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기업가
2011년 2월 24일 오후 상해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효민(가명)은 지하철을 타고 서가회에 위치한 베스트바이점을 찾았다. 점포로 걸어가다보니 세 대의 경찰차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느낄 수 있었다. 베스트바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2월 22일 중국의 9개점포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후, 세계최대의 가전체인점은 지난 48시간동안 전례없는 신용위기에 몰렸다. 품질보증기간연장정책과 반품정책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보니, 많은 소비자들이 점포내에서 업무인원과 말다툼을 벌였고, 사후처리가 순탄하지 못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소비자들은 방화문 때문에 점포내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방화문을 부수고 점포로 난입했다. 상해시정부는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보내어 질서를 유지해야 했다. ‘고객중심’을 위쳐오던 베스트바이는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에서 떠나는 것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어떤 소비자들은 베스트바이의 철수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2006년에 중국에 진출한 이래, 베스트바이의 중국내 경영은 험난했다. 그렇지만, 초기에는 자신의 전문화, 고급화, 명품화의 매장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화이트칼라들은 베스트바이에서 쇼핑하였다. 백을 등에 지고서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가누고 있던 여학생은 “나는 이곳의 환경이 좋았다. 진짜 제품응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효민은 다른 소비자유형에 속했다. “그들의 물건은 쑤닝, 궈메이보다 훨씬 비쌌다. 만일 품질보증기간연장이 없었더라면 여기서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친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베스트바이가 품질보증기간을 연장한 것은 사실상 ‘중고품을 신품으로 바꿔주는’ 가능성이 있다고. 어떤 소비자는 품질보증기간연장조항으로, 만일 가전, 디지털제품의 규정한 기간내에 1-3번 수리하고도 여전히 원래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면, 아마도 새로운 모델로 교환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베스트바이가 가격에서 열세인 상황하에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변통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베스트바이에 의하여 확인된 적은 없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은 베스트바이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아마도 중국시장에서만이 이처럼 말도 다르고 요구조건도 다른 소비자들이 동일한 매장내에 함께 모여있을 것이다.
베스트바이중국의 고위층은 점포폐쇄의 원인을 자신들의 모델이 중국시장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베스트바이중국지역총재인 송대위는 나는 이렇게 가격에 민감한 시장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실패를 중국소비자들의 ‘가격만 보고 서비스는 보지 않는다’는 태도에서 찾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책임을 미루는 태도이다. 베스트바이는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모르는 것같다. 파러(帕勒)자문의 이사이며 가전업계전문가인 나청계(羅淸啓)는 이렇게 반박한다: 현재 사치품브랜드가 모두 중국의 2,3선시장까지 진출해 있고, 중국내륙시장의 고급차에 대한 구매력은 1선도시에 못지 않다. 누가 중국인에게 구매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롤랜드버거 글로벌파트너이자 대중화구 부총재인 정걸(丁杰)은 이렇게 지적한다: 직접판매방식과 대리판매방식은 유통업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경영방식이다. 중국에도 어떤 외자유통상은 아주 잘 하고 있다. 왜 베스트바이는 안되는가?
Dennis는 베스트바이의 점원이다. 음향제품분야에서 10여년의 업무경험이 있다. 보상계약을 체결한 후, 그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나섰다. 그는 먼저 국내의 대형연쇄점으로 가서 면접을 보았다. 그러나, 대우와 기업문화가 모두 베스트바이와는 차이가 큰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하여 목표를 다시 외자계 소매기업으로 돌렸다.
Dennis는 인정한다. 이제와서야 자신은 베스트바이가 자신에게 심어준 영향이 아주 컸다는 것을 알았다고. 베스트바이의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에 습관이 되고, 자신의 영문이름에 습관이 되고, 개성있는 서비스로 단골을 만들면 승진의 기회가 부여된다. 이는 국내기업의 실적위주의 방침 및 절대복종과 강력한 집행을 요구하는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베스트바이는 실적을 위주로 하지 않는 직원문화를 지니고 있어, 매장내는 아주 분위기가 좋고, 경쟁이 격렬한 화약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기에, 바로 이런 느긋한 심리상태로 인허여, 베스트바이는 경쟁이 치열한 중국가전체인시장에서 패배자가 되었다.
쑤닝전기의 동사장인 장근동은 5년내에 베스트바이를 신경쓰지 않겠다고 한 바 있다. 궈메이전기의 창업자인 황광위도 베스트바이는 중국에서 궈메이의 적수가 아니라고 한 바 있다. 이유는 이 회사는 네트워크배치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2006년 베스트바이의 우싱(五星)전기인수기자회견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당시 우싱전기의 창업자인 왕건국은 흥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베스트바이의 자금을 이용하여 1년내에 300개점포를 개설하겠다고. 그러나 금방 베스트바이의 고위층은 이를 부인한다. 그후 왕건국과 그의 팀은 떠나게 된다.
