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장이머우(張藝謀):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합작하는 것은 고통이다.

by 중은우시 2012. 9. 20.

글: 황퉁퉁(黃佟佟), 사배(謝培)

 

음력 '칠석' 하루 전날, 북경신화면영업공사 동사장, "대취(大嘴, big mouth)" 장웨이핑(張偉平)은 돌연 인터넷매체를 통하여 알고 지낸지 20년되고, 합작한지 16년된 유명한 영화감독 장이머우와 정식으로 헤어졌다고 선포했다. 9월 4일, 그는 다시 한번 발표한다. 8월말 공개한 후 흐지부지하던 이장(二張)의 분열이 다시 한번 파란을 불러왔다. 신화면영업공사는 몇몇 포탈사이트에 변호사서신을 보내어 저오둥위(周冬雨), 더우샤오(竇驍), 니니()등 12명의 연예인의 관할권을 회수하겠다고 발표한다. 같은 날 장웨이핑은 텐센트망을 통하여 그와 16년간 합작하면서 11편의 영화를 출품한 옛친구 장이머우 감독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장웨이핑의 비난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장이머우공작실은 '불법'적인 '껍데기회사'라는 것이고 둘은 저우동위, 더우샤오, 니니등의 현재 에이전트는 업무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바로 아이의 친아버지이고....장이머우는 조산원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이제 분열은 '친권다툼'으로 바뀌었다.

 

두 남자의 전쟁

 

계속 핍박하는 장웨이핑과 비교하여, '친권다툼'의 또 다른 측인 장이머우는 계속 침묵하고 있다. 저우동위, 니니의 에이전트인 푸룬(蒲綸)과의 관계는 '감독이전의 부감독'이라고 해명하는 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에이전트이자 2003년부터 장이모우의 부감독을 맡아온 푸룬은 변호사통고방식으로 그가 '실제 에이전트'인 것은 '기정 법률사실이고 부인될 수 없다"고 말한다; 푸룬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두 저우동위, 니니등 연예인의 실제에이전트이고, 이런 기정법률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체에서는 이를 '장이모의 반응'이라고 보도한다.

 

9월 6일, 시대주보 기자는 장웨이핑, 신화면영업선전책임자, 푸룬과 연락하였으나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고, 다른 어떤 매체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9월 8일, <성도상보>의 기자가 베이징 동산환에 있는 장이머우공작실에 잠입하여 장이머우의 조수 팡샤오제의 답변을 들었으나, "잠시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폭풍의 중심에 있는 장이머우공작실은 번영하는 분위기였다.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고, '새로운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장웨이핑의 베이징의 신화면영업공사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장이머우의 묵묵부답의 태도에 대하여, 팡샤오제는 이렇게 말한다: 대응하지 않는 것이 감독의 개성이다.

 

작년 12월 11일, <금릉십삼채>가 첫상연된다. 장이머우는 시대주보를 포함한 매체에 매표수입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오스카상을 노리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이 날이 장웨이핑이 장이머우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기도 하다. 그후 장이머우가 다른 합작파트너를 찾는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기실 눈치빠른 사람이면 일찌감치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장'의 이 싸움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첫째, 더 이상 같은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장웨이핑은 선전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장이머우에 미안한 게 없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는 했다....부부도 7년이면 근질근질한 법이다. 하물며 우리야." 더구나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다. 이런 식의 말에는 숨은 뜻이 있다. 2012년 3월, 장이머우에게 해고당한 무명연기자 허쥔(何)은 돌연 미니블로그에 장이머우가 가족계획을 어기고 자식을 낳았다고 폭로한다. 이 소식은 인터넷을 달구었다. 평상시에 장이머우의 편을 들어주던 장웨이핑이 이 때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기자에게 장이머우 본인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직접 조용하게 지내는 장이머우를 여론의 도마위에 올려놓았다. 인터넷의 평론에 따르면 인터넷에 성과 이름이 올라온 천(陳)씨성의 여자아이 사진은 신분증사진이다. 이 신분증사진은 아주 사적인 관계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진정한 막후인물인가?

 

장이머우의 거취는 여전히 수수께끼

 

이 일이 지난 후, 장이머우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암중으로 장웨이핑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발걸음을 보인다. 소마분등영업공사의 고급부총재 장이바이(張一白)는 시대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이머우는 현재 소마분등영업공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비교적 일찌기 웨이보에서 장이머우와 소마분등이 접촉하고 있다고 폭로한 "우문핵"(가명)은 지금까지 장이머우가 어떤 회사와 계약체결했다는 확실한 소식은 없다 그러나 장이머우는 이미 완다(萬達)영업과 프로젝트식 합작계약을 체결하였을 가능성이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베이징 소마분등영업공사의 억위안이상의 보수와 매표수입분배, 지분수익에서 완다영시공사가 바친 '현금, 지분, 매표수입분배 합계 10억위안"의 큰 선물까지, 그리고 "최초모집자금이 20억위안에 달한다"는 "장이머우문화산업기금"까지 장이어무의 '강호몸값'은 신속히 올라갔다. 그러나 하나하나 무산된다. 모조리 장이머우공작실에서는 헛소문이라고 말한다. <재신> 8월말의 보도에 따르면, 이상의 관련당사자들은 간접적으로 쌍방이 접촉한 바 있다고 하며, 이들 협상에는 모두 장이머우가 직접 나섰다고 한다.

