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은 왜 사마의를 이기지 못했을까?

중은우시 2010. 11. 8. 10:41

 

: 중천비홍(中天飛鴻)

 

<<삼국연의>>를 본 사람들은 사마의를 제갈량에게 패배한 장수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삼국연의>>를 읽어보면, 지혜로 보나, 병법으로 보나, 모략으로 보나,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훨씬 뛰어났고, 그는 아무도 없는 빈 성을 가지고 사마의를 30리나 물러나도록 만들 수 있었고, 죽은 후에도 죽은 제갈이 산  중달의 10만병력을 쫓아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이기지 못한다. 촉의 군대는 6번이나 기산으로 출병하여 중원북벌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아무 성과없이 되돌아왔다.

 

신기묘산의 제갈량이 왜 사마의를 이기지 못했을까? 왜 사마의는 수십만 촉나라대군을 위나라로 들어어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을 따져보면 아마도 다음의 6가지일 것이다.

 

첫째, 제갈량은 한나라 정통사상의 훈도를 받아, 유학의 기풍을 지니고, 군자의 풍모를 지녔다. 모략을 전투에서 대진할 때는 썼지만, 심기를 자시의 안위에 쓰지는 않았다. 그는 <<출사표>>에서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 死而後已)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조조의 내가 천하인에 등을 돌릴지라도, 천하인이 나에게 등을 돌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처세나 교전에서 가장 먼저 자기자신의 안위, 성패공과를 생각했다.

 

둘째, 제갈량은 선주 유비의 은혜를 입어, 일생동안 보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평상시 생활이건,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벌이든, 모든 면에서 보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는 그의 일처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제갈량은 모든 일을 친히 처리하고 밤낮없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는 지금 승상께서 친히 세세한 일까지 처리하시고, 땀을 하루종일 흘리시니 어찌 피로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나도 모르는게 아니다. 그러나 선제로부터 임종부탁을 받았으니, 내가 모든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힘을 다하지 않을까 우려해서이다 이를 보면 제갈량이 얼마나 부담을 심하게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의에게는 충군의 뜻이 별로 없었다. 보은의 마음도 없었다.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벌이는데 마음이 가벼웠고, 모든 면에서 병권을 장악하는데 주력했다. 병권만 있으면 나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마의는 일생동안 어떻게 하면 군권을 장악할지에만 집중했다.

 

셋째, 제갈량안 한나라 정통사상의 훈도를 받아, 천수황권의 사상으로 자신의 행동거지를 구속했다. 매번 후주 유선이 철군하라는 성지를 내리면, 제갈량은 무조건 따랐다. 그리하여, 전투에서 이길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그리하여 6번이나 기산으로 출병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사마의는 병력을 이끌고 출전할 때, 장군이 전쟁터에 있을 때는 군주의 명이라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을 군사상의 승리에 초점을 맞춘다. 제갈량의 방식에 사마의는 감탄한 바 있다: 제갈량은 뜻은 크지만 기회를 노리지 않고, 모략은 많지만 결단력이 적고, 병법에 뛰어나지만 권력이 없다. 비록 10만의 병졸을 이끌더라도 이미 내 그림 속으로 뛰어들었으니, 반드시 깨트릴 수 있다.

 

넷째, 사마의는 속이 깊어, 마음을 읽기가 어려웠다. 자신을 숨기는데 능했다. 그가 파직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있을 때, 비록 유비가 동산재기를 하여 권토중래하였지만, 그는 평상시에 뱃머리에 조용히 앉아서, 편안하게 낚시질을 했고, 스스로의 날카로움을 숨기고 속으로 힘을 길렀으며, 시세의 변화에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재상의 자리에 앉아있던 제갈량이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다섯째, 사마의는 우회적인 방법에 능통했고, 작은 굴욕을 참을 수 있었다. 제갈량이 보내준 여자옷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이 점은 재상은 뱃속에 배를 띄울 수 있다는 제갈량도 따르기 힘든 것이다. 만일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여자옷을 보냈다면, 제갈량은 목구멍에서 피가나도록 욕을 해댔을 것이다.

 

여섯째, 제갈량은 일생동안 조심성이 많았고, 매사에 소심했다. 평소에 정무를 보든, 아니면 군대를 이끌고 출정을 하든, 모든 일을 친히 처리했고, 심지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챙겼다. 이렇게 하면 군사상 정력을 집중할 수가 없게 되고, 체력소모도 많아진다. 거기에 그는 평소 생활이 검소하여, 먹고 입는 것이 변변치 못했다. 이는 그의 노쇠를 가속화하게 된다. 그러나, 사마의는 제갈량의 이런 방식에 대하여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한번은 사마의가 제갈량이 보낸 사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공명의 잠자고 먹는 것과 일처리는 어떠한가? 사신이 대답한다: 승상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벌 이십이상의 모든 사건은 친히 처리하다. 먹는 것은 하루에 몇되가 되지 않는다. 사마의는 부하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공명은 적게 먹고 일은 많이 하니, 어찌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 얼마후,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병사한다. 이는 사마의가 제갈량의 이런 생활방식을 좋게 보지 않았다는 것뿐아니라, 그는 제갈량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군사전략과 치군방법, 그리고 음식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제갈량은 사람들이 정인군자로 본다. 사마의는 간교한 소인으로 본다. 요즘 말로 하자면, 제갈량은 좋은 남자이고, 사마의는 나쁜 남자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정인군자의 풍모는 그로 하여금 6번이나 중원정벌에 나서고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반대로 사마의의 소인배 같은 행동은 그로 하여금 승리를 거두고, 공명과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하는 관건이 된다. 이를 보면, 세계의 모든 일은 뒤바꿀 수 없는 철칙이 있는 것같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싸움을 보면, 군자가 소인을 이길 수 없고, 좋은 남자가 나쁜 남자를 이길 수 없다는 역사의 경험과 교훈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것은 고인들이 말하는 소위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이라는 것이 아무런 근거없는 말은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