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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쿵푸팬더2와 문화애국주의

by 중은우시 2011. 6. 3.

 

: 북경신보

 

아이들과 6.1.어린이날에 대자연을 보러가고, <쿵푸팬더2>를 보지 않겠다평범하기 그지없는 만화영화로 논쟁이 발생하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상업애국주의는 자신의 발언대를 만든다.

 

자오반호(趙半獲), 콩칭동(孔慶東), 순리쥔(孫立軍)….그들은 예술가이거나 대학의 교수이다. 그러나, 그들의 저지목소리에는 이성이 박약하고, 감정이 충만하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의 팬더에 반대하고, 그것을 문화침략이라고 여기지만, 안으로는 숨은 방식으로 공중에 추파를 던진다. 그 속에 숨은 말은 이것이다: 우리가 만든 것을 봐라. 이게 정말 팬더이다.

 

문제의 관건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하나의 개념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문화침략이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화침략에 대하여 기준이라도 있는가? 없다면, 그저 코끼리만지기나 무한확대의 잘못을 범하지 않겠는가. 결국 극단적일수록 정확한 것이라는 편집증에 빠질 것이다. 문화침략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문화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시대에, 인류문명과의 교류를 차단해버린다면, 그것은 새로운 쇄국주의이다. 이는 더욱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상업애국주의는 애국주의가 아니다. 해국주의(害國主義)이다.” 학자인 천용먀오(陳永苗)의 말이다.

 

왜 상업애국주의는 애국주의가 아니라고 하는가? 그것은 애국을 내세우지만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상업이익이기 때문이다천용먀오의 말이다.

 

모두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그 전제가 국가의 이익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국가기익에는 상업이익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전체적인 상업이익이지, 국부적인 상업이익은 아니다. 국가이익과 상업이익의 양자는 경계가 분명하고, 범주가 다르다. 하나는 정치영역에 속하고, 하나는 경제영역에 속한다 서로 혼동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상업에서 애국주의가 거대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국가적인 이익으로 포장하여, 그 안에서 기회를 엿보고, 사람들의 애국열정을 자신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천용먀오의 기억에서, 상업애국주의가 나타난 것은 중국의 WTO가입후, 국내의 일부기업들이 제품품질이 떨어지고, 관리도 낙후되어 경쟁을 할 수 없게 되자, 민족산업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워, 국가에 정책을 요구하고, 자원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전에 상업이익을 국가정책으로 보호받았는데, 일단 보호막이 사라졌고 그들은 스스로를 변화시켜서 대응하려 한 것이 아니라, 특권을 요구하는 구실만 다양화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룻밤만에 애국자로 되고, 사업가들이 애국을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하게 된다.

 

사실 이들 업계는 대부분 국가안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국가안보를 끌어다 붙였다.” 천용먀오의 말이다.

 

상업애국주의는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초기에는 소수독점집단이 학자를 이용하여 그것을 학술이론으로 포장했고, 이를 통하여 주류의 발언권을 편취한다. 당시에는 아직 공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후 더 많은 기업들이 매체의 위력을 이용하여, 공중에게 선전하기 시작하다. 예를 들어 멍뉴(蒙牛)는 민족산업보호를 명목으로 그들의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해소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들 목소리는 주로 업종관리, 감독부서에 향한다. 여전히 정책을 요구하고, 자원을 요구하는 것이 위주이다. 지금, 자오반호등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공중을 향하여 선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중의 판단을 좌우함으로써, 호응효과를 노려서,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다.

 

천용먀오는 말한다. ‘상업애국주의가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사람의 일상생활에 갈수록 많은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갈수록 직접적이라느 것을 알 수 있다. 당초 소수의 기업이 정책을 요구하는 것에서, 지금은 적극적으로 사람의 가치관과 생활방식까지 간여하게 되었다.

 

상업애국주의를 경계해야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성과 과학으로 포장되어, 실제로는 감정이 분석을 대신하고, 그저 결론만 내려주고 추리과정은 없다는 것이며, 고의로 개념을 혼동시켜서 자신은 절대적으로 정확하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이성을 제창하지만, 실제로는 이성에 필수적인 신중, 엄격, 중립의 원칙을 부정한다. 구호와 입장이외에 영양이 적고,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상업애국주의의 목소리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에 있다. 미국도 포함된다. 그것의 부정적인 영향을 축소시키기 위하여 핵심은 다원화와 언로개방이다.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어야, 매체가 한가지 목소리에 이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전체가 피해를 입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자오반호가 <쿵푸팬더2>를 큰 목소리로 반대하고, 문화침략이라고 소리치는 것은 사실 교묘하게 우리의 큰 환경에서의 결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천용먀오의 말이다. 중국시장은 자원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개인이 세력을 형성하여 일정한 여론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고,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많은 일반 관중들이 보기에 자오반호의 반대는 황당하고 가소롭다. 그들은 이로 인하여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오반호의 목소리가 충분히 커지게 되어, 일종의 의견이 되면, 주관부서는 부득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고, 최종적으로 자오반호는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는 설명해준다. 일단 시장의 핵심요소가 왜곡되면, “상업애국주의가 상업경쟁의 첩경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장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시장에서는 비록 유사한 목소리가 있더라도, 지나치케 큰 부정적 영향은 미치지 않느다.

