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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당헌종(唐憲宗): 당나라의 제삼천자(第三天子)

by 중은우시 2010. 2. 27.

글: 위목색자(韋木色子)

 

오랫동안 당나라의 황제들 중에서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3명이다: 당태종 이세민, 당현종 이융기, 당헌종 이순(李純). 당헌종은 당태종이나 당현종처럼 휘황한 태평성대를 열기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과 나란히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을 보면 그에게는 비범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헌종 이순(李純)의 원래 이름은 이순(李淳)이다. 황태자가 되면서 이름을 바꾼다. 그는 당순종의 장남으로 대력13년(778년) 이월 십사일에 장안의 궁중에서 태어난다. 당헌종의 즉위초기에는 '여러 성현의 실록을 읽고, 정관, 개원의 이야기를 보았으며 그를 그리워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여러 명상(名相)을 등용하여, '군국의 주요한 업무는 모두 재상에게 맡겼다" "충성스럽과 계책이 있는 사람을 기용할 줄 알았고, 여러 무리들이 하는 말에 미혹되지 않았다." 즉, 그는 오늘날의 뛰어난 오너처럼 CEO를 잘 채용했다. 그러다보니 좋은 효과가 나타났다. 당헌종이 재위한 15년간, 그는 정무를 열심히 하고, 신하들과 한마음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원화삭번(元和削藩)의 거대한 성과를 거두고, 중앙정부의 명망을 회복하며, 당나라에 중흥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순이 출생할 때는 증조부인 당대종(唐代宗)의 말년이었다. 그가 태어난 다음 해에 조부인 당덕종(唐德宗)이 즉위하고, 부친인 순종이 태자가 된다. 이순이 어렸을 때, 장안성에는 "경사지변(涇師之變)"이 일어난다. 황급히 도망을 간 당덕종은 종실자제의 안전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적시에 철수하지 못한 77명은 반군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에 대하여 당덕종은 평생 회한으로 생각했다. 이순이 6,7세가 되었을 때, 당덕종이 장안으로 되돌아온다. 하루는 이순이 조부인 덕종의 무릎에 안겨 놀고 있었다. 당덕종은 장난으로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누구의 아들이기에, 나의 품안에 있는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3천자입니다" 이 대답에 당덕종은 아주 놀란다. 그가 황제의 장손이므로 조부, 부친, 자신의 순서에 따라 "제3천자"라고 말하다니, 이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날이다. 그러나,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당덕종은 품안의 손자를 더욱 귀여워한다. 정원4년(788년)에 11살된 그는 광릉군왕에 책봉된다.

 

당헌종은 평생 황후를 두지 않았다. 나중에 태후가 되는 곽귀비(郭貴妃)는 취타금지(醉打金枝)의 주인공인 승평공주의 딸이다. 총애하는 여자로는 재녀 두추(杜秋)가 있었다. 그녀는 금루의를 쓴 여인이다. 당헌종이 자기 마음대로 황후를 세우지 않는 바람에, 후궁의 자리가 비어있게 되고 이는 무형중에 황자들이 위신을 세우는데 문제되었다. 부지불식간에 황권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헌종은 비록 원화중흥을 창조했지만, 당현종처럼 용두사미였다, 시작만 했지 끝을 보지 못했다. 이순이 일련의 성공을 거둔 후에, 진취심이 점점 약해진다. 그는 장생불사의 단약에 대하여 처음에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좌도방문의 술법이고, 선조를 미혹시키고, 의약도 정교하지 않으며, 약술도 모두 헛되다. 모조리 간사한 자들이니 그 죄는 죽여 마땅하다" 그런데, 그도 나중에는 당나라황제들의 단약을 좋아하는 통병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중에 당헌종은 조서를 내려 장생불사의 약방을 찾는다. 방사를 찾아서 자신에게 선단을 제련해달라고 한다. 일부 강호의 사기꾼들은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움직였다. 곁에 있는 신하들도 앞다투어 연단술의 고인들을 추천했다: 유필(柳泌), 대통화상(大通和尙)이 그들이다. 유필은 그 스스로 400살이라고 했고, 대통화상은 스스로 150살이라고 했다. 당헌종은 말년에 선단을 먹은 후에 성격이 포악하게 바뀐다. 곁에 있는 환관에게 곤장을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하였다. 당나라말기에 환관들이 창궐하게 된 것은 그 근원을 따져보면 당헌종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헌종 시기는 환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시기였다. 나중의 황제들은 마음은 있으나 힘이 없거나(당문종, 당선존), 힘은 있으나 뜻이 없거나(당무종), 아예 신경쓰지 않는 경우(당목종, 당경종) 뿐이었다. 결국 환관은 당나라와 운명을 함께 했다.

 

820년, 헌종은 대명궁의 중화전에서 사망한다. 향년 43세이다. 분석에 따르면 단약의 과다복용으로 폭사한 것이라고 한다. 외부에는 내관 진송지가 시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찌기 이름을 날리던 명군이 이처럼 장생불사를 갈망하다가 궁중에서 폭사하다니, 오래살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백성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고,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만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