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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왕흠약(王欽若): 모함도 기술이다

by 중은우시 2012. 1. 11.

글: 안건회(晏建懷)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서 떡이 괜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상 발탁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어떤 원인이 있다. 인간관계를 잘 맺었거나, 재능이 출중하거나, 혹은 조상이 덕을 쌓았거나, 조정내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돈을 많이 썼거나, 아부를 잘하거나 등등. 또 한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에 의존하고, 사람관계를 잘하는데 의존하지 않고, 사람을 해치는데 의존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왕왕 기이한 방법으로 승승장구한다. 송진종(宋眞宗) 때의 왕흠약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왕흠약은 진사급제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조정에 의하여 태상승(太常丞), 판삼사도리흠빙유사(判三司都理欠憑由司)에 임명된다. 하루는 탁지판관 무빈고(毋濱古)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오대(五代)이래 지금까지, 천하백성들이 내지 않고 밀려있는 부세(賦稅)가 엄청나게 많다. 조정에서 계속 내라고 재촉하지만, 백성들이 너무 빈곤하여 상환할 능력이 없다. 나는 황상에게 이런 옛빚은 모조리 면제해주도록 요청할 생각이다" 왕흠약은 그 말을 듣자, 이것은 공을 차지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무빈고 몰래, 밤을 세워 그 밀린 부세의 총액을 계산해본다. 다음 날, 그는 송진종에게 상소문을 올린다. 송진종은 그 글을 읽고 깜짝 놀라서, 그를 불러 묻는다: "이런 큰 일을 선제께서는 모르셨단 말인가?" 왕흠약이 대답한다: "선제께서는 당연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이 문제를 황상께서 해결하도록 남겨두었습니다. 황상께서 인심을 얻을 수 있도록." 송진종은 그 말을 듣고는 아주 기뻐하며 당장 밀린 부세를 대거 삭감해주고, 죄수들도 사면해준다. 백성들은 기뻐하며 황제를 칭송한다. 이 건의에 대하여 송진종은 아주 만족해 했다. 얼마후 그는 왕흠약을 한림학사(翰林學士), 지제고(知制誥)로 임명한다. 그는 핵심의사결정층에 진입한 것이다.

 

위의 행동으로 송진종이 그를 괄목상대하게 되엇다면, 나중의 '동봉서사(東封西祀)'는 송진종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총애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황제들은 모두 행사를 크게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거창한 제사활동이나 축하행사를 벌임으로서 그 자신이 당태종 송태조와 같은 명성을 누리고, 역사서에 큰 발자국을 남기길 희망하는 것이다. 송진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봉서사'를 주제로 한 제사활동을 거행했다. 이를 통하여 그의 공덕을 대거 찬양하고, 개인숭배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런데, 송진종의 이런 황동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자신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명분이 약했다. 여기에 당당한 명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때 왕흠약은 송진종의 생가을 잘 읽었다. 그리하여 "천서(天書)"가 필요할 때는 천서를 위조하고, 사람들이 의심을 품을 때는 그가 앞장서서 해명을 하곤 했다. 한마디로, 그는 송진종의 이 행사를 위하여 온갖 성의를 다했고, 있는 힘을 다 쏟았다. 그리하여 두 번의 제사활동은 '만세'소리와 함께 성공적으로 끝난다. 이때부터 송진종은 왕흠약을 더더욱 신뢰한다.

 

많은 선비들의 이상은 진사에 합격하고, 한림이 되고, 학사가 되더, 황제를 보좌하여 '인정을 천하에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왕흠약에 있어서 실권이 없는 관직은 눈에 들러오지 않았다. 황제가 그를 아무리 신뢰해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꿈에도 그리던 것은 인사권과 재정권을 지니고 실권을 다 가진 재상이었다. 그는 명확히 알았다.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는 것을. 그가 앞장서서 나서서 기회를 만들어야 비로소 꿈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한다.

 

왕단(王旦)이 재상으로 있을 때, 한림학사 이종악(李宗)은 풍류도 있고, 재주가 넘치는 것으로 널리 이름있었다. 왕단은 그를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추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지정사는 부재상에 해당한다. 당시 왕흠약은 자정전학사(資政殿學士)였다. 그러나, 학사는 부재상의 관직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실권이 훨씬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짜낸다. 사전에 왕단이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는 좋은 의견이라고 찬동한다. 그리고 뒤로는 송진종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 "이종악은 일찌기 왕단에게 삼천민전(三千緡錢, 삼천냥 은자에 상당함)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지금 왕단이 이종악을 참지정사에 추천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에게서 돈을 받아낼 생각때문일 뿐입니다." 송나라대 한가지 불문율이 있는데, 그것은 참지정사로 임명할 때, 황제가 삼천민전의 돈을 하사금으로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종악은 확실히 왕단에게 삼천민전을 빌린 바 있었다. 그래서, 왕단이 송진종에게 이종악을 추천했을 때, 송진족은 과연 얼굴에 노기를 드러내며, 동의하지 않았다.