북미시장에서 대리판매모델(중국에서 궈메이와 쑤닝이 채택한 모델)로 성장한 제2대가전연쇄점 Circuit City를 물리친 바 있는 베스트바이는 ‘포교자’의 고자세로 중국에 왔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모델과 중국시장과의 사이에 놓인 커다란 간격도 무시했다.
베스트바이의 점포내 통로는 지나치게 넓다. 쑤닝, 궈메이보다 훨씬 넓다. 제품매대간 간격도 비교적 넓다. 진열상품의 수량도 경쟁적수보다 적다. 베스트바이의 이념에 따르면, 공간은 소비자에게 남겨두어야지, 제품에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쑤닝 상해지역 고위층은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북미의 사람들은 비교적 넓은 장소를 좋아한다. 상품의 종류나 등급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베스트바이의 스타일은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북미사람들에게는 들어맞는다. “그러나 중국시장은 일본시장과 유사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베스트바이의 초대 중국지역총재인 여유민의 방식은 ‘현지화’였다. 그는 중국과기대학 소년반 출신으로 중국계 경영자였다. 미국의 동료들에 비하여 중국가전업계의 규칙을 잘 알았다. “여유민이 우싱의 인수를 적극 추진했었다.” 이로 인하여 베스트바이는 일거에 규모에 있어서 제1진영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베스트바이는 여전히 이미 익숙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업모델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은 우싱전기를 베스트바이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품었다. 이렇게 하여 과거 5년간 2개 브랜드는 서로 각각 따로 운영되는 현실을 낳았다. 각종 자원도 분산되어 사용된다.
우싱의 전 고위층은 이렇게 회고한다. 여유민은 베스트바이의 규모를 늘이려고 노력했다. 여유민은 상해에서 여러 부동산을 봐두었다. 그러나, 베스트바이의 업무프로세스는 모든 것을 베스트바이본사에 보고하여야 했다. 평균 4.5일에 점포 1개를 오픈하는 경쟁상대방이 보기에 이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자체점포개설이 늦어지자, 여유민은 자본의 힘을 가지고 일거에 도약하고자 한다. 나중에 궈메이에 인수된 산동의 삼련상사의 인수후보자에 베스트바이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시장을 잘 모르는 외국인 경영진은 신속한 점포개설의 중요성과 타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투자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소비재회사의 외국인 경영진이 중국동료에게 이렇게 조소하는 것을 들었다: “뭐라고. 그들이 1년에 200개 점포를 개설한다고?” 이렇게 조소하는 사람들은 왕왕 중국의 상해와 홍콩만 가본 사람들이다. 중국시장이 얼마나 넓은지 아예 개념이 없는 것이다. 베스트바이의 경영하에, 우싱전기의 확장속도도 느려진다. 2006년에 140개였던 우싱전기의점포는 현재도 겨우 160개에 불과하다. 결국, 2007년 4월, 실권을 잃은 여유민이 10년넘게 일해왔던 베스트바이를 떠나버린다.
베스트바이의 점포폐쇄소식이 전해지자, 한 이직한 경영진은 이렇게 지적한다. 만일 소위 사업모델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면, 똑 같은 모델인데, 왜 서가회점은 5억위안의 영업수익으로 전세계점포중 50위내에 드는 것이냐. 그리고 2010년에도 이익을 냈다. 서가회점의 매장비용은 달러로 계산하여 베스트바이에서는 가장 높은 편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 원인중 하나는 서가회점의 점포선정과 운영은 모두 왕건국이 베스트바이 글로벌부총재를 맡고 있었던 시절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서가회점은 위치가 좋아서, 지금도 동종업계에서 탐내는 곳이다. 왕건국이후 베스트바이에서 중국에 파견한 많은 경영진들은 기술과 IT분야의 인물들이어서, 후방의 관리프로세스는 잘하지만, 점포개설 위치선정의 경험은 없다. 하물며 알지도 못하는 도시로 가서 일을 하여야 하니 더욱 그렇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아마추어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요소가 결정하는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서로 다른 사람이 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당연히, 전반의 3년간 고생을 겪으면서 베스트바이가 달라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8년이후, 베스트바이는 중국에서 속도를 낸다. 상해이외에 소주, 항주 및 북경에서 각각 1개의 점포를 개설한다. 점포수는 모두 9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정책적 배경이 있다. 즉, 2008년 9월, 상무부에서 문건을 하달했는데, 외자소매점의 심사허가권을 성급으로 내려준 것이다. 그리하여 상해시와 관계가 좋은 베스트바이는 급속히 상해에서 점포를 개설하였고, 근거지를 공고히 한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소매업의 거두인 월마트와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베스트바이는 다시한번 중국시장의 정책방향을 잘못 읽었다. 정책이 나온 후, 월마트는 중국10여개 성,시에 신속히 독자회사(세금은 지방정부에 귀속된다)를 설립한다. 2009년 상반기에만 월마트는 중국에서 30여개 점포를 늘여갔다. 많은 점포는 2,3선도시에 위치한다. 상무부의 신규정의 원래 의미는 외자소매기업으로 하여금 내지시장에 투자를 확대하라는 것이었다.
