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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제갈량)

제갈량과 장량의 성격이 성패를 결정했다

by 중은우시 2009. 7. 6.

작자: 미상

 

장량과 제갈량은 중국역사상 걸출한 군사모략가이다. 전자는 유방을 도와서 양한 사백년의 패업을 이루어 냈고, 후자는 유비를 도와서 삼국정립의 한 다리를 형성하게 하였다.

 

장량, 제갈량 두 사람의 IQ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두 사람의 지능은 보통사람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성패는 왜 그렇게 다를까? 필자는 두 사람의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먼저 두 사람의 성격을 분석해보자.

 

소년시기의 장량을 보자.

 

<<사기.유후세가>>의 기록에 따르면, 장량의 선조는 한(韓)나라사람이다. 그의 조부인 장개지(張開地)는 한리후(韓厘侯), 한위후(韓威侯), 한양왕(韓襄王) 시기에 상국(相國)을 지낸다. 그의 부친인 장평(張平)은 한리왕(韓厘王), 한환혜왕(韓桓惠王) 시기의 상국을 지낸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멸망시킨 후, 그는 삼백의 가솔을 모두 내보낸 다음, 동생이 죽어도 장사를 지내지 않으면서, 가산을 모두 들여서 자객을 매수했고, 한나라의 복수를 꾀했다. 그는 대역사를 찾아서, 그를 위하여 무게 120근의 대철추를 만들어준다. 진시황29년(기원전218년)에 진시황이 동방을 순유할 때, 장량과 이 대역사는 몰래 매복하여 박랑사에서 진시황을 습격한다. 그러나 수행차량을 잘못 맞추었다.

 

이 기록은 최소한 세 가지를 설명해준다.

 

첫째, 장량은 젊어서 국가가 망하고 집안이 망하는 때에 구차하게 삶을 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에 맞섰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량이 곤란한 사태에 직면했을 때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그는 집안재산을 다 털어서 자객을 사고, 동생이 죽어도 장사도 지내지 않았다. 이는 그의 담략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뿐아니라, 일처리가 아주 과단성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그가 계획한 암살계획은 만일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거의 성공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장량은 이때 이미 운주(運籌)의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소년시기의 제갈량은 어떠했는가?

 

제갈량의 자는 공명이고, 낭사 양도 사람이다. 한나라 사예교위 제갈풍(諸葛豊)의 후예이다. 부친인 제갈규(諸葛珪)는 자가 군공(君貢)이며 한나라말기에 태산군승을 지낸다. 제갈량은 어려서 고아가 되고, 종부(從父) 제갈현(諸葛玄)은 원술의 아래에서 예장태수를 지냈다. 제갈현은 제갈량과 그 동생 제갈균을 모두 자신의 아래에서 관직을 받게 하였다. 그런데 한나라가 제갈현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을 임명하려 하자, 제갈현은 예전부터 안면이 있는 형주목 유표에게 가서 의탁하게 된다. 제갈현이 죽자, 제갈량은 농묘에서 농사를 짓고 양부음을 읊는다. 그는 신장이 팔척인데, 매번 자신을 관중, 낙의에 비유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았다. 오로지 박릉 최주평, 영천 서서 원직이 제갈량과 친하게 지냈고, 그의 말을 믿었다.(삼국지. 제갈량전)

 

이 기록에 따르면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갈량은 어려서, 변고를 맞이하지만, 그의 곤란에 대응하는 태도는 소극적이다. 본성은 어떤 일을 당하면 편안함을 구하는 그런 유형이다.

 

둘째, 그는 평소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그리하여 약간의 성적을 낸 후에는 혼자서 기뻐했다. 필자가 보기에 제갈량은 서생의 기운이 강하다고 본다. 그리고 말이 앞섰던 것같다.

 

이상의 비교에 의하면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다. 미래의 군사모략가로서 소년시대의 제갈량은 장량과 비교했을 때 성격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는 장자방과 같은 과감함도 없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다.

 

세 살이면 어른 때 어떨지를 알고, 일곱 살이면 늙어서 어떨지를 안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경우이다. 다시 그 이후를 보자:

 

제갈량은 교묘한 아이디어를 잘 냈다. 연환노, 목우유마가 모두 그의 아이디어이고, 연병법, 팔진도등도 모두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삼국지. 제갈량전)

 

제갈량은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기이한 아이디어를 내는데 뛰어났다. 잔머리를 굴려서 약간의 자잘한 발명품들을 만들어 낸다. 삼군을 통할하고, 천하국면을 지휘해야할 사람이 하루종일 이렇게 자잘한 놀이에 심취해 있다면 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는 <<융중대>>에서도 제갈량이 일이 닥치면 편안함을 구하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제갈량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자. 그는 "조조는 천자를 끼고 제후를 명령한다. 그러므로 그와는 싸울 수가 없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한지 이미 3세대나 되었다. 나라가 험하고 백성들이 의지하고, 현명한 인물을 등용하니, 여기도 도와줄 수는 있어도 도모할 수는 없다" 그저 형주, 익주를 얻은 후에 먼저 내정을 발전시키고, 이후 기회가 생기면 다시 보자는 투이다. 느낌상으로 한걸음 한걸음 단계적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최종적인 성취래야 겨우 삼족정립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뿐이다. 패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저 운에 맡길 뿐이다.

 

제갈량은 왜 이렇게 얘기했는가?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가 유비를 위하여 기획한 것은 그저 삼분천하일 뿐이다. 이는 제갈량의 인생을 대하는 소극적인 성격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초한(楚漢)이 홍구(鴻溝)를 경계로 하여 천하를 나눈 후에 유방은 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의 형세는 이미 유비의 삼족정립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량은 유방에게 건의한다: "한나라는 이미 천하의 절반을 얻었고, 제후들도 모두 귀부했다. 초나라는 이미 병력이 피폐하고 양식이 떨어졌다. 이것은 초나라를 멸망시킬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이다. 절대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당연히 이 기회를 틈타서 초나라땅을 빼앗아야 한다. 지금 항우를 그냥 돌려보내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로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두는 것'이다" 유방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해하의 전투를 통하여, 초나라군대를 섬멸하고, 초한전쟁을 끝장낸다. 그리고 천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장량은 왜 그렇게 말했는가?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는 유방을 위하여 군림천하를 하도록 기획했던 것이다. 그저 일부 땅을 얻는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장량이 인생을 대하는 적극적인 성격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량의 성격은 인생을 적극적으로 대하고, 용감하게 무거운 부담을 지고, 일처리가 과감했다. 형세판단도 정확핵고 일시적인 득실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제갈량의 성격은 인생을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이었고, 일을 만나면 도피하기를 좋아했다. 일처리는 지나치게 신중했고, 항상 앞뒤를 재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부 자잘한 놀이에 깊은 흥미를 지녔다.

 

두 사람의 성격이 이러하기 때문에, 누가 일을 이루고, 누가 일을 망칠 것인지는 일찌감치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