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사회/중국의 사회

중국의 단도박(斷賭博) 활동실태

by 중은우시 2012. 1. 11.

글: 하웅비(何雄飛)

 

고각(高閣, 가명)은 '금분세수(金盆洗手, 손을 씻은)' 직업 노천(老千, 사기도박꾼)이다.

그에게는 위대한 비지니스개발의 꿈이 있다. 2012년 5월 1일전에, 심양시 동북쪽의 기반산관광지에 중국최대의 카지노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10만평방미터의 카지노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관광객들은 해외로 나갈 필요없이, 미국 라스베가스, 말레이시아 겐팅 하이랜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마카오 카지노의 모든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고각은 연미복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매고, 각종 사기도박술을 시연한다. "중국은 매년 6000억위안의 도박자금이 해외로 유출됩니다." 고각은 말하면서 입줄을 뜯었다. "나는 모든 관광객들에게 1인당 공짜로 수만위안의 모의칩을 나눠줄 것입니다. 그들이 국내에서도 놀 수 있고, 게다가 공짜로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재산을 모두 날리면 어떤 느낌인지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박으로 돌을 벌겠다는 환상은 철저히 깨트릴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동방의 라스베가스는 기실 현실판의 사이버카지노였다.

 

중국에 고각과 같이 '단도박'을 선전하는 '천왕(千王, 사기도박꾼)' '패왕(牌王)'과 '도왕(賭王)'이 열명은 넘는다.

업계인사가 쓴 <중국도왕랭킹리스트>라는 인터넷글을 보면, 여러병의 '단도박' 도왕의 이름이 나온다: 홍콩 '천왕지왕' 마환대사 곽안적(郭安迪), 그는 유겸(劉謙)의 첫스승이고, 주윤발, 주성치가 주연한 도박영화의 '대역'이었다. 일찌기, <도신> <도성> <상해탄>등의 영화에 지도를 한 바 있다; '중국패왕'(카드를 섞거나 알아내는데 제일인다)인 정태순(鄭太順); '중국천왕' 마홍강(馬洪剛). 그는 <암등(暗燈)>을 썼고, 거기에 명언을 남긴다 - "신수(新手)는 노수(老手)를 두려워하고, 노수는 천수(千手)를 두려워하고, 천수는 실수(失手)를 두려워하고, 실수는 타수(剁手)를 두려워한다"; '주사위왕' 감위웅; '산동도왕' 왕자명; '실전도왕' 정빈.

 

한 익명의 인사는 이렇게 바이두에 이런 것을 물은 적이 있다: "만일 정태순과 마홍강이 함께 카드를 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 네티즌이 대답했다: "정태순은 마술사이고,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은 전국에서 가장 세다. 마홍강은 도박이 가장 세다. 도박은 마술이 아니다. 사기술이 발각되면 손이 잘린다. 정말 100만위안을 걸고 도박을 한다면 절대로 마홍강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공연을 한다면 각자 뛰어난 점이 있다."

TV와 신문을 보면, 이 중국의 '단도박'연맹군들은 각자 단도박공작실, 단도박구락부, 모의카지노, 단도박식당등을 열고, 전국각지를 돌아다니고, 도시농촌에서 활약하며, 각종 사기도박술을 보여주는데 열중한다. 과거, 그들은 사람들의 가산을 탕진시키는 '마귀'였다면, 지금 그들은 불길 속에서 사람을 구해주는 '천사'가 되었다.

 

매체에 보도된 것을 보면, 요녕성 반금의 농촌에서 태어난 마홍강은 13살때부터 사기도박을 시작하고, 15년간 사기도박계에 몸담았다. 사람들은 그를 '도왕' '천왕'이라고 불렀다. 2009년 4월, 그는 돌연 깨닫는 바가 있어, 심양에 단도박구락부를 열어, 공개적으로 사기도박술을 공개했고, 사람들에게 도박하지 말 것을 권했다. 그는 <노예유약>에도 나온 바 있고, <소최설사>에도 나왔으며, <성광대도>에도 출연했다. 그는 이미 3000명의 도박꾼을 도박을 끊는데 성공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전적 소설인 <암등>도 출판해서 도박장의 내막과 사기술의 진상을 공개했다.

