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건회(晏建懷)
양신과 조한은 같은 점이 너무 많다. 나이도 비슷하고, 경력도 비슷하며, 최후도 비슷하다. 그들은 모두 군전소졸(軍前小卒) 출신으로 후주(後周)때 아교(牙校)와 같은 하급장교를 지냈다. 그리고 둘 다 송태조 조광윤 및 송태종 조광의를 따라서 전투에 참가한다. 모두 전공이 탁월하여 고급장군이 된다. 그리고 둘 다 고위직에서 선종(善終)까지 한다. 심지어 그들은 권력각축과정에서 사용한 보신책도 비슷하다. 한명이 사용한 것은 "사(속임수)"이고, 다른 한명이 사용한 것은 "괴(교활함)"이다.
양신을 일생동안 여러번의 파란을 겪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매번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가을의 달을 보고 봄의 바람을 보는 것처럼 자신있고, 침착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신은 달랐다. 비록 그는 겉으로는 무게있고 조용했지만, 내심은 아주 취약했다. 송태조 개보2년(969년), 양신은 황궁의 금위업무를 책임지고, 현무문 밖의 관사에 거주했다. 직책이 중대하여 자주 침식을 제래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돌연 꿈 속에 거대한 거북이가 입에 칙인(勅印, 조정에서 명령을 전달하고, 장수를 이동시킬 때 쓰는 증빙)을 물고 급히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놀라서 꿈에서 깬 후, 벌떡 일어나서 혼잣말을 한다: "궁내에 분명히 일이 생겼다." 즉시 웃옷을 입고, 신속히 현무문으로 간다. 과연 산지휘도지 두정진을 우두머리로 하는 무장들이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긴요한 순간에 수하가 비밀을 누설하여 송태조가 알게 되었다. 송태조는 사람에게 명하여 밤에 현무문을 열고 긴급히 양신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반장을 체포하도록 지시한다. 양신은 수하를 데리고, 다음 날 새벽 두정진등 19명의 모반에 참여한 자들을 모조리 붙잡았다. 송태조가 친히 심문을 했고, 그들은 모조리 참수당한다.
그런데, 기괴한 것은 두정진의 목이 떨어지자마자, 양신은 즉시 괴병에 걸린다. 입으로 말을 못하게 되어, 이상한 벙어리가 된 것이다. 벙어리가 된 후, 양신의 곁에는 돌연 옥노(玉奴)라는 서동이 하나 생긴다. 그는 총명하고 영리하며 특별히 양신의 뜻을 잘 알아차렸다. 아래이 군관들이 양신에게 무슨 업무를 보고하거나, 군대를 이동시킬 때, 심지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는 옥노에게 눈짓만 하면, 그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더욱 괴이한 일은, 양신이 10년간 벙어리로 지내다가, 죽기 하루 전날 돌연 입을 열어 말을 한 것이다. 이때 송태종이 이미 황제위를 계승했는데, 그 말을 듣고 놀라 마지 않았다. 즉시 양신의 집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본다. 양신은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일으킨 후, 급히 송태종에게 감격의 뜻을 전달하는데, 말이 분명했고, 목소리도 확실했다.
양신의 경력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의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돌연 벙어리가 된단 말인가? 그리고 말을 못한지 십여년이 지난 사람이 어찌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유일하게 합리적인 해석은 양신이 후주시대의 혼란한 상황을 겪으면서 조공윤의 고심막측한 '진교병변' 및 '황포가신'을 겪으면서, 시시때때로 도광검영과 혈우성풍에 직면했다. 그는 두려웠고, 다음 번 '두정진'이 될까봐 겁을 냈다. 화를 피하기 위하여, 그는 황제의 앞에서 '속임수'를 쓴 것이다. 벙어리인척 한 것이다. 누가 벙어리를 적으로 생각하겠는가? 누가 벙어리를 상대로 활을 쏘겠는가? 사실도 그가 총명했음을 증명해준다. 비록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송태조 송태종은 그를 일찍 은퇴시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를 중용해서 요직을 맡겼다. 그는 마지막에 전전도지휘사를 지냈는데, 이는 금군의 최고장관이다. 사후에 '시중'에 추증되니, 재상의 대우를 받은 것이다. 일생을 평안하게 지냈고, 부귀를 누리다가 죽는다.
