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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홍콩; 마카오

"메뚜기"와 "개": 대륙과 홍콩

by 중은우시 2012. 2. 15.

글: 설용(薛涌)

 

 

 

얼마전, 북경대학교수인 콩칭동(孔慶東)은 홍콩사람이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대륙아동을 혼내는 동영상을 보고는 홍콩인들은 "개"라고 하였다. 일부 홍콩인들은 대륙의 임산부들을 "메뚜기"라고 부른다. 심지어 홍콩에 온 대륙관광객을 둘러싸고 "메뚜기노래(蝗蟲歌)"를 부르기도 한다. <빈과일보>와 <상보>는 더더욱 전면 '반메뚜기'광고를 실었다. 큰 글자로 된 제목은 "홍콩인, 참을만큼 참았다."였다. 대륙의 네티즌들도 이에 지지않고, '참을만큼 참았다"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서로 다른 점이라면, "참을만큼 참았다"시리즈는 홍콩인을 공격하기만 할 뿐아니라, 연해의 대도시로 몰려드는 외지인들을 겨냥하기도 하며, 많은 경우는 대륙사회자체를 비판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태평양의 건너편에서 이를 보고있자니, 마음 속으로 또 다른 느낌이 든다. 몇년전에 홍콩,싱가포르에서 모두 생활해보고 일해본 대륙의 친구가 홍콩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더 적은 급여를 받으며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을 보았다. 그 주요한 원인은 자신의 영어실력이 시원찮다는 것이었다. 홍콩에 가면 매번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듣기에 이상했다. 미국은 영어를 쓰는 국가이고, 홍콩은 영어, 광동어, 보통화를 모두 쓰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대륙사람이 영어때문에 홍콩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단 말인가? 미국에서는 오히려 괜찮은데...

 

이런 일은 미국인, 유럽인, 남미인, 혹은 기타 다른 지역의 사람이라면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대중화권'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생활해보고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대륙사람이라면 뼛속 깊이 느끼는 일이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메뚜기" "개"같은 사태가 미국에서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 3월 미국의 대학캠퍼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 얘기해보는 것이 좋겠다. UCLA의 백인여학생인 Alexandra Wallace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데, 주변에서 핸드폰을 들고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중국유학생들과 말싸움하다가 지쳐서 몇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었다. 제목은 "도서관 안의 아시아인"이며 Youtube에 올렸다. 그는 거기서 조롱섞인 말을 했다:

 

"지금은 UCLA의 기말시험 마지막 주입니다. 내가 얘기하는 것은 아마도 정확한 언어양식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분의 어떤 친구를 해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저 도서관 안에서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최근 몇년간, 많은 무리의 아시아인들이 UCLA로 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너희들 아시아인들이 UCLA에 왔으면, 미국인의 행위방식을 받아들여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기숙사 부근은 아시아학생들로 꽉 차 있습니다. 주말이 되면, 그들의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형제자매등이 모두 옵니다. 그들을 위하여 빨래해주고, 쇼핑해주고, 밥을 해줍니다. 아시아의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자립하는 것을 가르칠 줄 모릅니다. 그외에, 아시아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행동방식을 가르치지 않스비다. 들어보세요: 우리 미국인들은 도서관에서 핸드폰으로 큰 소리를 내서 통화하지 않습니다.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정치학등 수업내용을 복습할 때, 미친 듯이 글을 쓰면서 막 영감이 떠오르려고 하면, 15분마다 아시아인들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OHH Ching chong ling long ting tong? OHH"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미국여자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한 손가락을 입술에 대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쉿. 여기는 도서관이다. 다른 사람이 공부하지 않느냐." 그러나, 여기서 5분마다 한번씩 아시아인들은 모든 가족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 쪽에 쓰나미가 있어서, 전화를 걸어서 가족들이 무사한지를 알아보는 겁니다. 쓰나미가 매우 무서운 재난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모든 이재민들에게는 안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서 전화할 수는 없는가? 이렇게 들어주셔서 감하빈다. 만일 여러분이 아시아인이 아니라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핸드폰으로 전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녀의 아시아인들의 목소리를 흉내낸 것을 보아서는 그녀가 지적하는 것은 분명히 최근 들어 대륙에서 몰려온 중국유학생입니다. 현재 UCLA에는 이미 695명의 중국에서 온 본과생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2년전보다 5배나 늘어난 수치이며 학생총수의 3%를 차지합니다. 이들이 처음에 미국에 오면 공공장소에서의 행위규범을 잘 모릅니다. 도서관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뒤쪽은 말이 뒤죽박죽입니다. 그녀는 일본과 중국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국인들이 모두 쓰나미때문에 집에 전화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시사에 대한 전형적인 무지입니다. 문화상 이처럼 무지한 것입니다. 아시아인들은 주말에 친척친구들과 모입니다. 그녀는 안개속에서 꽃을 보는 것처럼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다보니 아무렇게나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대륙에서 온 유학생과 아시아계 미국인도 한꺼번에 묶어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대륙유학생의 부모가 매주마다 태평양을 건너서 아이의 기숙사로 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 동영상이 올라오자 마자, 즉시 많은 네티즌들이 보게 됩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아시아계들이 큰 소리로 항의한 것은 별론으로 하고, 백인들의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너같은 암캐가 있다는 것은 우리 백인을 모욕하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UCLA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고동학교때의 동창생까지 나섰습니다: "우리는 당시 같은 반에서 공부했는데, 졸업후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낸다." 그 말에 숨은 뜻은 그녀가 원래 다른 사람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히 Alexandra Wallace는 이렇게 쓰나미같은 악플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즉시 동영상을 내렸고, 바로 공개사과를 했다. 그러나, '인종주의'의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UCLA가 그 지진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녀는 계속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서 퇴학을 한다. 그녀를 비난하는 목소리 중에서는 소수의 그녀를 동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말했다: "나는 일본인이다. 내 생각에 그녀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같지는 않다. 도서관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비문명적행동이 아니란 말인가? 이게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또 다른 미국인으로 보이는 네티즌도 이렇게 호소했다: "모두 관용하고 용서하자. 그녀의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녀가 즉시 동영성을 내렸고, 사죄했고, 부득이 퇴학까지 했다. 그녀는 아직 젊으니, 이번에 자신의 멍청한 행동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아주 큰 댓가를 치렀다. 우리가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말인가?"

