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맹헌실(孟憲實)
현재는 미디어시대이다. 정치를 하거나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미디어의 보도로 운명이 뒤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하여 미디어에 조심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렇지만 미디어를 적극 이용하는 총명한 관료도 있다. 포즈를 취하고, 이벤트를 벌임으로써, 미디어의 도움으로 자신이 승진하고 성공하는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쇼맨쉽이다. 미디어의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용한다. 오늘날 이런 경우도 드문 경우는 아니게 되었다.
최근 들어 <<문원영화(文苑英華)>>를 읽었는데, 당나라때의 이야기 하나가 실려있었다. 이것도 역시 정치쇼맨쉽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나라때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고금을 대비해보면 그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당나라때의 이야기는 이렇다. 정(丁)씨성의 자사(刺史, 자사는 州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縣令은 현을 다스리는 사람인데, 주가 현보다 상급이다)가 있었다. 아주 추운 한겨울에, 한 사람이 맨발로 물을 건너는 것을 보게 된다. 정자사는 마음 속으로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타고가던 마차로 그 맨발로 강을 건너려던 사람을 태워서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정자사의 이야기는 확실히 애민(愛民)의 이야기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국가간부가 자신이 타고 가던 승용차로 곤란한 일을 당한 백성을 태워준 것과 비슷하다. 백보 양보해서 말하더라도, 국가의 관용차를 몰고 백성들을 치고 다니는 관료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다.
이 이야기가 널리 퍼져갔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데, 정자사는 이로 인하여 백성을 아낀 행위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사인 관찰사(觀察使)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다. 관찰사의 견해는 이러했다. 그런 경우라면 제때에 다리를 놓아야지, 이같이 쇼를 해서는 안된다. 정자사는 반박했다. 억울하다. 나는 백성을 보살펴준 것이다. 논쟁은 논쟁이고, 어쨌든 이 이야기는 당나라때 정치적 쇼를 하던 관리에 대한 대표적인 이야기로 되었다.
지방관리에 있어서, 다리를 놓는 것이 근본일까? 아니면 자신이 우연히 만난 백성을 위하여 애민적인 쇼를 하는 것이 근본일까? 이에 대하여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다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현실은 이 결론과 정반대인 것같다. 설날위문을 예로 들자면, 지역의 기관장에 있어서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들이 빈곤을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근본일까? 아니면 설날때 위문을 한번 하는 것이 근본일까?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내에 그렇게 많은 빈곤층이 있다는 것이, 자랑일까 치욕일까? 이렇게 쇼를 한다는 것은 아예 애민을 모른다는 말일까? 아니면 치욕을 모른다는 말일까?
그러나, 매번 설날이 되면, 자주 이처럼 빈곤층을 방문해서 위문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마치 양자영이 심산에서 어디가 힘드냐고 묻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위문하는 사람은 자신의 통치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의 통치지역내에 있는 것처럼.
천년이 흘렀다. 왜 당나라 사람들도 다 알고 있던 도리를 오늘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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