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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중기)

네르친스크조약(尼布楚條約) 원문

by 중은우시 2008. 12. 20.

[아래의 조약원문은 라틴어를 중문으로 번역한 것을 재번역한 것임. 네르친스크조약의 정식언어본은 라틴어본임. 협상시 서로 읽고 확인하였으며, 쌍방대표가 서명, 날인하고 정본을 교환하였으므로, 법률적 효력이 있음]

 

 

 

 

중국 대황제 흠차분계대신 영시위내대신 의정대한 송고투(索額圖), 내대신일등공 도통 퉁궈강(佟國綱), 도통 랑탄(郞談), 도통 반다르샨(班達爾善), 진수흑룡강등처장군 사푸수(薩布素), 호군통령 마라(瑪喇), 이번원시랑 원다(溫達); 러시아국 대러시아,소러시아,백러시아 및 동,서,북의 각 영토의 세습전제군주인 이반 알렉세예프 및 표트르 알렉세예프 흠차 보란스크 총독 어전대신 피요도르 아스타피야스키, 울라소프, 총주교 사먼 크리니츠크는 서기 1689년 9월 7일, 강희28년 7월 24일, 러시아력 1689년 8월 27일, 양국사신이 네르친스크시 부근에서 회합하여, 양국의 사냥꾼들의 월경수렵, 상호살인, 겁탈, 분쟁사건을 단속하기 위하여,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국경선을 명확히 정하고, 이로써 영원히 평화롭게 지내기 위하여 본 조약을 아래와 같이 협정한다:

 

1. 흑룡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이하(綽爾河), 즉 타타르어로 오륜목하(烏倫穆河) 부근의 게르비치(格爾必齊)강을 양국의 경계로 한다. 게르비치강은 석대흥안령(스타노보이산맥)에서 발원하며, 이 고개는 바다로 이어진다. 이 또한 양국의 경계로 한다; 무릇 석대흥안령의 남쪽 일대의 토지와 흑룡강에 유입되는 크고 작은 강은 중국의 관할에 귀속된다; 석대흥안령의 북쪽 일대의 토지와 하천은 러시아의 관할에 귀속된다. 오직 흥안령과 오제하(烏第河)의 사이에 있는 여러 강과 토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 일은 양국사신이 본국에 돌아간 후, 상세하기 조사한 후에 혹은 전권사신을 보내여, 혹은 문건을 통하여 정할 수 있다. 또한 흑룡강에 유입되는 아르군(額爾古納)강의 남안에 있는 흑리륵극(黑利勒克)하구의 여러 집들은 모조리 북안으로 이주한다.

 

2. 러시아인은 야크사(雅克薩, 알바진)에 건축한 성벽을 모조리 철거한다. 러시아백성으로 여기에 사는 자는 모조리 그의 물건을 가지고 러시아경내로 이주한다.

 

양국의 사냥꾼등이 여하한 사고에 의한 것이든 불문하고, 이미 정한 국경선을 함부로 넘어서는 안된다. 만일 한두명의 천한 자들이 혹은 수렵, 혹은 절도로 함부로 경계를 넘어가면, 즉시 붙잡아서 해당국 경내의 관리에게 넘겨주고, 사건상황을 확인한 후 즉시 법에 따라 처벌한다. 만일 십수명이 월경하여 모이거나, 무기를 들고 사냥을 하거나, 살인약탈을 하는 경우, 반드시 양국황제에 보고하고, 죄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 소수인민의 범법으로 전쟁을 하지 않으며, 이로 인하여 피를 흘리지는 않아야 한다.

 

3. 이 조약을 체결하기 이전의 모든 사정은 영원히 더 이상 논하지 않기로 한다. 양국이 영원한 우호를 정한 날로부터, 이후 도망자는 각자 받아들이지 않고, 붙잡아서 송환해야 한다.

 

4. 현재 러시아백성으로 중국에 있거나, 중국뱅석으로 러시아에 있는자는 종전처럼 명령을 들어야 한다.

 

5. 평화협약이 정해진 날로부터, 양국인민으로 여권을 가진자는 경계를 넘어 내왕할 수 있고, 상호시장을 열어 무역할 수 있다.

 

6. 평화협정이 정해졌으므로 양국은 영원히 화목하며, 변경의 일체 분쟁은 영원히 제거된다. 쌍방이 조약을 준수하면 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양국흠차대신은 각각 조약원본에 서명 날인하고, 각각 정본 부본 2부를 가진다.

이 조약은 앞으로 중국어, 러시아어, 라틴어의 각 언어를 비석에 새겨서 양국의 경계에 두고 영원히 경계비로 삼는다.

 

강희28년 7월 24일

러시아력 1689년 8월 27일

 

네르친스크에서 체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