 

곽황후가 병사하고, 송진종은 자신이 총애하는 유미인(유아)을 황후로 삼고자 한다. 참지정사 조안인(趙安仁)은 유미인의 출신이 비천하여 모의천하의 황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들고 일어나 반대한다. 송진종에게 심덕비(沈德妃)를 황후로 삼으라고 주청한다. 심덕비는 사망한 전 재상 심륜(沈倫)의 손녀로 고귀한 명문집안 출신이다. 송진종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조안인은 정직한 것으로 사람에 유명한 사람이어서 송진종은 화를 꾹 참고 따로 질책하지 않는다. 왕흠약은 조안인을 몰아낼 생각을 그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는 암암리에 이 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한번은 송진종과 한담을 하는 자리에 송진종이 당금대신들 중에서 누가 덕망이 가장 높은지를 묻자, 왕흠약은 아무런 주저없이 이렇게 답한다: "아무도 조안인에 비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당시 심륜이 아끼던 사람이고, 지금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보답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송진종을 그 말을 듣자, 조안인이 심덕비를 추천한 이유를 깨달았다. 다음날 그는 조안인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쉬게 한다.

 

왕흠약은 이런 사람이다. 그가 찍지 않으면 몰라도, 그가 한번 찍은 사람은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다. 도망칠 곳이 없어진다.

 

경덕원년(1004년), 거란은 20만대군을 이끌고 남침하여, 송나라군대와 대전투를 벌인다. 재상 구준(寇準)이 앞장서 주장하여, 송진종이 친정(親征)을 하고, 전주(澶州)에서 거란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양국은 정전협정을 맺는다. 바로 전연지맹(澶淵之盟)이다. 그후 변방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업제 종사하여, 국내는 날로 번영했다. 이에 대하여 구준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어느 날, 조회가 끝난 후 구준이 먼저 떠났다. 송진종은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흠약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송진종에게 말한다: "폐하께서 이토록 구준을 존중해주시는데, 그가 강산사직에 공이 있기 때문입니까?" 송진종이 말한다: "당연하다" 왕흠약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전연지맹을 폐하께서 수치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시다니 이게 웬 말입니까?" 송진종이 이해가 되지 않아 말한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가?" 왕흠약이 말한다. "성하지맹(城下之盟)은 <춘추>에서 모두 치욕으로 여깁니다. 전연지맹은 전형적인 성하지맹입니다. 폐하께서는 대국의 군주라는 존귀한 신분으로 오랑캐의 소국과 굴욕적인 맹약을 맺었습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치욕적인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송진종은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왕흠약이 뒤를 이어 말한다: "폐하께서는 도박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도박꾼이 거의 다 잃을 때가 되면 왕왕 판돈을 모두 걸게 됩니다. 이를 올인(孤注)이라고 합니다. 폐하는 바로 구준의 손아귀의 '올인하는 판돈'입니다. 그는 폐하를 최후이 올인으로 삼아서 고주일척(孤注一擲)한 것입니다. 이것은 폐하를 가장 위험한 지경에 빠뜨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송진종은 구준을 날로 멀리하기 시작한다. 다음 해, 구준을 섬주지주로 보낸다. 직위를 강등시켜 외직으로 보낸 것이다. 얼마후 왕흠약은 바라던대로 재상에 오를 수 있었다.

 

송나라때의 이창령은 <낙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왕기공(왕흠약)은 성격이 음험하고 권모술수를 잘 썼다. 사람을 해치는게 교묘했다(巧於害人)". 여기서 '교(巧)'라는 글자는 왕흠약이 관료로서의 행적을 생동감있게 나타내는 글자이다. 왕흠약과 같이 품성이 저열한 사람이 관료들의 도덕수준에 대한 요구가 높았던 송나라때에도 쫓겨나지 않고 오히려 계속 발탁되었다는 것은 왕흠약에게 남다른 뛰어난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뛰어난 점은 사람을 해치는데 뛰어나고, 사람을 해치는데 교묘하다는 점이다. 사람도 모르고 귀신도 모르게 해치운다. 동료의 어깨를 밟고 위로 기어오른다. 황제의 곁에 있는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은 밀어낼 사람은 밀어내고, 쫓아낼 사람은 쫓아냈다. 마지막에 재상의 자리는 자연히 그의 것이 된다.

 

이를 보면, 사람을 해치는 것도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