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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당태종)

당태종(唐太宗)은 어떻게 죽었는가?

by 중은우시 2010. 3. 25.

글: 양국선(楊國選)

 

당태종은 중국역사상 나라를 잘 다스렸던 몇 안되는 군주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는 한창 나이에 사망을 해서, 우리에게 궁금증을 남겼다.

 

무덕9년(626년) 육월 사일 '현무문사건'이 벌어진다.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이 피살되고, 이세민이 태자가 된다. 두 달후, 이세민이 등극하니 나이 28살때의 일이다. 역사에서는 그를 '당태종'이라 부른다. 이세민은 23년간 재위했고, 수나라 멸망의 교훈을 되새겨, 언로를 널리 열고, 현신을 대담하게 기용해서, 정치에 힘을 쏟고,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사회는 점차 안정되어가고, 국력도 강성해지며, 역사상 유명한 '정관지치'의 전성기를 이룬다.

 

다만, 그가 황제에 오른지 십여년이 지나자, 편안한 생활에 젖어들었는지, 점차 사치부패에 물들게 된다. 그는 수양제가 낙양에 건설했던 호화로운 궁궐을 재건하였다. 또한 그는 태자 이건성의 비인 양약석(楊若惜)을 차지하고, 이미 사망한 대신 무사획의 14살된 딸을 재인으로 뽑고, 그녀에게 '미(媚)'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녀가 바로 '무미낭(武媚娘)'으로 나중의 무측천이다. 이세민의 만년, 즉 그가 황제로 있던 마지막 몇년은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미신에 빠지고, 단약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53세라는 한창나이에 숨을 거둔다.

 

정관22년, 경성의 하늘에 태백성이 여러번 낮에 출현한다. 이것은 원래 천체운행의 자연현상이지만 태사는 점을 쳐서는 이것이 '여주창성(女主昌盛)'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세민은 다시 민간에 떠도는 <<비기(秘記)>>의 내용을 듣는데, "당나라는 삼세(三世)이후 여주무왕(女主武王)이 천하를 차지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하여 이세민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의 이씨왕조를 어찌 '무씨왕조'에 빼앗길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무왕'을 찾아내려 한다. 이때 이군선(李君羨)이라는 자가 그물망에 걸려든다. 그는 관직, 작호, 적관과 직무에 모두 "무(武)"자가 들어 있었다: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이었으며, 무련현공(武連縣公)이었고, 무안현(武安縣) 출신이며, 궁성의 북문인 현무문(玄武門)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태사공의 점이 그와 교묘하게도 딱 들어맞았다. 게다가 그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 그에게 여자아이의 이름을 붙여주었었다. "오랑(五娘)"이었다. 그런데, 이 "오(五)"와 "무(武)"의 중국어발음은 Wu로 같았다. 이렇게 하여 그는 여주(女主)라는 것에도 들어맞게 된다. 이세민은 점을 믿고, 이성을 상실했다. 그는 따지지도 않고, 이군선을 화주자사로 좌천시킨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사람을 보내어 죽여버린다. 이군선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그는 이세민의 미신의 희생물이 되었다.

 

정관21년, 이세민은 중풍에 걸려, 행동이 불편해진다. 어의가 치료를 해서, 반년후에는 병세가 호전되어, 3일에 한번은 조회를 볼 수 있게 된다. 만일 계속 치료하면서 정양했더라면, 아마도 점차 좋아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이세민은 방사들이 만든 금석단약(金石丹藥)에 빠져, 스스로 장생불사하고자 했다. 그는 먼저 국내의 유명한 방사들이 만든 단약을 먹는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하여 국내의 도사들은 도술이 얕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여, 해외의 고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정관22년, 대신 왕현책(王玄策)이 전쟁을 하던 중에, 인도의 승려 하나를 포로로 잡는다. 나라이사바(那羅邇娑婆)라고 하는 자였다. 이세민이 장생불사를 꿈꾼다는 심리를 잘 알고 있던 그는 나라이사바를 이세민에게 바친다. 이 인도승려는 스스로 200세의 나이라고 허풍을 떨면서, 장생불사술을 연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연단을 만들면 반드시 장생불사할 수 있고, 심지어 한낮에 천궁으로 올라가서 신선을 만날 수도 있다고 떠벌린다. 그의 이런 말을 이세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이 인도승려에게 호화로운 거처를 마련해주고, 매끼니 좋은 음식을 대접했고, 많은 시중드는 사람을 붙여주었다. 그의 생활은 제왕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는 이세민이 자신을 깊이 믿는다는 것을 알고는, 아주 기괴한 약재이름을 제시한다. 이세민은 천하에 명을 내려 그가 제시한 약재를 구해오도록 한다. 값이 얼마이든 댓가가 얼마이든간에.

 

정관23년, 당태종은 <<제원(帝苑)>> 12편을 써서, 태자 이치에게 건네준다. 그는 이치에게, "수신치국의 도리는 모두 이 책 속에 있다.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이 속에 들어 있다. 너는 고대의 명군현주를 모범으로 삼으라. 나같은 군주는 본받을 바가 못된다. 나는 황제가 된 이래로 좋지 않은 일을 많이 했다. 비단주옥이 가득했고, 궁전과 누대도 수시로 만들었다. 사방을 순유하여 백성들을 힘들게 했다...." 이세민이 태자 이치에게 한 후회하는 심정의 이 말은 아마도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고 이치에게 한 정치적 유언인지도 모른다.

 

정관23년 사월, 나라이사바는 장생불사약이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이세민은 아주 기뻐하면서, 아무런 망설임없이 약을 먹는다. 그런데, 속이 좋지 않았다. 그는 급히 장손무기와 저수량을 부르고, 태자의 앞에서 그들 둘에게 태자를 잘 보필하라고 당부한다. 말이 끝나자, 돌연 일곱구멍에서 피가 흘렀다. 이는 중독에 의한 급사였다. 그의 당시나이 53세이다. 중국역사상 '장생불사약'을 먹고 죽은 첫번째 황제가 된다.

 

이치가 등극한 후, 장손무기와 저수량의 보좌하에, 대신 왕현책과 나라이사바를 처형했지만, 일찌기 진시황, 한무제가 장생약을 구했던 것을 조롱했던 일대의 명군 이세민도 마지막까지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 장생불사약에 중독되어 죽은 것이다. 황당하면서도 비참하게 인간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