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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보시라이-왕리쥔사건

보시라이, 결국 면직되다

by 중은우시 2012. 3. 15.

글: 역검봉(酈劍鋒)

 

2012년 3월 14일, 원자바오는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왕리쥔사건에 대하여 반응을 나타냈다. 원자바오의 말은 길지도 않았다. 그러나 의미심장했다. 당시 우리는 분석해본 결과 3가지 면에서 통상적이지 않았다.

 

첫째, 원자바오는 확실히 준비를 하고 말한 것이다. 심사숙고끝에 말을 꺼낸 것이다;

둘째, 간접적으로 왕리쥔사건의 거대한 영향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충격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셋재, 말투가 강경했다.

 

역시나, 바로 이어지는 소식은 부총리인 장더장(張德江)이 충칭시위 서기를 겸임한다는 것이었다. 보시라이를 대체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했던 것이지만, 예측한 범위는 벗어났다. 마치 상황이 급전직하하여, 1개월여동안 사람들이 추측하고 판단한 수수께끼의 해답이 나온 것같았다.

 

우리는 먼저 기자회견을 보자. 로이터사 기자의 질문에 대한 마지막 두 문제를 대답하면서, 원자바오는 말했다: "여러해동안 충칭시의 역대정부와 많은 인민군중은 개혁건설사업에 큰 노력을 쏟았다. 또한 확실히 성적을 냈다. 그러나, 현임 충칭시위와 시정부는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왕리쥔사건에서 교훈을 진지하게 얻어야 한다." 원자바오는 당당한 총리로서, "현임 충칭시위와 시정부는 반드시 반성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그가 두번의 근 10년에 걸친 임기내에 없었던 일이다. 말투가 이렇게 강경한 것은 보시라이와 충칭시정부의 전임 몇몇 인물들과 구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격노한 사람이 "이것을 참으면 더 참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맛을 풍긴다. 단지 원촨대지진때 그가 전화통을 붙들고 전국인민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민들이 너희를 길렀다. 너희는 알하서 해라"(군대가 이재민구조에 힘을 쏟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전화통을 집어던졌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중국공산당이 이미 보시라이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이다. 며칠전 전인대 회의에서 저우용캉, 보시라이, 황치판이 충칭개방일에 한 말은 이렇지 않았다. 그들은 혹은 지지를 표시하고 혹은 자신을 위하여 변명했다. 손바닥을 펴면 구름이고, 손바닥을 뒤집으면 비가 내린다. 이것이 바로 중국관료사회가 순식간에 만변하는 것이다.

 

그외에, 원자바오는 충칭당국에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지적한 반성해야 할 점은 바로 보시라이에 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이다:

 

첫째, 충칭모델을 반성해야 한다.

둘째, 창홍타흑을 반성해야 한다.

셋째, 왜 보시라이가 충칭을 독립왕국으로 만들려 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앞의 두 가지는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벌인 극좌수법이다. 왜냐하면, 소위 "충칭모델"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극좌이고 거액의 돈을 들여서 창홍을 하는 것으로 '2차문혁'이라 할 수 있다. 타흑도 공안,검찰,법원의 사법기관을 동원하여 고문하여, 자신에 반대하는 자들을 청산하는 것이다. 둘은 그 자신의 승진을 위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미지공정'이라고 해도 좋다. 그가 다롄에서 각종 화초를 심으면서 녹화사업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백성들도 거기서 약간의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야심가인 관료사회의 노련한 인물인 보시라이는 취옹지의부재주(醉翁之意不在酒)이다. 동기와 목적이 백성은 아닌 것이다. 마지막 것은 보시라이가 2007년 충칭에 간 이후, 충칭을 자신의 개인영지화 했다. 그리하여 독립왕국화 하여, 점점 꼬리가 커져서 자르기 힘든 제후할거의 모습을 보이면서, 여러번 중국관료사회의 금기를 건드린다.  

 

"우리도 우회로를 걸어봤다. 교훈도 있었다. 당의 11기 3중전회, 특히 당중앙이 약간의 역사문제를 정확히 처리하는데 관한 결의를 한 이래, 사상해방, 실사구시의 사상노선과 당의 기본노선을 확립했다. 그리고 개혁개방이라는 중국의 운명과 전도를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을 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인민이익에 부합하는 모든 실천은 역사에서 경험과 교훈을 진지하게 얻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와 실천의 시험을 받아야 한다. 이 이치를 전국인민이 알고 있다." 원자바오의 이 말은 충칭의 '창홍'등 극좌적인 수법을 확실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상해방', '개혁개방'이든 <건국이래 당의 약간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이든 모두 철저히 문혁을 부정하는 것이고, 문혁을 부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시 무슨 '창홍'을 하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이다. 개혁개방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이 이치를 전국인민이 알고 있는데' 아쉽게도 충칭은 모르고 있었다.

 

왕리쥔사건의 결말은 이제 초보적으로 나온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왕리쥔, 보시라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그들 둘에게 어떤 죄명을 붙이고, 처리할 것인지; 그 외에 아마도 충칭시장 황치판 등도 연루될 것이다;

둘째, 보시라이의 막후인 저우용캉, 장쩌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는 큰 촛점문제이다. 일단 패를 던지면 어사망파할 수밖에 없다.

셋째, 왕리쥔이 미국에 제공한 내막자료를 기밀해제할 것인가? 공개할 수 있을 것인가?

넷째, 다음으로 원바바오가 해야할 몇 가지 일로 얘기한, 정치체제, 당과 국가지도제도개혁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다섯째, 18대의 배치는 충칭에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왕리쥔사건을 초보적으로 처리했다고 하여 중국공산당이 안도의 숨을 내쉴 수는 없다. 어쨌든 작금의 형세는 이미 예전과 다르다. 아마도 앞 물결이 사라지기도 전에 뒷 물결이 밀려올 것이다. 이 점은 원자바오가 기자회견에서 이미 여러번 그의 우려와 난점을 얘기한 바 있다. 한편으로, "문혁의 착오와 봉건의 영향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의 발전에 따라, 분배불공정, 신뢰부족, 부정부패등 문제가 나타났다" "현재 개혁은 공성단계에 들어섰다. 정치체제개혁의 성공없이는 경제체제개혁을 철저하게 진행할 수 없고, 이미 취득한 성과도 아마 다시 잃을 수 있다. 사회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문화대혁명과 같은 역사적인 비극이 아마도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원자바오의 말은 듣기에 처참하고 비애가 느껴진다. 그가 가슴 속의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공산당의 경험을 종합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꽃이 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왕리쥔사건 하나가 중국공산당을 뒤흔들었다. 이는 중국공산당에 절대 길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