 

비록 아직 거취를 알 수 없지만, 장이머우가 움직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마도 장이머우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떠나버렸기 때문에, 여러해동안 보호자로 자처하며 스스로 많은 것을 부담했다고 생각하는 장웨이핑은 그냥 물러나기 어려울 것이다. 8월, 옛날에 장이모에 의하여 "집에서 전화 몇번으로 큰 돈을 버는" 인물이라고 한 장웨이핑이 직접 나서서 옛친구가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을 가슴아파하고, 심지어 연이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네가 만일 잘못하지 않았다면 왜 나를 피하는가....지금 침묵은 심허(心虛, 마음이 켕기다. 제발 저리다)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시대주보는 여러번 중간인을 찾아서 장이머우를 인터뷰하겠다고 요구했으나, 장이머우는 여전히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자가 장이머우와 관계가 밀접한 주변사람을 인터뷰할 때, 장웨이핑이 신문에 장이머우의 '심허'로 공격한다고 하자, 그 친구는 차갑게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아마 심허가 아니라 심한(心寒, 가슴이 아프다)일 것이다."

 

논쟁의 세 가지 중점

 

당사자의 확인을 받지 못하여, 매체는 장이머우의 '결별'에 대하여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장웨이핑은 두 사람이 16년간 합작하면서 여하한 계약도 없고, 최근의 2부 영화 <산사수의 사랑>과 <금릉십삼채>는 겨우 수지균형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전의 '초고가 철도부선전영화'에 관한 뉴스까지 종합하여, 매체는 종합적으로 이렇게 분석한다. 장이머우는 최근 이년동안 장웨이핑으로부터 아무런 보수를 받지 못했다. '비용은 많이 들고, 보수는 제로'이므로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장이머우를 가슴아프게 했을까? 장이머우는 자세히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쌍방과 모구 교분이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입을 다문다. 이 싸움에 말려들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네트워크소식과 업계인사의 토로를 종합하면,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 얼음이 세 자 두께로 어는 것은 하루 추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논쟁의 세가지 중점은 주로 장이머우영화의 창장주도권의 귀속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는 배우선발의 의견불일치가 포함된다; 그리고 <일개도불능소>에서 <산사수의 사랑>까지 모두 '이장'의 영화이익배분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성격차이이다. 장이머우보다 8살어린 장웨이핑은 '대담'한 간부자제이다. '생각하는대로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밉보이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다른 조용한 제작자들과는 달리, 그는 모든 일에 앞장섰다. 기자들에게 장이머우의 각종 세부적인 사항을 얘기해주고, 두 사람간의 깊은 우정도 얘기했다. 예를 들어, "장이머우는 나의 일생중 더없는 친구이다" "그의 모친을 제외하고, 내가 세계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장이머우는 그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생일은 기억한다." 그는 장이머우에게 Vacheron Constantin 명품시계를 선물했고, 장이머우는 그 자신은 아까워 사지못하는 7만위안자리 가죽옷을 선물했다. 매번 새 영화를 상영할 때는 그는 항상 파격적인 언론으로 여론의 촛점이 되었고, 사방에 떠들고 다녔다. 그리하여 감독 장이머우보다 훨씬 두드러지는 뉴스인물이 된다. 그리고 '형제의 의리로 <유화호호설>에 투자하여 1000여만위안을 손해보고" "장이머우의 문예영화는 돈을 벌지 못하고 손해를 보았지만 돈을 벌었다고 떠들었다" "집을 담보로 장이머우가 <금릉십삼채>를 찍도록 지지하고 6억위안을 투자했다." 이것은 항상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그들이 함께한 십여년동안 그는 시시때때로 장이머우의 은인과 대변인의 역할을 해왔다. "이머우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상에서 그가 가장 감격한 사람은 그의 모친, 그의 딸과 나이다." 그러나 장이머우는 "영화를 찍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므르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은 장이머우가 매체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말한 바 있다는 것이다. 그가 찍은 영화는 한 편도 손해본 것이 없다고.