조한은 양신과 많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한가지 측면에서는 전혀 달랐다. 즉 품성이 달랐던 것이다. 양신은 내심이 취약했지만, 그래도 성실하고 후덕했으며, 사람이 착했다. 그러나, 조한은 아주 패도적이었고, 이익이 보이면 취하였고, 돈을 보면 탐하였다. 그가 재물을 빼앗은 악행은 여러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당초에 그가 명을 받아 남당으로 진격할 때, 금릉을 평정한 후, 이욱이 포로로 잡혀서 송나라에 투항한다. 그리고 각군에 어지를 내려 반항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유독 강주(강서성 구강시) 지휘사인 호칙이 끝까지 송에 저항했다. 근 5개월이나 버텼다. 조한은 군대를 이끌고 강주를 공격했다. 성이 함락되는 날, 그는 온 성을 도륙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투항사병까지도 모조리 죽였다. 그리하여 "죽은 자가 수만이고, 그들의 시신을 우물에 던져서 모두 메우고, 나머지는 강에 버렸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흉포함과 잔인함은 사람들마다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다. 동시에 그는 여산 동림사의 철나한을 경성으로 운송하는 척 하며 백여척의 전선을 동원하여, 강주에서 약탈한 재물을 모조리 자신의 집으로 옮긴다. 이처럼 비열한 행적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선종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조한에게는 그 나름의 보신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괴(교활함)"이었다.
송태조시대이건 송태종시대이건, 조한은 시종 탐욕스러웠다. 그리고 공을 앞세워 오만했다. 그리고 여러번 비판을 받고도 고치지 않았다. 문신, 무장들 사이에 명성이 아주 좋지 않았다. 황제는 그의 전공이 혁혁하므로, 비록 종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호해주었다. 나중에 조한은 군용물자를 매각한 것으로 마침내 고발당한다. 죄로 따지면 사형에 처할 것이었다. 송태종은 그를 여주(하남성 여주시)로 귀양보내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때 그는 이미 56세였다. 백발이 창창하고, 걸음걸이가 무디었다. 그의 비참한 결말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성을 무수히 함락시키고, 전공이 혁혁한 장군이어찌 이런 굴욕을 받아 만황의 땅에서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후 궁내의 한 내시가 공무로 서경 낙양으로 간다. 가는 길에 여주에 들러서 조한을 예방한다. 조한은 천자 곁에 있는 사람이 그를 보러 오자, 비통함이 넘쳐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내시에게 말한다: "저의 죄는 무겁습니다. 황상이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사합니다. 나는 반드시 반성하여, 성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그저 내가 죄를 받는 동안 생계가 끊어져서 집안에 식구들은 많은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대가 내 이 낡은 옷을 담보로 잡아서 돈을 좀 내서 죽과 음식으로 바꿔주면 내가 난관을 버텨낼 수 있겠습니다." 내시가 대답한다. "당신이 필요하다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돈을 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옷까지 담보로 집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한의 태도는 아주 확고했다. 그는 옛날 옷을 조심스럽게 싸서 정중하게 내시에게 건넨다. 내시는 할 수 없이 그의 옛의복을 받고 돈을 준다.
내시가 경성으로 돌아와서,조한의 상황을 송태종에게 보고한다. 보고하는 김에 조한이 옛날 의복으로 돈을 바꾼 사정을 얘기한다. 송태종은 급히 내시에게 의복을 가져오라고 한다. 열어보니, 의복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그림이 "강남도"라는 세글자의 제목이 쓰여 있었다. 송태종은 그를 보고 옛날 남당의 여러 군을 수복할 때를 떠올린다. 조한이 선봉이었고, 그가 성을 공략하고, 영웅적으로 전투하던 장면이 눈앞에 어렸다. 그래서 송태종은 즉시 조한일가를 경성으로 부르고, 다시 중용한다. 먼저 우천우위대장군을 내리고, 나중에 좌천우위상장군을 내린다. 이를 보면, 조한이 표면적으로는 '옷'을 내놨지만, 사실상은 '괴(교활함)'을 내놓은 것이다. 이것은 송태종의 심금을 울렸고, 마침내 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매화꽃이 다시 피고 다시한번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기실, 양신도 좋고, 조한도 좋고, 그들이 선종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관료생활을 하면서 기회를 잘 잡고, 여러 경우를 잘 고려해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인치사회에서 모든 것은 사람의 관계가 기준이다. 모든 것은 권력자의 호오를 기준으로 한다. 권력자와의 관계를 잘 처리하면, 계속 승진하는 것이고, 앞날이 밝다. 권력자와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매번 제지당하고, 함정에 빠진다. 그리하여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이렇게 권력의 자기장 속에 들어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직업병과 비슷한 심리적 질환이 있다. 앉거나 서거나 불안해하며, 잘 놀라고 두려워한다. 사람마다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권력핵심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아부하고, 어떤 사람은 충성을 나타내며, 어떤 사람은 강직한 척하고, 어떤 사람은 기회를 노리며, 어떤 사람은 교묘한 수단을 쓴다. 양신, 조한이 쓴 '사'나 '괴'이 수법은 이런 수백수천의 기괴한 수법들 중에서 아주 보통의 것에 불과하다. 수단은 보통아지만 그 효과는 괜찮았다. 보라. 큰 화가 닥칠 것을 두려워한 사람은 마침내 큰 화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재기를 노리던 사람은 재기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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