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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신농가(神農架)에 야인(野人)이 존재하는가?

by 중은우시 2010. 12. 10.

글: 방주자(方舟子)

 

중국의 여러 지방에는 자고이래로 '야인'에 관한 전설이 있다. 시시때때로 사람들이 '야인'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1970년대, 국내의 생물학자들이 약간의 조사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야인"(특히 호북성 신농가의 '야인')이 매체의 촛점에 되고 사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그 미쳤던 시기에 전국은 아래위로 모두 신비현상에 빠져 있었다. 당연히 "야인"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이 "야인"붐은 국제적인 주목도 끌었다. 1989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인류학자인 프랑크 포이리어 교수가 중국으로 온다. 한번은 그가 어깨를 드러내고 강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유럽계 사람을 본 적이 없는 현지 촌민들은 "야인"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포이리어는 현지에서의 조사를 통하여, 많은 동물들 곰, 긴팔원숭이, 짧은꼬리원숭이와 금사후를 모두 현지인들이 "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야인"의 목격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동물관찰훈련을 받지도 못하고, 마음의 준비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갑자기 그리고 경황없이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물을 보았다면, 아마도 현지에 널리 알려져있는 '야인"을 떠올렸을 것이다. 연구자들 혹은 기자들의 유도하에 사후의 기억에서 목격자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공을 하게 되고, 자신의 묘사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야인'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 목격자들의 "야인"에 대한 형태묘사는 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키, 모발색깔은 천차만별이고 상호모순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아예 여러 종류의 "야인"이 있다고 말해버린다.

 

생물학의 각도에서 보자면, "야인"이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숫놈과 암놈이 있어야 종족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 고등동물의 종은 한 쌍의 암수로만은 불가능하다. 여러 마리 혹은 수십마리가 있어야 비로소 대를 이어갈 수 있다. 군체가 너무 적으면, 먼저 한 가지 문제에 부닥친다. 적합한 암수비율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자연상태하에서, 암수가 나타날 확률은 비슷하다. 그리하여 대군체에서는 암수의 비율을 대체로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소군체에서는 이 균형이 쉽게 파괴된다. 예를 들어, 간단한 확률로 계산해보자. 1군체에 3개의 개체가 남았다면, 그들이 모두 동일한 성일 가능성이 1/4이다. 만일 개체의 수가 변하지 않는다면, 몇대 이후에는 아마도 모조리 동일한 성의 개체만 남아서 멸종하게 될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면, 1977년 뉴질랜드 협만지역의 한 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묘면앵무는 비록 18마리가 남아있었지만, 모조리 숫놈이었다.

 

작은 군체의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위험은 근친번식이다. 근친번식으로 낳은 후대는 신체상황, 생존능력이 모두 뒤떨어진다. 장기간 이렇게 되면 유전형질이 약화되어, 종의 다양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전체 군체의 멸종으로 귀결지어진다. 하나의 군체가 근친번식을 회피할 수 있으면, 장기간 건강하게 번성할 수 있다. 그러려면 최소한 수백개의 개체가 필요하다. 한 지방에 만일 수백의 "야인"이 살고 있다면, 발견되지 않을 수가 없다. 군거이건 독거이건. 원숭이류는 생활반경이 아주 넓으므로 아주 쉽게 종적이 발견될 수 있다.

 

만일 "야인"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는 없다. 스스로의 진화의 역사는 있을 것이다. 진화과정중에 화석을 남겼을 것이다. 특히 대형육상동물이라면, 상대적으로 화석을 남기기가 쉽다. 현재에서 가까울수록 화석이 더욱 쉽게 발견될 수 있다. 사람들은 많은 종류의 유인원, 원인, 고인류화석을 발견했다. 그러나, "야인"과 연결시킬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야인"이 "거원(巨猿)"의 후예라고 본다. "거원"은 수십만년에서 수백만년전에 살았던 일종의 원숭이이다.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그 화석이 발견된다. 이빨화석만 하더라도 천개가 넘는다. 사실상 "거원"은 "야인"과 많이 다르다. 거원은 "야인"보다 훨씬 크다. 키가 3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목격자들이 묘사하는 "야인"은 2미터를 넘지 않는다. 거원은 두 발로 직립보행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유인원처럼 주로 네발로 걸었다. 이것은 목격자들의 "야인"에 대한 묘사와 들어맞지 않는다. 거원은 개략 30만년전에 이미 멸종했다. 만일 "야인"이 거원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30만년의 진화과정에서 남겼을 화석증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야인"은 죽은 후에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잔해를 남기게 된다. "야인"의 행동이 민첩하고, 행적이 일정하지 않아서 붙잡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시체는 도망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을까? 어째서 이빨 하나조차도 남겨놓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은 삼림속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야인이 죽으면 바로 다른 동물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뼈나 이빨까지도 모조리 먹어치우지는 않을 것 아닌가? 살아서는 사람을 볼 수 없고, 죽어서는 시체를 볼 수 없단 말인가?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야인"의 발견자들이 내놓는 증거는 그저 '야인'의 몸에서 나왔다는 모발이다. 그중  일부 야인이 모발은 감정을 거쳐서 다른 동물이 모발이라고 밝혀지고, 어떤 경우는 아예 모발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어떤 균이나 풀이었던 것이다. 어떤 경우는 어떤 종류의 동물의 모발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모발의 형태만으로는 어떤 동물의 모발인지 감정하기 어렵다. 만일 모근에 잔존세포가 존재한다면, 거기서 DNA를 추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전인자를 분석해서 어떤 종인지를 밝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야인"의 모발은 모조리 모근이 없다. "야인"의 증거중에는 발자국도 있다. 이것은 더더욱 증거로 삼기 힘들다. 다른 동물이 남긴 발자국도 어떤 경우에는 사람의 발자국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곰,  표범이 눈위에 남긴 발자국은 눈이 녹으면서 변형되어, 일찌기 히말라야의 '설인(예티)'의 발자국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세계각지에는 "야인"과 유사한 전설이 많다. 예를 들어, 북미주의 빅풋(Bigfoot, Sasquatch), 남미의 매핑과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요위(Yowie)등이 있는데, 모두 사람과 비슷하게 직립보행을 하면 미지의 원숭이류라는 것이다. 이것은 더욱 황당하다. 왜냐하면, 미주, 호주는 원류(猿類)가 진화한 화석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호주는 원래 고등포유동물조차 없었다. 이는 또 다른 각도에서 "야인"의 전설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런 전설은 그저 독자들을 끌고, 관광객을 끌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 조사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군가는 이를 떠벌릴 것이므로, 완전히 이에 관한 소문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중국청년보 2010.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