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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중기)

외국작가의 눈으로 본 강건성세(康乾盛世)

by 중은우시 2010. 7. 15.

글: 숙묵잔차(宿墨殘茶)

 

만일 당신이 단지 역사교과서를 통하여 역사를 공부하였거나, 아니면 염숭년(閻崇年)같은 만청문사전문가의 강의만 들었다면, 분명히 강건성세에 대하여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체두변발의 황제에 대하여 고개를 숙이며 존경할 것이다. 백가강단의 염숭년 선생은 심지어 강희가 통치한 시대를 중국황권역사가 흥성, 번성, 장성했던 최전성기라고 하며, 찬미하는 말이 흘러넘쳤다. 만일 시공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염숭년 선생은 분명히 머리에 변발을 휘날리며 시공의 터널을 지나, 용왕보좌의 아래에 무릎을 꿇고, 강희황제에게 삼배구고를 할 사람이다.

 

중국역사는 왕권과 강도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왕권에 찬가를 부르고, 백성들을 말잘듣도록 조치하여, 강산만리가 이민족에게 복속되면, 바로 방방곡곡 조화로운 성세가 된다. 역사의 조화를 통하여, 왕조는 태평성세의 분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사서에서 이처럼 조화를 깨트리는 태평성대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진실한 역사에 대한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외국인의 눈을 빌어, 신실한 사람의 사상과 각도에서, 강건성세의 진면목을 살펴보기로 하자.

 

로빈슨표류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주의회고록식 모험소설이다. 출판이후 지금까지, 수백의 판본이 출판되었다. 거의 세계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성경이외에 로빈슨표류기는 출판이 가장 많이 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영국문학사상 첫번째 장편소설로 칭해지고, 세계문학의 보고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소설의 작가인 대니얼 데포(Daniel Defoe 1660-1731)는 영국작가로 신문기자이며 영국계몽시대 현실주의소설의 창시자이며, 영국과 유럽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하여는 더 이상 소개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읽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빈슨표류기의 하편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왜 하나의 소설이 중국에서는 나뉘어진 것일까?

 

여기의 핵심요소는 바로 로빈슨표류기의 하편에서 쓴 것은 로빈슨이 다시 무인도로 돌아온 다음에 다시 세계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가운데, 당시 중국에서의 일부 보고 들은 내용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서방인문사상의 영향을 받은 신흥자산계급의 작자의 당시만청 강건성세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그는 당시 동방의 천조대국을 경멸하고 무시했다.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의 많이 않은 기술내용을 보게 되면 만청전문가인 염숭년 선생등은 부끄러워 얼굴을 둘 곳이 없어질 것이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학교도서관에서 폐지처리준비를 하고 있는 고서의 더미에서 이 속편을 발견했다. 제목은 로빈슨표류기속편이다. 1983년 7월 감숙인민출판사가 출판했고, 50480부를 찍었다. 발견했을 때 책표지는 낡았지만 내부는 온전했다. 인터넷에서는 이 책의 중국어번역본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부득이 느린 타자솜씨로 그 내용을 아래에 옮겨보겠다.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겠다. 그러다보니, 앞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을 수는 있다.

 

- 먼저, 우리는 남경으로 가서 열흘을 머물렀다. 이 도시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소문으로는 100만이 산다고 한다. 도시의 배치는 아주 정제되어 있다. 도로는 직선이고, 사통팔달이어서, 아주 편리하다. 다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가련한 사람들은, 우리와 비교하자면, 그들의 사회구조이건, 생활방식이건, 종교신앙이건, 정부조직이간 아니면 그들의 본질이건 그들의 소위 명예감이든 뭐 쓸만한 거리가 없다.

 

유럽과 비교하면, 그들의 실력, 그들의 영예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들의 항운, 상업과 농업은 모두 낙후되어 있다. 그들의 과학기술지식은 아주 적다. 비록 그들도 지구의를 가지고 있고, 약간의 산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천체운행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일식이 나타나면, 백성들은 큰 용이 태양을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태양을 업고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백성들은 징,북,대야,항아리를 들고 거리로 나와서 두들긴다. 그렇게 하여 큰 용을 쫓아버리려는 것이다. 우리가 벌을 벌집으로 몰아넣듯이.