 

동영상을 보면, 이 Alexandra Wallace라는 여학생은 교양이 높지도 않고, 미국백인의 자신들이 잘났다는 오만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기말시험의 긴장된 분위기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스트레스가 컸다. 대학은 그녀에게 새로운 환경이었을 것이고, 여러 방면에서 적응하는데 힘들었을 것이다. 곧 시험이 다가오는데 도서관에서 조용하게 공부할 수가 없으니, 그녀는 감정을 콘트롤하지 못하고, 이렇게 화풀이하는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비록 그녀의 행간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조롱이 충만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욕같은 것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동영상을 내렸지만, 그 동영샹은 계속 전재되거나 일부가 잘려서 패러디물로 만들어졌다. 시청자만 수백만이다. 나는 그녀에게 동정과 걱정을 한다. 그녀는 이미 길거리의 쥐처럼 보는 사람마다 때리는 대상이 되었는데, 미국에서 다시 괜찮은 학교를 찾을 수 있겠는가? 스무살도 되지 않은 그녀가 한때의 감정콘트롤미스로 이렇게 심한 댓가를 치른다는 것은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이와 비교하면, 동아시아의 중국인사회는 법도 하늘도 없다. 미국의 종신교수제도는 비록 교수의 언론자유를 엄격히 보호하지만, 하버드의 교수 한 명이 텍사스주 사람들을 '개'라고 욕했다면 그가 계속하여 학교에 남아있을 수있겠는가? 홍콩인들의 태도는 더욱 실망적이다. 이것은 자신들은 대륙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콩칭동의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비난한 사람이다. 하나의 정치권력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문화가 쇠락하고 도덕이 타락한 사회에서 콩칭동과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이번에 대륙에서 콩칭동 하나가 나왔다면, 홍콩에서는 몇 명의 콩칭동이 솟아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록 문혁기간에 컸지만, 어려서부터 공공버스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임산부를 '메뚜기"라고 칭하다니, 이런 말을 도대체 얼마나 더러운 입이어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을 보라. 얼마나 많은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복지를 침범하고 있는가? 그래도 미국인들 중에서 공개적으로 그렇게 감히 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메뚜기"라는 광고가 만일 미국의 신문에 실렸다면, 아마 즉시 법원에 제소될 것이고, 패소할 것은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대륙과 비교하자면, 홍콩은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이다. 이치대로라면 더욱 뛰어난 시민의 품성을 지녀야 한다. 홍콩이 오랫동안 대륙으로부터 이익을 얻어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다수의 홍콩인들은 윗대나 그 윗대에 대륙에서 이민온 사람들이다. 대륙의 백성이 홍콩으로 가서 아이를 낳는 것은 홍콩인들이 누릴 수 있는 그 유한한 자유를 아랫 세대에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이 확실히 홍콩인들의 복지를 침해한 것은 맞다. 홍콩도 상응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홍콩은 대륙과 붙어 있고, 대륙과 왕래를 해야만 한다. 이렇게 조금의 손실을 보는 것도 마다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홍콩의 신문이 인류의 경계선에 도전하는 야만적인 언어로 대륙인일 모욕할 수 있는 것은 기실 중국정부가 일국양제의 명성과 대만의 통일전선을 위하여 자신의 국민의 이익과 존엄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홍콩인들은 변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존엄도 쉽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의 이런 불행을 이용하고 거기에 모욕까지 가하는 것이다. 이는 실로 전형적인 중국식의 이기심과 냉혈이다.

 

최근 십여년동안, 동아시아사회는 글로벌화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다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글로벌화함으로 글러벌화가 가져오는 다원화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중국문화권에서 심지어 같은 글과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간에도 이처럼 악의가 충만하다. 대륙인과 홍콩인들이 서로 적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륙의 도시사람과 농촌사람도 서로 대립한다. 지역차별은 곳곳에 존재한다. 설마 서로간의 교류와 협력에서 거대한 이익을 얻어오지 않았단 말인가? 언제나, 중국인들간에 마음과 마음으로 상대방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