 

하남 복양(濮陽)의 사국기(佀國旗)는 도박을 좋아하는 처 정연(程娟)의 도벽을 끊게 하기 위하여, '중국패왕' 정태순을 모셔와서 그녀와 도박을 하게한다. 정연은 단 한판도 이기지 못하자 철저히 깨닫는다. 부부는 스스로 정태순과 '3년간 무상으로 단도박운동을 하겠다'고 맹세하고, 2008년 8월부터 지금까지, 3년간 전국의 9개 성을 자비로 돌면서 단도박을 선전하고 지금까지 800명이 성공적으로 도박을 끊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길림송원의 '천왕' 후암은 도박장에서 16년간 굴렀다. 그는 힘든 일을 겪은 후 단도박구락부를 만든다. 거기서 사기술을 공개한다. 흑룡강성 청강의 '강삼륜' 강정복은 30년간 사기도박을 해온 인물이다. 2009년 그는 10만위안을 들여 '대동북노강단도박연맹"을 만들고 단도박을 선전한다. 그의 곁에는 8명의 옛날 사기도박시의 동료들이 도와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더 많은 합작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한다. 다른 도시에도 분지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이 도박을 멀리하도록 권하려 한다.

 

사천 아안의 유충강은 8살때부터 도박을 시작했고, 동남아의 카지노를 15년간 돌아다녔다. 2008년에 강소 상주에 '왕노오단도박구락부'를 만들어, 단도박을 선전한다. 지금 '왕노오'는 단도박구락부를 폐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오리털파카가공공장을 만들었다. 사람을 만나면, '왕노오라고 부르지 말고 유충강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산동 덕주의 정빈은 20여년간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는 대륙의 '천왕지왕'이다. 지금은 단도박투사가 되었다. 그는 '단도박만리행'을 계획하고 잇다. 산동제남의 왕자명은 마을 안에서 석탄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붓글씨를 연습한다. 그러면서 단도박핫라인 '무상단도박'을 열어서 운영한다. 산동 임청의 이충현은 도박사기술을 18년간 연구했고, 지금은 현장에서 사기술을 시연하면서 도박을 끊도록 권유하고 있다. 안휘 합비의 '도왕' 왕광애는 카지노를 30년간 종횡했고, 2010년 단도박공작실을 연다. 2011년 3월 아들 왕효량의 결혼식은 사기도박술공개로 도박금지를 호소하는 단도박대회가 되어 버렸다.

 

강서 무주에서 출생한 '아주도왕' 요건운은 처지가 가장 참혹하다. 그는 광동 공해상에서 사기술이 들통나서, 두 다리가 잘리고, 왼쪽 손의 손가락 3개가 잘렸다. 지금은 그저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을 뿐이다. 2011년 그는 무한에 '단도박식당'을 열었는데, 장사가 안되어 4개월만에 30만위안의 손실을 보았다.

 

고각은 2005년부터 심양에서 단도박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번째 '모의카지노, 단도박센터'는 2008년에 나타났다. 그때 황고구 곤산로의 100여평방미터짜리 집인데, 안에는 십여개의 도박도구를 전시하고, 카드의 뒤를 읽을 수 있는 안경등도 있었다.

2011년, 고각은 말했다. 그를 통하여 도박을 끊은 160여명이 돈을 모아서 우홍구 마삼가진에 5000평방미터짜리 '공익모의카지노'를 열었다. 이것은 L자형의 2층짜리 노란색 건물이다. 만일 집옥상에 '공익모의카지노'라는 간판을 붙여놓지 않고, 문입구에 '단도박센터'라는 간판과, '카지노를 확실히 알고, 사기술을 상세히 알자'는 표어가 없었다면, 이곳이 도박장인줄 몰랐을 것이다. 이 도박장의 왼쪽에는 공업용펌프공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세무국이 있다. 개 한마리가 짖고 있을 뿐, 주위는 조용했다.

