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속전(張粟田)
뤄간(羅干)부터, 장쩌민계는 정법위(政法委)를 확실하게 장악하여 왔다. 정법위의 산하에는 공안, 국안(국가안전부), 사법, 법원, 검찰이 있고, 지방이 무경(武警, 무장경찰)을 움직이고 사용할 수 있다. 장쩌민은 정법위에 대한 통제를 통하여 중국의 전체 사법계통에 관여, 통제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두 가지 작용을 한다. 첫째, 장쩌민이 정한 기존방침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뤄간부터 저우용캉까지 정법위서기는 모두 장쩌민이 억지로 정치국 상임위원에 집어넣은 사람들로, 정법위서기에게 최대한의 권력을 주었다. 현재는 중공권력분배에서 하나의 원칙이 된다. 이것은 이전에 없었던 일이다. 정법위의 권력이 확대된 후 독자적인 체계를 이루고 중국고위층의 제2권력중심이 된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취임한 후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이끄는 중앙정부와 대치하는 국면을 이룬다.
장쩌민계가 정법위를 통제하고 있는 동안에, 장쩌민계는 장악한 권력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나쁜 일을 벌였고, 인민들에게 적지 않은 피의 빚을 진다. 그리하여 일부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더더욱 장쩌민계에 의탁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게 된다. 그중 보시라이가 가장 전형적인 예이다. 그는 승진을 위하여 장쩌민을 따라 민중을 박해하여 피빚을 많이 졌다. 장쩌민 저우용캉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현재 장쩌민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죽어라 보시라이를 중공권력핵심에 밀어넣고 싶어한다.
외부에서는 확신하고 있다. 장쩌민계가 장악한 정법위는 여러해동안 외부에서 알지 못하는 나쁜 짓을 벌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정법위의 흑막 아래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장쩌민이 퇴임한 후, 정법위를 장악하는 것은 장쩌민, 저우용캉, 보시라이 3사람이 목숨을 부지하는 관건이 되었다. 이것은 장쩌민계의 급소이기도 하다. 장쩌민 저우용캉은 일찌감치 보시라이를 청치국 상임위원으로 올려 정법위서기를 담당하도록 하고자 내정했다. 이를 통하여 장쩌민이 집정때 민중을 박해한 정책을 변경시키지 않고, 장쩌민, 저우용캉 두 사람이 정적으로부터 숙청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왕리쥔사건을 통하여, 후진타오, 원자바오는 보시라이가 정치국 상임위원에 들어가고 정법위서기를 맡는 길을 막아버렸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장쩌민계가 정법위를 통제하며 사법계통을 좌지우지하던 것을 끝낼 수 있다면, 장쩌민, 저우용캉, 보시라이의 세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일단 정법위의 보호를 잃으면, 그들은 껍질을 벗은 거북이와 같이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의 칼에 요리될 수있는 것이다.
3월 9일 오전 충칭대표단 개방일에, 보시라이는 150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왕지쥔사건"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타흑은 필요하다. 그리고 충칭의 타흑은 공안 혼자서 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왕리쥔 혼자서 한 것도 아니다. 정법위가 가운데서 조정한 것이다." 그는 더더욱 깜짝 놀랄 말을 내뱉었다. 중요한 간부문제는 모두 중앙기율검사위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서기인 허궈창은 충칭서기를 지냈고 많은 옛부하들이 보시라이가 벌인 '타흑'으로 타도되었다. 보시라이의 이 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보시라이의 이 말은 당이 통제하는 각 매체에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그저 충칭의 지방매체에서만 '선택'적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이는 설명한다. 중공중앙은 보사리이의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왕리쥔사건에서 중앙은 보시라이에 대하여 입장이 완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최근 들어 저우용캉이 충칭에 대하여 거듭 찬양하고 있는데, 이러한 저우용캉의 개인행위는 중공중앙을 대표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쩌민과 저우용캉은 보시라이에 크게 걸었다. 보시라이가 '왕리쥔사건'으로 곤란을 겪고 있지만, 저우용캉이 나서서 도와주고 있다. 이것은 장쩌민계에 이미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보시라이는 3월 5일, 충칭대표단토론회에서 충칭모델을 강조하여 후진타오,원자바오에 도전했다. 그후 3월 8일, 저우용캉이 충칭 심의회에 참석하여, 충칭이 취득한 '성적'을 찬영했고, '충칭모델'을 긍정했다. 이는 확실히 보시라이를 지지한 것이다. 다음날인 3월 9일, 보시라이는 충칭대표단 개방일에 보시라이는 '타흑'에서 중대한 사건은 상부(정법위)에 보고했다고 말한다. 정법위서기인 저우용캉도 '충칭모델'을 긍정했고, 보시라이는 정법위가 자신의 뒷배경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당중앙의 '왕리쥔사건'에 대한 성격규정이전에 나온 것이다. 저우용캉과 보시라이는 다시 한번 손을 잡고,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게 보시라이와 왕리쥔을 분리해서 처리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중공의 과거 내부투쟁을 막후에서 조작하던 잠규칙을 깨트린 것이다.
Bill Goetz는 왕리쥔이 미국측에 건넨 자료중에 보시라이와 저우용캉이 시진핑을 끌어내리고 권력을 장악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저우용캉과 보시라이 두 사람은 조조와 같은 마음을 지녔다. 그러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한헌제가 아니다. 일단 정법위의 권력을 놓지게 되면, 저우용캉과 보시라이 두 사람은 옛날의 동북왕 가오강(高崗)처럼 될 것이다.
저우용캉과 보시라이 두 사람이 공동으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밀어부친 전후과정을 보면, 장쩌민계의 다른 고관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저우용캉과 충칭쪽에서만이 보시라이의 일인극과도 같은 공연을 도와주었다. 이를 보면 장쩌민계의 내부가 이미 분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리쥔사건이 발생한 후, 장쩌민계의 사람들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장쩌민계가 통제하던 정법위시대를 끝내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장쩌민계의 사람들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보았다. 정법위는 장쩌민계에서 자신들의 후원처럼 여겼던 곳이다. 정법위의 권력을 놓치게 되면 장쩌민계는 마지막 보호우산마저 사라지게 된다. 정적의 총구앞에 그대로 노출된다. 내부투쟁에서 다른 각파와 협상할 본전도 없어지는 것이다.
중국의 후계자인 시진핑의 미국방문기간동안 에 보시라이와 저우용캉이 시진핑을 끌어내리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폭로되었고, 장쩌민계 인사들은 전전긍긍했다. 시진핑이 승계한 후 장쩌민계를 숙청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저우용캉이 보시라이와 손을 잡고 반격하는데 있어서 관망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보시라이 저우용캉의 편에 서서 후진타오 원자바오와 결사적으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외에 군사위 부주석인 쉬차이허우(장쩌민계)는 2월중순 광주군구를 시찰하면서, 군대는 당장앙, 중앙군사위 및 후진타오의 지휘를 받아야하낟고 강조했다.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허궈창은 3월 3일 충칭대표단으로 가서, 충칭이 후진타오를 우두머리로 하는 당중앙과 일치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두 사람의 최근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쩌민계는 이미 분열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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