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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중국이 발명한 "4대 간첩도구"

by 중은우시 2011. 12. 28.

글: 예방육(倪方六)

 

오늘 여러분과 얘기하고 싶은 것은 간첩에 대한 것이다. 최근 들어 간첩뉴스가 핫이슈이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것은 미국의 무인정찰기가 이란에서 추락한 것이다. 사실 최초의 '무인정찰기'는 중국인이 발명한 것이다. 그리고 공중급유도 필요없이 정보의 전달과 수집을 완성할 후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중국고대에 '44대발명'이 있었다. 각각 제지술, 나침반, 화약, 활자인쇄술이다. 실제로 중국인이 발명한 것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은 간첩도구에서도 여러가지 발명과 창조가 있었다.

 

간첩도구를 얘기하자면 간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첩은 소위 '정보인원'이다. 특무(特務), 특공(特工)이라고도 불린다. 서방학자들은 인류간첩의 비조를 기원전 10세기에 데릴라라는 이름의 블레셋 여인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은 일찌기 기원전16세기인 하나라말기에 간첩이 나타난다. <좌전? <여씨춘추> <국어>등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윤(伊尹), 최초의 여간첩 말희(妺喜)등이 있다. 

 

간첩의 출현이 이렇게 이른데, 정보수집수단과 간첩도구도 자연히 낙후되었을 리 없다. 그중 4가지는 국제정보계의 인사들의 눈길을 끌었으니, 간첩도구에 있어서 중국의 "4대발명"이라고 할 만하다.

 

청옹(聽瓮): 가장 원시적인 도청기

 

도청은 간첩이 정보를 수집가는 가장 오래된 수단이고 현대스파이들의 필수과목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일찌감치 이 점을 인식했고, 인류 최초의 '도청기' 청옹을 발명한다.

 

청옹은 사실 입부분이 작고 배부분이 큰 항아리이다. 사용때 청옹을 땅 속에 묻고, 항아리의 입구를 얇은 가죽으로 덮는다. 정탐이 필요하면 귀를 위에 대고, 주변의 동정을 '엿듣는다'. 필요하면 직접 전문정보인원을 항아리안에 앉아서 소리를 구분하게 한다. 이를 "앵청(罌聽)"이라고 부른다. 정보의 실수를 줄이기 위하여, 맹인을 훈련시켜 '엿듣는' 임무를 맡겼다. 맹인은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청력은 왕왕 일반 사람보다 뛰어났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방원 수십리의 동정을 청옹을 통하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청옹은 땅굴공성전때 가장 신기한 효능을 발휘한다. 청나라말기 증국전(曾國荃)이 이끄는 상군(湘軍)이 태평천국의 천경(지금의 남경)을 공격할 때, 성안의 태평군은 성벽의 아래에 청옹을 묻고, 성밖의 적군동정을 정탐했다. 그리하여 상군은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결국 천경이 땅굴전에 뛰어난 상군에게 함락되는데, 이것은 청옹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청옹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청옹의 발명은 지금으로부터 개략 2500년전의 일이다. <묵자.비혈>에는 청옹의 제조 및 사용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나중에 사용과정에서 청옹은 계속하여 개선되고, 현대의 도청기가 나타나기 전까지 가장 유효한 도청도구였다. 예를 들어, 당나라대, 호롱박 모양의 베개형 도청기가 나타난다. 쉬는 때 도청기를 머리 아래에 베고 있으면, 바깥의 동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 송나라때 도청기는 이미 상당히 실용화되었는데, 다목적도청기 "시복(矢服)"이 가장 많이 쓰였다.

 

심괄의 <몽계필담. 기용>에는 이런 도청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시복은 바로 화살을 넣는 기구이다. 시복은 소가죽으로 만든다. 당시 정찰병은 모두 이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도청이 필요하면, 화살을 꺼내고 충분히 바람을 불어넣는다. 밤에 머리 아래에 베고 누우면, 몇리 이내의 사람과 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외에 민간에서 자주 사용되던 도청기로는 청관(聽管)이 있다. '벽에도 귀가 있다(隔墻有耳)"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절마(反切碼): 가장 풀기 어려운 '암호'

 