 

상업애국주의는 사악한 민족주의이다. 심지어 다른 가짜민족주의들보다 훨씬 사악하다. 일단 그것에 묶이면, 사람들은 다시 생각할 능력을 잃는다. <쿵푸팬더>가 좋은지 아닌지는 관중들 자신이 판단한다. 반대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일단 애국이라는 모자를 씌워 버리면, 공중의 판단은 아마도 왜곡될 것이다.” 천용먀오의 말이다.

 

애국주의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감정이다. 그러므로 크게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맹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국가의 좋은 것을 사랑해야 하지, 낙후하고 추악한 것까지 사랑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나라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져야지, 자괴감을 가져서는 안된다. 현대국가에 있어서, 애국주의는 엘리트와 민중을 묶는 유대이다. ‘정치종교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법률, 제도등과 일체가 되어, 현대국가에 있어서는 애국이 일반적으로 법률을 사랑하고, 제도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만일 이 측면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게 되면, 문화 경제영역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애국주의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콩칭동, 자오반호등은 이를 왜곡하고 있다. 그들이 내놓은 것은 이익이 앞서는 상업애국주의이다. 법률과 제도를 존중하고, 상업이익과 다른 나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포장한다. 이것은 인민의 복지를 증진시키지도 못하고, 보편적인 정의에도 배치된다. 이것은 애국주의를 무뢰배의 피난처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화침략이 인기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정의가 모호하고, 내용이 광범위하여, 외래문화에 대하여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부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침략의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침략당했다고 느끼기만 하면, 그러면 너는 침략자이다. 증거도 필요없고, 논리도 필요없다. 그저 주관적으로 인정하면, 그것이 결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일방적인 생각에서의 문화침략이 정말로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문화침략이 있느냐 없느냐는 국가이익측면에서 부정적인 것이 있느냐 없느냐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쿵푸팬더>는 그저 오락영화이다.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을 훼손하지도 않았고, 여하한 정치적인 아름답고 좋은 것을 반대하지도 않는다. 더더구나 국가안전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정치신앙에도 아무런 해가 없다. 이게 무슨 문화침략이냐. 어떤 의미에 있어서, 영화는 중국요소를 숭상하는 외에, 중국의 전통문화를 아주 인정해주고 있다. 그것을 문화침략이라고 한다면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자오반호와 같은 자들도 정말 <쿵푸팬더>가 문화침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주장을 가지고 보통사람들에게 도박을 걸고, 여론압력을 형성하고, 공공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사람들의 생활오락에 대한 일종의 위협이다. 그들은 정당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나와라. 시끄러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이 감상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무료한 팬더논쟁에서 절대다수의 관중은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말을 남겼다: “자오반호의 호소에 호응하기 위하여 어제 일부러 온 가족을 데리고 <쿵푸팬더2>를 보러 갔다.”

 

보통 사람의 판단력이 아직은 방향감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전문가, 교수, 예술가들은 실태를 보이는가? 그것은 편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신경과민때문인가?

 

문제의 근본은 역시 이익다툼이다. 청나라말기에, 진정 외래과학기술, 문화와 학술을 반대한 것은 모두 향신(鄕紳)들이었다. 일반적인 지시인과 진상을 아는 민중들은 오히려 관용적이고 배우려고 했다. 왜 향신들이 반대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장기간 향촌사회의 정신지도권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권력을 잃으면, 그들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이들 향신은 전통문화에 대하여도 천박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전통문화의 흥망은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사리사욕으로, 그들은 전통의 뒷다리를 꽉 붙잡은 것이다. 민족의 진보를 방해할지라도.

 

향신들의 요구는 독점권이었다. 보통백성을 해치는 특권이었다.” 소위 소수의 엘리트들이 팬더다툼에 열중하고 있고,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본토문화의 역량을 전개하려 하지 않는 것은 사실 바로 이런 심리상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은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중국문화와 중국관중을 해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