확실히 땅값이 비싼 상해에서 베스트바이는 점포확장을 고집했다. 당시 쑤닝전기는 10%의 개점계획만을 상해도심지역으로 하고, 나머지는 교외지역에 개점했다. 그러나, 베스트바이는 굳이 점포가 몰려있는 핵심상권내를 파고들려했다. 업계내에서는 이런 컨센서스가 있다. 성숙한 상권에서 점포를 개설하려면 시간이 늦으면 늦을수록 비용이 비싸진다. 결과 점포를 많이 개설하면 할수록 운영비용은 오히려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송대위는 모든 점포를 폐쇄하는 것에 대하여 해명하기를 “한 두개의 점포를 남기는 것이나 9개의 점포를 남기는 것이나 비용은 비슷하게 든다.”고 하였다.
베스트바이는 다시 한번 신속히 성장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아마도 자신들이 상해와 같은 1선도시에서도 곤경에 처해있다보니, 중국시장에 더욱 깊이 뛰어드는 것을 고려할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베스트바이의 경영진도 문제점을 인식했을 것이다. 2010년에 이익에대한 압력을 받아(2010년 3분기에 매출액이 5% 감소한다), 베스트바이는 전세계적으로 우선 경영진을 조정한다. 베스트바이인터내셔널의 분권이 취소된다. 베스트바이중국의 제2대총재 양덕명은 2010년 3월 송대위로 교체된다.
현임 베스트바이 글로벌부총재이자 우싱전기 CEO인 왕건은 이렇게 말한다: “2010년 베스트바이는 조직구조를 조정했다. 미주지역, 아시아지역, 유럽지역으로 나누었다. 베스트바이가 이렇게 조정한 이유중 하나는 바로 충분히 권한을 주어, 산하의 각 브랜드가 더욱 본토화경영과 발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베스트바이는 우싱전기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우싱전기로 하여금 “할 수 있는 만큼 점포를 더 많이 개설하라”고 하게 된다. 그러나, 우싱전기도 마찬가지로 발전이 지체되는 문제에 처해 있었다. 쑤닝, 궈메이가 1,2선도시에 대한 점포배치를 완료하고, 3,4선도시로 뛰어들 고 있었으므로, 우싱전기가 점포를 신규개설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다. 베스트바이가 퇴출을 결정할 때까지 상해에는 진입하지도 못한다. 같은 상해의 ‘만덕성’은 남의 불행을 즐기는 듯이, “2월 22일이 지나면 그들은 떠난다. 우리가 당신에게 정심환을 주겠다.”는 광고를 내고, 베스트바이의 품질보증기간연장서비스를 승계하겠다고 밝힌다. 비록 베스트바이의 PR부서의 인원이 “우리는 여하한 제3자와도 그러한 계약을 체결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남경에 있는 우싱전기가 상해시장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베스트바이의 마지막에 저가판매가 많아졌다. 소비자들마저도 변화를 느낄 정도였다. 베스트바이의 충실한 고객으로 상해의 한 외국계기업에서 일하는 Claire는 이렇게 말한다: “막 개업했을 때와 비교하면, 점포내의 판매인원이 확실히 늘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점포내에서 1시간을 놀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는데, 현재는 상품 하나에 조금만 눈을 두고 있으면, 사람이 와서 소개를 해준다.” 확실히 이윤압박에 직면한 베스트바이는 판매액을 늘이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걸 판매인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우리와 일부 국제적인 대형 브랜드가 합작한 서비스인원이다. 예를 들어 우리와 애플의 협력과 같은 것이 있다.” 점포는 문을 닫았지만, 베스트바이의 직원들은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판매인원이 아니라 서비스인원이다.