 

이곳은 예전에 호화로운 식당이었다고 한다. 천만장자 한 사람이 도박을 끊는데 성공한 후 공짜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황금빛이 찬란한 천정의 아래에 자동마작상이 하나 놓여 있고, 두 개의 카드테이블, 두 개의 바카라테이블이 있었다.벽에는 고각이 카드를 돌리는 장면을 찍은 이미지사진이 걸려 있다. 고각은 사기도박술을 보여주었다. 그는 손에 든 카드를 한번 섞고, 두 손가락으로 3장의 카드를 집어서 돌려보니 3장의 A였다. 그는 카드를 마구 섞은 다음에 한 장을 뽑게 한 다음 다시 넣고서 계속 섞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카드가 나타났다. '도박장에서 도박꾼이 잃는 것은 돈이지만, 사기도박꾼은 잃으면 목숨이다." 그는 예전의 사기도박꾼들이 사기술이 들통난 후 손가락이 잘리고, 두 손이 잘리고, 발의 근육이 잘린 피비린내나는 사례들을 얘기해 주었다. 고각은 자신이 다른 단도박투사들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헛된 구호만 외친다. 정신적인 단도박은 실질적으로 진위를 구분하기 힘들다. 나는 실전파이다. 직접 모의카지노를 열어서, 적나라하게 대면하여 보여준다. 이렇게 직관적이고 강렬한 자극이 더욱 효과적이다."

 

고각은 심양사람으로 1971년생이다. 집안에 형제자매가 4명인데, 큰누나는 식당을 하고, 둘째누나는 전동차를 팔며, 동생은 돈을 많이 버는 화물운송회사를 경영한다. 그는 셋째이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 어쩌다가 마술포카가 아주 신기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1980년대, 고각은 시장에서 행상인들 옆에 '마술포카. 카드 뒷면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함'라는 입간판을 세우고 도박꾼을 끌어모았다. 나중에 사기도박꾼도 찾아왔다. 그에게 도박장을 열도록 요청한다. "1989년, 나는 그들에게 두 세번 도박장을 연결시켜 주었다. 돈을 벌면 그중 20%를 나에게 주었다. 말만 하고 돈을 버니 너무 편하게 벌었다."

 

이때, 고각은 사기꾼들의 사기술에 관심을 갖는다. "만일 나도 이 기술을 배우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고각은 자신은 그저 사온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스스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5년간 익힌 후, 먼저 친구들 사이에서 써먹는다. 한번에 수백위안을 벌었다. 나중에 점차 오애가복장도매시장의 가게주인들과 놀기 시작한다. 오애가복장도배시장은 심앙에서 숨은 부호가 많은 곳이다. 현지인들은 오애시장에는 천만장자가 백명이 있고, 백만장자는 천명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오애가에서 의류도매를 하던 유씨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7,8명의 도박을 좋아하는 꾼들이 있었다. 많이 잃을 때는 하룻밤에 수십만위안을 잃었다.

 

고각은 당시의 사람들은 선량했다고 한다. 도박에서 잃어도 자신의 운을 탓했지, 다른 사람이 사기술을 썼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는 한번에 만위안, 팔천위안씩 땄다. 1년이면 8만 10만위안을 벌었다." 1995년, 고각은 의류도매상으로 위장하고 광주로 간다. 그는 고가로 사서, 저가로 파는 방식으로 현지의 도매상들과 친해진다. 그는 장사에서 10위안을 잃으면 도박에서 100위안을 따곤 했다. "사기도박꾼의 수법중 하나는 먼저 사업상 거래를 하고, 친구가 되어서,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게주인에게서 몇만위안을 따면 사람을 바꾼다. 와이셔츠가게주인에게서 뽑아낸 후에는 양복가게주인을 사기치고, 양복가게주인을 사기친 후에는 양말가게주인을 사기치는 식이다. 1개월에 20여만위안을 사기칠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각은 빈번하게 도시를 바꾸었다. 대련, 의오, 항주, 대경, 남녕, 곤명, 무한, 상해, 그는 해산물도매상도 해보고, 운전기사도 해보고, 고관2세 행세도 하면서 순조롭게 다녔다. 그는 한 곳에서 이틀동안 최대 178만위안을 딴 적이 있다고 한다. 상해 갑북구에서 할 때는 금화의 또 다른 사기도박꾼을 만났다. 사기도박꾼들은 서로 손놀림을 보면 알 수 있다.

