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당태종의 세 번에 걸친 도화운(桃花運)

중은우시 2012. 1. 17. 16:21

글: 정계진(丁啓陣)

 

당태종이 대신들과 치국의 도리를 논한 책인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보면, 당태종 이세민에게 닥친 세 번의 도화운을 기록하고 있다.

 

첫번째 도화운은 정관원년(627)에 발생한다. 유주도독우령군, 여강왕 원(瑗)이 모반으로 주살된 후, 그의 총희(寵姬)를 궁으로 데려왔고, 그녀는 당태종의 미인(美人, 후궁의 한 등급)이 된다. 그녀는 예쁘게 생겨서 이세민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두번째 도화운은 정관2년에 발생한다. 일찌기 수왕조때 통사사인을 지냈던 정인기(鄭仁基)에게 열여섯,일곱살된 딸이 있는데, "용모가 뛰어나서 당시에 그녀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당태종 이세민의 황후인 장손씨는 그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서, 이세민에게 후궁으로 들이라고 권한다. 이세민도 동의하여, 그녀를 충화(充華, 후궁의 한 등급)로 한다는 조서를 반포한다.

 

세번째 도화운은 정관19년(645년)에 발생한다. 당태종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고ㅜ려를 공격했는데, 고려왕 고장(高藏)과 막리지 개소문(蓋蘇文)이 사신을 보내와서 당태종 이세민에게 고구려미녀 2명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중국역사서를 조금만 뒤져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이런 도화운은 황제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다. 마음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정관정요>의 기록에 따르면, 이 세 번의 도화운은 모두 이세민이 스스로 포기한다.

 

첫번째 도화운이 끝나게 된 것은 황문시랑 왕규(王珪)와 관련이 있다. 하루는 당태종이 왕규와 얘기를 하다가, 이미 자신의 후궁이 된 여강왕의 총희를 가리키며 왕규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강왕은 잔인무도했다.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그녀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수단이 잔혹하기 그지없다.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세민의 이 말은 원래 뭐 틀린 말이 아니지만, 왕규에게 꼬투리를 잡힌다: 왕규는 이세민에게 다른 사람의 처를 빼앗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왜 자신도 똑같은 일을 하느냐고 힐문을 받는다. 이세민은 어쨌든 일대의 명군이다. 왕규의 말을 듣고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칭찬했다"고 한다. 그리고 즉시 그 미녀를 자신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두번째 도화운이 끝나게 된 것은 위징(魏徵)과 관련이 있다. 위징은 정인기의 달이 이미 육(陸)씨성의 집안에 시집보내기로 혼약했다는 것을 듣고는 바로 당태종에게 달려가서 그만둘 것을 권한다. 모두 알다시피 위징은 직언하는데는 조그만큼의 양보도 없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폐하는 백성의 어ㅓ이로서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의 걱정을 걱정해주고, 그들의 기쁨을 기뻐해야 합니다. 자고이래로 도리를 아는 군주는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한마디로 말해서, 위징은 이 일이 백성들의 어버이로서의 처신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덕을 해치는 일이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이세민은 대경실색한다. 좌복야 방현령, 중서령 온언박, 예부상서 왕규, 어사대부 위정등의 대신들은 일치하여, "대례를 이미 거행했으므로 중단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육씨집안에서도 정씨집안과 혼약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세민은 그래도 칙명을 내린다. 자신이 상황을 잘 알지 못하여, 후궁으로 들이는 조서를 내렸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고, 관련관리들을 비판한다. 이렇게 하여 또 한번의 도화운도 물건너간다.

 

세번째 도화운이 끝난 것은 다른 사람과 관련이 없다. 이세민은 당시에 고구려 사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짐은 이 두 여자가 멀리 자신의 부모형제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에 연민을 느낀다. 이 여인들의 미모를 사랑하는 것은 이 여인들의 마음을 해치는 일이다. 그런 일을 내가 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당시 고구려사신은 두 여인을 데리고 돌아갔다.

 

중국 수천년의 역사상, 손가락에 꼽을 일류황제(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송태조)중에서, 당태종이 아마 멋진 정치어록을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일 것이다. 말을 잘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 바라는 좋은 일을 거절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태종은 해냈다. 여기에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당태종이 세번의 도화운을 포기한 이야기는 당금의 정부관리들에게 좋은 거울이 된다. 입으로 '백성들에게 봉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진정 인민폐를 위하여 봉사하지 않고, 인민이 아닌 자신을 위하여 봉사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좋은 관리가 되기로 뜻을 세운 사람이라면, 이세민을 본받아 말한대로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