현대간첩은 이미 암호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이는 정보안전을 보장할 필요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세계에서 암호를 가장 먼저 사용하였고, 그 방식도 각양각색이었다. "음부(陰符)"는 최초의 군사암호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사용때 쌍방이 각각 절반씩을 가지고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음부는 길이가 서로 다름에 따라 상응하는 정보를 상징한다. 위에는 문자가 없으므로, 적이 획득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음부와 함께 쓰인 것에는 "음서(陰書)"가 있다. '음서'라 함은 완전한 정보를 하나의 완전한 정보를 셋으로 나누어 각각 보내는 것이다. '부서'의 기초 위에서, 나중에 대호(代號), 암호(暗號), 자험(字驗)등 간첩수단이 발명된다. 특히 자험의 발명은 이미 현대의 암호원리와 아주 가까워 졌다. 서로 다른 점이라면, 그것은 글자로 아라비아숫자를 대신한다는 것뿐이다. <무경총요.전집>(권15)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때의 공식문서에서는 40개의 군사단어를 각각 4개의 글자로 대체하여, 40개 글자의 시를 만들어 암호를 해독하는 '암호책'으로 삼았다고 한다.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중국에 진정한 암호가 등장한다. '반절마'이다. 그 원리는 현대암호의 설계원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현대암호보다도 더 풀기가 힘들다. 그것은 한자의 주음(注音)을 이용하여 '발전법'으로 암호를 만들었다.

 

반절주음방법은 동한 말기에 처음 나타난다. 두 개의 글자를 또 다른 글자의 주음으로 하며, 윗글자의 성모와 아랫글자의 운모를 취한다. '절'의 방식으로 다른 글자의 독음을 만들어낸다. '반절마'는 바로 이런 병음반절의 기초위에서 발명된 것이다. 발명인은 유명한 항왜장군이자 군사가인 척계광(戚繼光)이다.

 

척계광은 두 개의 시를 만들어, '암호해독본'으로 삼았다. 한 수는 "유변구기저(柳邊求氣低), 파타쟁일시(破他爭日時), 앵몽어출희(鶯蒙語出喜), 타장여군지(打掌與君知)" 또 다른 한 수는 "춘화향(春花香), 추산개(秋山開). 가빈환가수금배(嘉賓歡歌須金杯), 고등광휘소은항(孤燈光輝燒銀缸), 지동교(之東郊), 과서교(過西橋). 계성최초천(鷄聲催初天), 기매왜차구(奇梅歪遮溝)"

 

이 두 개의 시는 반절마의 모든 비밀이 숨어 있다. 앞의 전15개의 성모를 취하면 차례로 1-15까지 번호를 매길 수 있다. 뒤의 36자의 운모를 순서대로 1-36까지 번호를 매길 수 있다. 다시 자음의 8가지 성조를 순서대로 1-8까지 번호를 매기면 완전한 '반절마' 체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사용방법은 대체로 이러하다. 보내온 정보상의 암호가 5-25-2인 경우 대조한 성모의 번호 5는 '저(低, di)'자이고, 운모의 번호인 25는 '서(西, xi)'이다 두 자의 성모와 운모를 합치면 'di'가 된다. 성조가 2이므로 이는 '적(敵, di의 2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척계광은 별도로 '팔음자의편람'을 만들어 정보인원, 통신병을 전문적으로 훈련시켰다.

 

명반수(明礬水): 널리 사용된 '비밀기록술'

 

중국고대인 정보연구업무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었다. 이는 아마도 중국에 전쟁이 많았던 것과도 관련있을 것이다. 때로는 합치고 때로는 갈라진 것과도 큰 관련이 있다. 음부음서이건, 자험, 반절마이건 모두 눈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일찌기 중국인들은 또 다시 '비밀기록술'을 발명한다.

 

비밀기록술은 일종의 특수한 먹물을 사용한다. 이렇게 하여 글자가 보이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이다. 이런 특수한 먹물은 무슨 하이테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 기원은 아주 편리하다. 사실 사람들이 생활에서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명반수'이다. 명반수로 쓴 글자는 마른 후 종이위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 속에 담그면, 글자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 습자원리에 대하여는, 현재 중학교 화학교과서에도 언급하고 있으니 여기서 더 말하지는 않겠다. 명반수의 이 특성을 발명한 것은 지금으로 보면 소아과 수준이지만, 당시 중국인들이 보기에 이것은 대단한 발명이었다.

 

중국사서에 적지 않은 비사(秘寫) 사례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금사.선종본기>에는 금선종 정우4년(1216년), 몽골인이 태원성을 포위공격하자, 당시 태원의 선무사였던 오고논례(烏古論禮)는 "인간(人間)에게 반서를 지니게 하고 경사로 보내어 긴급함을 통고했다." 이 문구의 뜻은 오고논례가 간첩을 보내어 명반서로 쓴 비밀문건을 보내어 원병을 요청했다는 말이다.

