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무술대가 곽원갑이 정무문(精武門)을 창립한 이래, "정무"라는 두 글자가 창도한 자강불식의 정신 및 정무문의 일대영걸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곽원갑을 제외하면 그의 큰제자 진진이다.
진진은 1970년대부터, 여러번 은막에 등장한다. 그리고 여러 스타들이 그를 연기했다. 피가 끓고, 애간장을 녹이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깊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파고들었다. 그의 출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있던 영웅의 꿈을 되살렸다. 강건한 혼, 민첩한 몸, 강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혼자서 용담호혈에 뒤어들어, 뛰어난 무예를 시전하여 맨손으로 적을 물리친다. 정말 호정개천(豪情蓋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영웅호한이라면, 아무리 세월의 먼지가 쌓이더라도, 그의 풍채를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민족정신이 대표로 몇대의 중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진진을 모르면 사나이를 모른다. 진진이 곽원갑과 마찬가지로 명성이 대단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역사상 진진이 존재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진진은 그저 허구의 인물이다. 각종 역사기록에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 전문가들의 고증 및 곽원갑 후손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진진은 확실히 허구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해서 그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진진이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1972년 이소룡이 주연한 영화 <정무문>이다. 감독인 나유(羅維)와 이소룡은 곽원갑이 창도한 정무정신을 최대한도로 전승하고 이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역사적 사실의 구속을 받지 않지 위하여, 예광(倪匡)에게 이소룡에 맞는 인물을 만들어달라고 하여, 진진이라는 인물이 만들어지게 된다. 진진의 원형(原型)은 신세내력상으로는 곽원갑의 큰제자 유진성(劉振聲)에서 따오고, 성격에서는 동맹회의 진기미(陳其美)에서 따왔다. 그는 과감하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행동한 인물이며 일본유학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무술은 '정무사걸'중 진공철(陳公哲)과 진철생(陳鐵生)에서 따왔다. 그들은 착실한 무술대가이다. 이를 보면, 진진에게는 여러 역사적 인물의 장점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무정신이 그의 몸에 모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정무총회가 "문호의 장단점을 따지지 않고, 각파의 무술을 하나로 융합힌다"는 종지(宗旨)와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나타나자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하게 된다.
진진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는 곽원갑에 비하여 여지가 많다. 그리하여 영화드라마를 만드는 감독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넘치는 것이다. 사부가 곽원갑이라는 것은 고정되었지만, 나머지 예를 들어, 진진의 출신, 연인, 친구, 적등은 모두 다르다. 어떤 경우에 진진은 시골에서 자란 농민의 아들이고, 어떤 경우는 진진이 해외유학에서 돌아왔다. 양소룡 버전의 진진은 처음부터 사부를 따라 은거한지 여러 해인 '야인'으로 그려졌고, 나중에 사부인 곽원갑을 따라 사회에 돌아왔다. 2010년의 신판에서는 진진이 다시 변신을 하여, 싸움도 잘하고, 춤도 잘추며, 시가를 피우고, 쇼팽을 치기도 하는 우아한 인물로 그려진다. 결론적으로 진진은 감독이나 극작가가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시골인물로 만들든, 외국유학한 인물로 만들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중국인으로 태어나서 중국혼으로 죽었다"는 것뿐이다.
사실, 진진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느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애국만 하면 네가 바로 진진이다" 그는 고개를 빳빳이 든, 불요불굴의 민족정신을 상징한다.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친 수많은 영웅을 상징한다. 나라와 집안이 비바람에 흔들릴 때, 그는 대무외(大無畏)의 기개를 일깨웠고, 몸을 쇠처럼 단단하게 단련시켜 그의 전설을 완성시킨다. 서양인들이 중국인들을 '동아병부'로 모욕할 때,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들고 일어나서 이들을 물리친다. 그는 세상의 불공정에 분노하고, 외적이 괴롭히는 것을 미워하며, 중국인들이 이에 대항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 그는 외적을 크게 미워하고, 민족을 크게 사랑한 인물이다. 이러한 진진의 정신은 무수한 중국인들을 분발시켰고, 중국의 정신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정무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진진의 앞에는 생사의 문이 있다. 이를 넘어가면, 반드시 경찰의 총구가 기다리고 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이것은 영원한 문제이다. 그는 용감하게 이 무거운 문을 열어제킨다. 생명으로 정무정신을 보위한다. 총성이 울리고, 호기가 하늘을 찌르는 진운은 불후의 비석이 된다. "선혈로 잠들어 있는 사자를 일깨우고, 철권을 휘둘러 병부의 치욕을 씻었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진진은 멀리서 걸어와 우리의 시야로 들어왔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채워주었다.
'중국과 경제 > 중국의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이머우(張藝謀):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합작하는 것은 고통이다. (0) | 2012.09.20 |
---|---|
2011년 결산: 중국국내영화의 비애 (0) | 2012.01.16 |
쿵푸팬더2와 문화애국주의 (0) | 2011.06.03 |
100억위안 중국영화시장: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 (0) | 2011.01.24 |
중국영화업계의 버블 (0) | 2010.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