 

"결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삼대원인

 

2010년, 일찌기 촬영장에서 '이장'을 찍은 적이 있는 패션잡지의 기자는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광경을 묘사한다. 장웨이핑은 사람들의 중심이고, 그는 계속하여 주변 사람들과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맞춘다. 촬영때 아주 친근하게 손을 장이머우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비록 대감독이며, 두편의 영화에 남자주인공을 한 적도 있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는 장이머우는 '촬영사가 좋다고 소리칠 때, 얼굴에 부자연스러움이 흘렀다." 기자의 눈에 그는 조심스럽고 말이 극히 적은 샨시 남자이다. 몸에는 깊은 피로가 느껴졌다. 누군가 그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자, 그의 눈은 부지불식간에 그 찻잔으로 향했다.

 

2011년, 자신의 전기작가 팡시(方希)와 얘기하면서, 그들은 행위풍격측정시험을 했다. 각종 행위인격을 얘기하면서, 장이머우는 돌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정말 합작할 수 없다. 합작은 일종의 고통이다."

 

장이머우가 조용히 결별하면서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 것은 내부사정을 잘아는 예이전트인 T샤오제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세 가지 원인으로 장이머우가 결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첫째는 <일개도불능소>에서 <산사수의 사랑>까지 장웨이핑은 실제투자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애매하게 했다. 실제로 그는 영화프로젝트를 국내에 허가신청하고 심사받도록 하는 것을 책임졌다. 그가 가져온 것은 국내의 발행비였다. 가장 관건적인 문제는 그가 실제이윤에 따라 이익분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안다. 다음으로, <금름십삽채>와 <산사수의 사랑>은 모두 촬영비용을 허위로 보고했다. 그중 <금릉십삼채>의 비용은 그저 선전한 것의 1/3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장이머우는 감독비도 못받았고, 이익분배도 못받았다. 한푼도 받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이머우가 왜 말도 없이 떠났는지, 만나지도 않고, 대답도 없는지는 '심허'한 것이 아니라. 그는 천성적으로 시비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성격이고, 특히 골치거리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해동안의 합작자가 매체에서 서로 공격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밖에 안된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장웨이핑이 먼저 일련의 보복성행위를 기획했다. 여기에는 가족을 폭로하고, 법률문서를 보내고...장웨이핑의 최근 태도는 자신이 전체 사건에서 무고하고 억울하다는 것인데, 확실히 장이머우로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이장"의 옛인연

 

장웨이핑은 일찌기 장이머우가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친구가 많지도 않으며, 그는 교제에 능하지 않고 친구도 조심해서 사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장이모가 조십스럽게 20년간 사귀어온 이 친구에 대하여 마지막에는 무정하게 얼굴을 돌린 것이다. 

 

두 사람의 사귐은 우연이었다. 장웨이핑은 2004년 <간전영> 잡지의 인터뷰때 그와 장이머우의 만남은 한 친구의 모임에서라고 밝혔다. 그때 장이머우는 막 <홍고량>을 찍었을 때였다. "당시 나의 처가 공리의 팬이었다. 나는 당시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했다." 고등학교 학력을 지닌 장웨이핑은 군인가정 출신이다. 1989년 그는 지멘스회사 주북경대표처의 경리가 된다. 얼마후에 그는 사업에 뛰어든다. 두터운 인맥을 가지고 항공식품, 약품, 부동산사업을 벌인다. 1990년대초 먼저 부유해진 사람이다. 1996년, 장이머우는 <유화호호설>을 찍으면서 자금곤란을 겪었고, 장웨이핑과 또 다른 친구가 투자한다. 이때부터 장이머우의 핵심생활권이 진입한다.

 

"이머우는 어린아이처럼 귀엽다." 장이머우동지의 가까운 친구로서 나는 그가 성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말이 귀에 생생한데, 16년이 지난 후, 장이머우는 떠났고, '이장'경영을 여러해동안 고심하여 경영하던 장웨이핑은 모든 것을 날렸다. 장웨이핑은 일찌기 "장이머우가 자기를 여론몰이한다고 욕하는 사람은 모조리 인간쓰레기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자신이 '장이머우를 욕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대가조차 모두 말한다. 우리 둘의 음양결합은 아주 좋다고" 평화시기, 장웨이핑은 일찌기 이렇게 그들의 관계를 묘사했다. 장웨이핑이 보기에, 그는 양이고 장이머우는 음이다. 그러나 장이머우가 떠난 후, 장웨이칭은 원망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이 되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두 사람의 여러해동안의 합작에 한번도 계약을 체결한 바 없다는 것이다. 모조리 구두합의로 진행했다. 이런 상황은 여러해동안 동거한 남녀와 같다. 남자가 떠나면, 여자는 울면서 소리친다. 그러나 청백리도 집안 일은 판단하기 힘들다.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소송을 할 수도 없고 고발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매체를 통하여 사정을 계속 확대시키는 수밖에 없다. 여론압력으로 장이머우가 말하게 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아마도 장웨이핑이 조급하게 장이머우를 전선으로 끌어들이려고 계속 핍박하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