 

강희시대에도 '반서사건'이 있었다. 즉 폐태자 윤잉이 비밀기록술을 이용한 사건이다. 강희54년(1715년) 봄, 강희제는 친히 준가르를 정벌하러 간다. 소식을 들은 윤잉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연금이 해제되도록 하고자 한다. 그는 많은 돈을 들여 그의 부인의 병을 돌봐주던 의원 하맹부(賀孟頫)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명반수로 쓴 비밀서신을 궁밖으로 가져 나가게 한다. 이 일이 보국공 아포란(阿布蘭)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명반수는 압수당한다. 그리하여 황태자의 지위를 회복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비밀기록술은 현대의 간첩활동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먹물'의 성분이 더욱 특수해졌다. 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제조한 약물(현영제)을 써야 읽을 수 있다. 그외에 명반수 이외에 중국고대인들이 자주 식용의 미탕(米湯)으로도 비밀문건을 썼다.

 

지연(紙鳶): 구조가 가장 간단한 '무인기'

 

간첩이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원래 임무이다. 이 정보를 어떻게 전할 것인지도 역시 능력이다. 역참, 봉화대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간첩활동에 쓰일 수는 없다. 특히, 사람을 통하여 전달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주목을 받고 있어서, 몸을 빼낼 수 없을 때는 자신이 직접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를 위하여, 중국인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비둘기를 전달매개로 쓰기도 했다. 이는 명나라때 사람 하수법(何守法)의 <투필부담>이라는 책에 기록된 "봉합대첩(封鴿代諜)"이다. 그러나 비둘기를 훈련시키는 것은 보통 간첩들이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고대인들은 총명했다.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비둘기'를 사용했다. 바로 '지연'이다. 이를 간첩이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 쓴 것이다.

 

'연'은 yuan이라고 읽는데, 통상 말하는 매이다. '지연' 즉 종이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연(風箏)이다. '지치(紙鴟)', '요자(鷂子)', '목연(木鳶)', '비연(飛鳶)'은 모두 지연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비연은 가장 원시적인 무인정찰기라고 할 수 있다. 제조비용도 아주 낮다. 지연이 나타나기 전에, 중국인들은 무인정찰기를 설계한 적이 있다. 바로 목작(木鵲)이다. 이것은 인류최초의 항공비행기이기도 하다. <묵자.노문>의 기록에 따르면, '공수자는 대나무를 잘라서 '작(까치)'를 만들었고 이를 날게 하였다. 삼일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목작은 공중급유도 필요없고, 능히 72시간을 날 수 있다. 이는 현대의 하이테크로 만들어낸 무인정찰기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간첩활동에 썼다면 대단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기술은 지금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이 일찌감치 항공대국이 되었을 것이고, 미국인의 간첩기도 마음대로 중국의 상공을 누비지 못했을 것이다.

 

지연은 기원전의 한나라초기에 발명된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전의 일이다. 발명자는 서한의 개국공신중 하나인 회음후 한신이다. 한신은 군사가이다. 그가 어떻게 지연을 발명하게 되었을까? 원래 당시 열후인 진희(陳豨)가 한고조 유방에 반란을 일으킨다. 한신은 진희와 결탁하여, 지연을 만들어 내외에서 호응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최초로 지연을 정보전달에 사용한 실례이다.

 

지연은 일반인들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통제하기 쉽다. 그래서 발명되자마자 군사에 사용된다. 간첩활동에서 널리 운용된다. 남북조시기의 '후경의 난'때 당시 반군인 후경에 의하여 도성 건업(지금의 남경)에 갇혀 있던 양태자 소강(蕭綱)은 지연을 이용하여 정보를 보내어 구원병을 부른다.

 

지연은 상당히 실용적이다. 아주 높이 날 수가 있고, 적군이 발견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때는 고사포도 없고, 유도탄도 없었다. 화살로는 이를 떨어뜨릴 수가 없다. 당나라때 위박절도사 전열이 모반을 일으켰는데, 임명성을 포위공격하게 되었다. 수비장수 장비수는 지연을 보내어 조정의 구원군과 연락했다. 전열은 당시 상공을 날아가는 지연을 보았고 그것이 성내에서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임을 알아서, 급히 화살을 잘 쏘는 자들을 불러모아서 쏘게 했지만,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지연은 높이 백여장을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