베스트바이가 점포를 폐쇄한 후, 중국시장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물어보면, 베스트바이의 고위층은 “가격, 가격, 가격”이라고 말한다.
베스트바이의 고위층이 보기에, 중국소비자는 가격에 대하여 민감하고, 가격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베스트바이의 ‘고객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펼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베스트바이매장의 고객을 중심으로 한 이념과 여러가지 세부설계는 나중에 궈메이와 쑤닝이 보고 배웠다. 만일 중국소비자들이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면 왜 배워갔겠는가?
일찍이 미국 베스트바이점포를 둘러본 바 있는 Claire는 베스트바이의 서비스모델은 본질적으로 VIP의 1:1 엘리트서비스모델이다. 미국베스트바이 내지 전체 북미의 유통업은 모두 ‘스스로 구매’하는 이념을 중시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독립성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인은 반대이다. 요란한 것을 좋아한다. “쇼핑중에 교류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아시아인들의 특성이다.” 화윤만가의 고급부총재인 진석이 한 말이다. 베스트바이식의 서비스가 가져다주는 쇼핑분위기는 이 점을 보지 못한 것같다.
우싱의 고위층은 이렇게 말한다. 베스트바이모델은 모두 자체인원을 쓰기 때문에 자체인원의 육성능력이 약하다. 그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 5000평방미터의 점포에는 260명이 필요한데, 통상적으로 200명은 입점업체에서 온다. 그러나 베스트바이는 260명의 자격있는 인원을 모두 채용해서 개점을 한다. 서비스를 중시하다보니, 점원의 교육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관리자 1명을 교육시키는데 6개월 내지 1년이 걸린다. 인재의 수혈이 부족하다보니, 베스트바이의 점포확장이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동일한 직접판매모델이라고 하더라도, 이케아(IKEA)는 좋은 모델이다. 마찬가지로 점포수는 몇 개 되지 않고(이케아는 중국에 겨우 8개 점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규모의 효과는 누리지 못하지만, 왜 이케아는 단골이 많고 매장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일 정도일까. 그 답안은 직접판매모델의 본질상 충분한 캐시플로우와 강력한 공급선통합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장내의 상품이 신속히 회전되고, 거대한 판매량을 가지고 이익을 얻어야 한다. 이케아의 비결은 독특한 설계생산으로 대량의 자체브랜드상품이 있고, 이를 가지고 자신의 단골을 만드는 것이다.
가전전문가 나청계는 베스트바이의 문제는 직접판매방식에 있지 않고, 제품라인에 있다고 한다. 베스트바이가 판매하는 제품은 외자제품이 위주였다. 메이디(美的)전기와 같이 제품라인이 풍부한 중국국내대기업도 제품을 입점시키지 못할 정도였다. 외자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월풀과 같은 경우는 쑤닝, 궈메이와 더 협력을 많이 했따. “우리는 중국시장을 경영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느 매장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그 채널이 우리의 주요채널이 될 수밖에 없다.” 월풀 직원의 말이다.
롤랜드버거의 정걸도 이렇게 말한다. 매당운영비용이 높다는 것이 반드시 제품가격이 높고 나아가 이익을 낼 수 없는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근본원인은 베스트바이가 공급업체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데 있다.
“이치대로라면, 직접판매모델은 공급업체의 자금을 점용하지 않으므로 제조업체가 좋아해야 마땅하다.” 중국가전매장은 대부분 제조업체가 직원을 선발하고, 실제로는 전체 공급체인이 하나로 엮여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한다. “중국에서 소비자들은 핵심브랜드의식이 약하다. 가전제품의 차별성이 크지 않다. 애플과 같은 현상은 아주 소수이다. 그러므로 제조업체의 쟁탈전은 바로 이 채널에서 이루어진다. 채널은 실제로 시장정보를 수집하고, 시장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제조상과 채널이라는 전체 공급체인이 협조하여 소비자의 뜻에 맞추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베스트바이모델은 단독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했다. 그러면서 개성화되고 차별화된 제품이 없었으니, 실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정걸이 보기에, 외자계 유통업의 주요한 장점은 관리모델이다. 경영모델에 있어서는 오히려 현지업체의 실질을 더욱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지인으로 하여금 경영하게 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실패한 많은 외자계 유통기업들이 바로 관리모델과 사업모델의 ‘강화와 분권’에서 서로 반대로 처리한 것이다. 베스트바이가 부득이하게 점포폐쇄를 할 때, 또 다른 글로벌 유통거두인 까르푸도 중국에서 곤경에 빠졌다. 베스트바이와는 정반대로, 까르푸는 원래의 관리모델을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그리하여 점장급의 관리자들이 ‘권한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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