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마진일(白馬晋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삼국시대에는 영웅들이 많이 나왔다. 영웅본"색"(英雄本色). 이것도 다툼없는 사실이다. 삼국시대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한 영웅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일대간웅 조조마저도 여인때문에 말에서 굴러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남자들이 모조리 패권을 다투는 세계에서 '일만들기 좋아하는' 여자들이 나와서 국면을 흐트리기도 했다. '염복(艶福)'이라는 것이 어찌 남자들만의 전유물이겠는가? 약한 여자들도 드넓은 흉금으로 큰 일을 해낼 수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여자는 당연히 초선(貂蟬)이다.
이 초선은 원래 동한말기 사도 왕윤 집안의 가녀(歌女)였다. 이 여자는 폐월수화, 경국경성의 미모를 지녀 왕윤의 총애를 받았다. 막 무너지려는 동한왕조는 동탁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었고, 왕윤은 이 국적(國賊)을 제거하고자 했다. 아픔을 참으며 사랑을 끊었다. 연환계를 써서, 먼저 초선을 암암리에 여포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다시 초선을 동탁에 바친다. 이때부터 이 가녀의 운명은 동탁 여포와 관계를 맺게 된다.
<삼국지>에 이런 말이 있다: "동탁은 무술에 재능이 있어, 좌우를 달리면서 쏠 수 있었다." "여포는 활과 말을 잘 쓰고, 팔 힘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비장(飛將)이라고 불렀다." 이를 보면 동탁과 여포는 모두 개인적인 자질이 상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당대의 호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남자복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우리의 초선은 즐기는 동시에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 동탁의 침대에서는 여포를 얘기하고, 여포의 침대에서는 동탁이 나쁘다고 귓속말을 하곤 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동탁과 여포는 서로 갈등이 생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여포는 동탁이 조회에 나가는 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이 나라의 '최고권력자'를 제거해버린다.
아마도 초선의 경력은 너무나 화려한지 모른다. 민간의 글쟁이들은 손이 근질근질했는지, 여러가지 스캔들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항간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원나라의 잡극 <금운당>에서 여포는 백문루에서 참수된다. 조조는 도원결의를 한 삼형제를 이간질하기 위하여, 초선을 겉으로는 관우에게 주겠다고 하고, 몰래 유비에게도 주겠다고 한다. 다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왕윤의 연환계처럼 고명하지 못하였다. '투명장(投名狀)'을 쓴 유비와 관우는 미색에도 와해되지 않았다. 관우는 초선을 과감하게 죽여버린다. 곤극 <참소>에는 아예 유비를 풍류를 모르는 장비로 바꿔놓는다. 조조가 초선을 장비의 손을 거쳐 관우에게 보내는데, 관우는 이 오점이 있는 미녀를 거절한다. 그러나, 이 여인의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하여 다른 사람의 명성까지 더럽히게 될까봐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밤에 초선을 군장으로 들어오게 한 후에 검을 뽑아 등불아래에서 죽여버린다. 당연히, 또 다른 <한서통지>라는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책에서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조조가 뜻을 얻지 못하여, 먼저 동탁을 유혹한다. 초선을 들여보내어 그 군주를 유혹한다." 이 책을 보면 우리는 돌연 깨닫게 된다. 원래 초선은 조조의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조조는 범려(범려는 서시를 부차에게 보낸다)를 모방하여 사랑하는 여인을 국적 동탁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소설, 야사 속의 초선은 남자복이 많았지만(동탁, 여포, 유비, 장비, 관우, 조조와 스캔들이 있었다), 비교적 엄숙한 <삼국지>에는 겨우 이런 몇 글자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동탁은 자주 여포에게 중합을 지키게 했다. 여포는 동탁의 시비(侍婢)와 사통한다. 그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 마음이 불안했다." 여기에 나오는 동탁의 시비(첩)은 분명히 초선일 것이다. 내용이 얼마되지 않으므로, 초선의 남자편력은 아마도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또 다른 한 여자가 있는데, 그녀의 풍류는 역사서에 분명하게 글자로 남아 있다. 그녀의 이름은 손노반(孫魯班)이다.
당연히 이 노반은 나무를 가지고 노는 그 노반이 아니라(전국시대에 뛰어난 목수가 있는데 후세인들은 그를 노반이라고 부른다), 남자를 가지고 노는데 열중한 여인이다. 봉건시대에 여자가 남자를 가지고 노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부녀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수감된다. 그래도 노반에게는 뒷배경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인 손권(孫權)이다. 아 장중보옥이 결혼할 나이가 되자 용모를 중시하던 손권은 용모를 비교하여 사위를 선택한다. 한동안 살펴본 다음에 고인이 된 주유 대도독의 장남인 주순(周循)을 점찍는다. 동오국왕의 부마가 되었으니, 이 주순의 관운은 탁 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주순의 몸이 날로 쇠약해졌고, 결국은 죽어버린다.
젊은 나이에 과부로 있다보니, 손노반은 적막을 참지 못했다. 그리하여 여러번 손권에게 가서 호소한다. 손권도 손노반의 계속된 애원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아끼는 딸을 위하여 남자를 찾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한 남자를 찾는다. 위장군 겸 좌호군 겸 서주목인 전종(全琮)이 바로 그 남자이다. 전종에게 시집갔기 때문에, 손노반은 역사서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된다: 전공주(全公主). 이 전종은 재혼이었다. 전종은 주순에 비하여는 건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도 손노반이 마흔이 되는 해에 체력이 버티지 못하여 죽고 만다. 손노반은 비통해 하면서도 흥분한다. 혼인의 족쇄를 벗어났으므로 도덕적으로 손노반은 대담하게 마음에 맞는 '정인'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때 당질인 시중(侍中) 손준(孫峻)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손준은 아주 멋있게 생겼다. 황족의 친척이므로 손권은 그를 아주 신임했다. 그리하여 그는 동오의 후궁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 이처럼 영준한 남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다니, 손노반은 당연히 침을 흘리게 된다. 무슨 윤리배분은 신경쓸 것도 없이 어떻게 하면 손준을 침대로 불러들일까만 생각했다. 비록 손노반은 이미 나이가 들었지만, 궁중의 여러 보양술이 있어서 미모는 여전했다. 그리하여 손노반이 눈길을 주자, 손준은 즉시 이를 알아챈다. 당연히 손준이 원하는 것은 이 나이든 여인의 '면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얻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손노반의 얘기는 손권에게 잘 먹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손준은 관직이 계속 올라서, 동오의 권력최고봉에 오른다.
그러나, 손준은 정인군자의 풍모를 지녔지만, 하는 일은 기남패녀(欺男覇女)의 황당한 짓이었다. 그래도 손노반은 그를 여러가지로 보호해준다. 당연히 나쁜 짓을 많이 하다보니, 오래 살 수가 없다. 손준은 얼마후 죽고만다. 그러나, 이때의 손노반은 이미 남자를 새로 찾을 생각을 버린다. 왜냐하면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오의 문무백관들이 조만간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때 그녀의 힘이 되어주던 손권은 이미 죽어서 지하에서 조조, 유비와 놀고 있었다. 과연 손휴의 대가 되어서, 일생동안 풍류를 즐기던 전공주 손노반은 결국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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