 

- 나는 북경에 가보고 싶었다. 출발을 준비할 때, 마침 현지의 한 지방관리도 북경을 간다고 했고, 우리에게 함께 갈 수 있도록 허용했따. 그래서 아주 편리했다. 이 관리의 수행원들은 격식을 많이 차렸고, 사람수도 많았다. 그들이 거쳐가는 곳에서는 모두 그들 일행의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주었다. 백성들은 더욱 가난하게 된다. 당연히 그 관리의 얼굴을 봐서, 우리도 잘 돌보아 주었다. 보기에 우리는 그 관리의 덕을 보고 있는 것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과 우리가 먹고 자는 것은 모두 공금으로 쓰는 것이었고, 그들은 한푼도 자기 돈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관리에게 돈을 내야 했다. 그들의 회계담당자는 가는 곳마다 하나하나 계산해서 우리에게 돈을 받아갔다. 한푼도 적게 받는 경우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가 우리를 돌봐주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그들은 먹여살리고 그들의 위세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 이 국가의 인구는 정말 많다. 그러나 아주 불쌍하다. 그들의 농업, 경제와 생활은 너무나 낙후되었다. 비록 그들은 스스로 아주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처럼 진정한 생활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크다고 엄청나게 자랑했다. 아마도 이와 비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엄청난 가난일 것이다. 이것이 불쌍한 일이 아니냐. 그들을 보면, 나는 아메리카의 인디안들이 그들보다 훨씬 즐겁게 산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가난하고 낙후하면서도 스스로 자부심은 강하다. 죽어도 체면을 챙기고 격식을 중시한다(이것은 그들의 의복이나 주택 그리고 한무더기의 종들에게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대부분은 가소로운 거지이다. 그들은 세계를 멸시한다. 그러나 가장 멸시당할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중에 내가 황량하나 넓다란 몽골초원에 들어섰을 때가 이곳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유쾌했다. 그러나, 이곳의 도로는 잘 깔려 있고, 관리도 잘 되었다.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편리했다. 단지 이들 두뇌가 간단하고, 지식은 없고, 오만무례하고, 전횡발호하는 자들은 보게 되면 재미가 없어질 뿐이다.

 

- 이 선비의 문앞을 지날 때, 그가 문앞에서 멀지 않은 나무의 아래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더욱 득의만면했다. 두 명의 여자 종이 고기를 한 그릇 가져오고, 또 다른 두명의 종은 하나는 곁에서 한숟가락 한숟가락 먹여주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접시를 수염 아래에 받치고서 흐르는 국물을 받아주거나, 그의 의복에 묻은 지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신사라면 절대로 종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는다. 국왕, 왕후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종을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고, 자기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할 것이다.

 

우리와 함께 길을 갔던 지방관리는 가는 길 내내 거의 국왕과 같았다. 사방에는 항상 많은 관리들이 따랐다. 모두 그의 눈치를 살폈고, 그의 분부에 따라 처리했다.

 

- 나중에 우리가 이 방대하고 쓸모없는 만리장성을 지날 때, 그것은 로마인들이 스코틀랜드에 만들어놓은 유명한 하드리아누스장성과 비슷하다. 이 일대에는 주민이 아주 적은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달단인들이 약탈할 것을 두려워해서, 모두 장성 안으로 숨었다. 지금에야 분명히 알겠다. 왜 여행중에 우리는 반드시 집단행동을 해야 했는지. 왜냐하면 우리는 몇몇 달단병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분명히 보고나니, 정말 골치가 아팠다. 당당한 중화대제국이 어찌 이처럼 산만하고 낙후되고 근본적으로 규율이라는 것도 모르며, 전술도 야만적인 민족에게 정복되었을까?

 

이상의 내용만 읽어봐도 충분할 것이다. 작자가 기술한 이야기는 1693년의 일이다. 바로 강희제의 집정시기(1667-1722)의 중후반기이다. 아마도 중국역사상 많은 태평성대가 이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서.

 

당연히 우리는 작자인 데포가 서방의 적대적인 입장에서 경멸적으로 묘사하여 진상을 잘 모르는 군중을 속이려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안그래도, 인터넷의 공식적이거나 전문가의 로빈슨표류기속편에 대한 평가가 그렇기도 하다.

 

대니얼 데포의 로빈슨표류기속편에서 로빈슨은 중국의 남경, 북경 및 장성 바깥의 몽고지역까지 간다. 그리고 비교적인 방법으로 중국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다. 도시, 생활, 무역, 군대등등이 하나같이 유럽만 못하다. 책에서는 중국에 대한 차별, 편견과 오만도 엿볼 수 있다. 유럽중심주의의 우월감이 데포로 하여금 중국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멸시하도록 만들었을 수 있다. 그 자신의 시각으로 동방을 멸시하고, 마음대로 중국의 이미지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나아가 식민주의사상으로 중국에 대하여 식민통치를 진행할 이론적 근거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