 

2005년 한 친구가 우루무치로 가서 사기도박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이것이 함정인 줄은 몰랐다. 한 사장은 막 사기술을 쓰려던 고각과 친구를 지하카지노에 1주일간 감금한다. 그리고 손을 자르겠다고 협박하며, 그가 도박으로 잃은 200만위안을 되찾으려 했다. 결국 그 사장이 판을 만들어, 고각이 3번을 도와준다. '돈을 잃어도 떠들 수 없는' 정부관리로부터 200만위안을 사기친다. 그리고서 풀려났다. 다행히 허리띠에 감춰둔 3000위안이 있어서 심양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당시는 정말 구사일생이었다. 그후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고각은 그때부터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고, 도박을 끊기로 결심했다.

 

"열번 도박하면 아홉번을 잃는다. 열번 도박하면 아홉번은 사기다.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이 따는 것이다."

"마술사는 천하인들을 웃게 하지만, 사기도박꾼들은 천하인들을 울게 한다. 사기도박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카라는 사실상 카지노가 벌게 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수단을 쓰고, 카지노는 과학기술을 쓴다. 도박은 모두 카지노에서 조종한다. 도박꾼은 그저 패를 받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니, 카지노는 영원히 잃지 않는다. 도박장에서는 돈을 벌 수는 없고, 패가망신만 한다. 나중에는 집도 집이 아니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고각의 단도박명언들이다.

 

다만, 우루무치에서 위험하기 전인 2004년, 그는 사기도박꾼 '소고'의 신분으로 CCTV <소최설사>에 출연하여 사기술을 공개한 적이 있다. 고각은 이렇게 해명한다: "당시 동료들이 나에게 왕푸징에서 판을 만들어놓았다고 하였다. 30만위안을 따면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겨우 10만위안만 줬다. 그들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하여,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TV에 나가서 신분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골치아프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핫라인전화를 눌렀다."

2010년 3월, 단도박활동을 하던 고각은 북경에서 '중국민간 축구도박반대제일인'이라고 불리고, '곡구(哭球)'식당을 운영하는 임걸(가명)과 만난다. 한 명은 마직, 카드도박기술이 뛰어난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축구도박의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바로 마음이 맞아 함께 "고임단도박센터'를 만든다. 이것은 지금 흐지부지 되었는데, 고각에 따르면 자신이 몸을 나누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임걸에 따르면,'이용당하는 것같은 느낌이어서'라고 했다.

 

현재 중국의 단도박을 선전하는 통상적인 수법은 도박기술과 사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도박꾼들이 자기 눈으로 도박의 비밀을 보게 되면, 손을 씻고 도박판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술을 공개하는 것과 도박기술을 전수하는 것은 겨우 종이 한장 차이이다.

 

임걸은 말한다. 그는 단도박을 선전하는 많은 '천왕' '도왕'들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들은 모두 합작과 이익분배를 애기했다. 축구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왕왕 포카테이블에도 앉는다. 그들은 이쪽 자원을 아주 중요하게 보았다. 내걸은 것은 공익의 깃발이지만, 사실상 매체선전을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도박훈련반을 열고, 도박도구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는 일찌기 북경TV의 PD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PD는 어떤 '천왕' '도왕'은 TV에 출연하게 해달라고 돈을 밀어넣어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10년 3월, 한 사기도박꾼 만방(가명)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단도박영웅은 사실 사기도박도구를 팔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박기술을 전수해주고 있다고. CCTV에 출연한 바 있는 한 패왕의 2009년도 수입은 여느 상장회사에 못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5월, <동남조보>의 보도에 따르면, 강씨성의 그 사람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 단도박과정을 개설하였다고 하여 2만위안을 내고 들어갔는데, 강의를 들으니, 가르치는 것은 단도박이 아니라 도박기술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중 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정 공익사업을 하는 것은 바보이다. 공익을 내걸고 돈을 버는 사람이 총명한 사람이다." 축구도박반대를 5년간 해오고 '곡구'식당을 연지 3년된 임걸은 지금 '공안부 중국보안협회 쇄구수리공분회 비서장조리'로 있다. 그는 단도박에 절망하여 퇴출을 선언했다. 그는 보복이 겁나서 2009년에는 '곡구'식당도 팔아버린다. 지금 그는 열쇠수리공으로 살아가고, 더 이상 축구도박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