상대방을 때려눕힐 수도 없다. 새로운 모델은 형사사건을 도입한다. 법치의 명의로 당내투쟁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하나의 새로운 일거에 때려눕히는 모델을 창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탐관오리는 왜 이런 모델을 두려워하는가? 새로운 국외탈출붐이 일어나는가? 이것은 앞에 말한 모델이 모두 당내에서 통제가능한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즉 일당독재의 정상적인 모델이라는 것이다. 상부지도자가 누구를 치려고 하면, 이는 예측가능하고, 예고를 한다. 관료사회의 인심이 흉흉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관리가 부정부패하는 상황하에서, 법제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하에서,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도 형사사건을 만들어낼 수가 있고, 어떠한 사람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상부지도자도 형사사건에 관여할 수가 없다. 특히 매체의 선전으로 천하가 다 알고 있는 형사사건의 경우에. 또한 형사사건은 일단 성립되면, 완화할 여지가 없다. 투쟁은 반드시 너죽고 나살기 식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금방 통제력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독재의 전재의 정치는 반드시 정치투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내로 통제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정치의 비탄력적인 법률과 다르다. 그러나 거기에는 불문의 법칠이 있다. 이 법칙이 일단 깨지고 나면, 혼란과 무질서가 도래한다.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하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이다.

 

개인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바로 민주법제가 마련되어 있는 서방으로 가는 것이다. 최소한 부인 ,아들과 돈보따리라도 안전지대에 놔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벌거벗은 관리(裸官)'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보시라이사건은 그저 이 과정을 가속시켰을 뿐이다. 보시라이사건의 한 특징은 바로 이왕의 규칙을 파괴한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관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재난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탐관에게도 적은 있고, 청관에게는 적이 더 많다. 규칙이 없으면 아무도 안전하지 못하다.

 

중국공산당이 무질서한 내부투쟁에 돌입하면, 금방 붕괴할 것이다. 백성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가? 이것은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문제이다. 초보적으로 관찰해보면 아래의 두 가지 추세가 나타날 것이다.

 

공산당의 내부투쟁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권위에 따라 진행되지 않을 때, 반드시 민의의 힘을 빌려야 한다. 기실 보시라이는 이미 이 모델로 내부투쟁을 진행했다. 옛날의 자오즈양과 마찬가지로, 보시라이의 실패는 이 모델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내부투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다. 민의에 의지하고 유언비어를 만들어내는 등등의 수단이 장래 정치투쟁의 중요수단이 될 것이다. 당중앙의 권위는 더욱 약화될 것이고, 마치 후한말, 삼국시대의 모습과 비슷하게 될 것이다.

 

갈수록 불법적인 탈권과 반탈권으로 천하는 대란에 빠질 것이며, 서로 나눠지고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어쨌든 2천년전의 그 때와는 다르다. 중국도 다른 나라들과 그다지 관계없는 나라가 이미 아니다. 이번의 보시라이사건의 또 다른 뚜렷한 특징은 바로 외국세력의 힘을 빌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금후 중국공산당 내부투쟁 혹은 중국내란의 새로운 하나의 모델이 될 것이다.

 

기실 열강은 일찌감치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십여년전의 리덩후이의 <칠국론>은 바로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다. 절대로 아니땐 굴뚝의 연기가 아니었다. 열강의 개입은 앞으로 중국의 난국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고, 더욱 질서를 회복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민주국가의 기입이 중국의 민주를 추진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민주국가는 자신도 대잔산계급이 통제하는 함정에 빠져버렷다. 일단 중국의 혼란에 개입하면, 주요한 관심은 서방 대기업의 이윤이 될 것이다; 노동자급여계급의 이익에 반대되는 민주정치일 것이다. 중국의 고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 다른 추세는 바로 현재의 통치계급중 혁명파세력이 신속히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당독재의 혁명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외부세력의 간여를 저지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분리된 삼국식의 국면형성을 저지할 수 있을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민의의 지지를 얻어 정치와 경제의 난국을 벗어나, 장기간 안정적인 민주정치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추세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당연히 강력한 민의의 지지이다. 이 점은 중공내부의 개혁파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반드시 당외의 각종 반대파의 역량과 결합하여 힘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뿌리깊은 탐관오리의 이익집단을 격패시킬 수 있다. 가장 밑바닥부터 격파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커다란 권세를 지닌 이익집단이 혁명적인 변혁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뱃속에서 유산되고 말 것이다.

 

또 다른 전제조건은 개혁파의 결심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박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박력이 있고, 충분한 민의의 지지를 받으면, 소련 혹은 대만과 같은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평화적인 변혁으로 천하의 대란은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카다피의 국면이다. 치우체스쿠의 국면이다. 심지어 천하대란이 올 수도 있다.

 

역사는 어떤 때에는 중요인물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필연성은 그저 대추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