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기업가들은 무엇이 두려운가?

중은우시 2009. 12. 13. 16:16

글: 왕육곤(王育琨)

 

요즘 사람들은 두려운게 너무나 많다: 실업도 두렵고, 위험도 두렵고, 파산도 두렵고, 결핍도 두려우며, 사기도 두렵고,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렵고, 고독이 두렵고, 성공하지 못하는게 두렵고, 자식이 재목으로 성장하지 못할까봐 두렵다. 사람이란 어떤 욕구가 생겼는데, 그러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단과 기능이 없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너무나 무엇이 되고 싶고, 너무나 무엇이 갖고 싶고, 너무나 무엇을 지키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불확정성과 곤란이 있을 때, 사람은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심리학적 각도에서 말하자면, 두려움은 일종의 유기체가 어떤 상황을 벗어나고 도피하고자 하나 그럴 수가 없을 때의 정서체험이다. 필요한 두려움과 경외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동적인 경계상태에 접어들게 한다. 한 사람의 생존에 아주 필요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단언했다. 인생은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무료함과 고통 속에서 오간다. 욕망이 만족되면, 인생은 무료하다; 욕망을 실현할 수 없으면 다시 두려움과 고통에 빠진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두려움은 사람들이 분발하고 노력하게 하는 일종의 필수적인 상태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생리와 의식상의 두려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내심 깊은 곳의 두려움으로 형성될 때, 두려움은 한 사람의 행위 혹은 생활을 주재하는 역량이 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인식과 판단에 큰 편차를 가져오게 한다. 깊은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망가뜨리고 우리의 마음을 추악하게 한다.

 

성공적인 기업가는 여러가지 명예를 지니고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높은 곳에 오르니 뭇 산들이 작아보인다는 호매함을 갖게 하고, 동시에 사람들 속에서 고독함과 적막함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기업가가, 내심 깊은 곳에는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긴장과 초조를 지니고 있다. 인성의 추악함에 대하여 백배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먹고 잘 때도 불안하다. "제도는 바로 사람에 대한 불신이다" 이것은 기업가들이 자주 입에 달고 다니는 잠언이다. 직업생애에서 '총명하지 않은 자는 쓰지않는다'던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은 계속하여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일본의 전최고부자에게 패배를 당하게 된다.

 

중국 순자의 "성악설'의 가르침과 부친의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유훈을 그대로 따른 쓰쓰미 요시아키는 세이부(西武)그룹을 40년간 장악했고, 세이부그룹을 철도, 체인호텔, 백화점, 레크리에이션시설을 경영하며, 일본의 6분의 1의 토지를 구매하고, 일류프로야구단을 가진기업왕국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고독하게 결단했고, 여러 파도와 격랑을 거치면서 여러번의 겁난을 피해갔다. 동남아를 석권한 금융위기도 그를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2005년 3월, 쓰쓰미 요시아키는 고위경영진이 그가 모회사의 지분비율을 허위보고했다고 제보함에 따라 감옥에 들어간다.

 

아무도 쓰쓰미 요시아키라는 이 상인중의 철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성이 악하다는 것을 회사경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누구든지 깊은 의심의 눈으로 대했다. 그러다보니 충성심이 없는 사람들만을 배양하게 된다. 일생동안 심기를 써서 음모를 막아왔으녀 결국은 스스로 총명하다고 생각했던 그 방식으로 살다가 꺽여버리게 되는 것이다.

 

상업은 관계를 통해서 도로를 개척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공기와 물과 같이 불가결한 관계는 바로 기업가들이 두려워하는 근원이다. 고독하고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쓰스미 요시아키는 기업가는 일반인처럼 아무렇게나 고민을 호소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이를 통해서 여러번의 위험을 해결했다. 기업가가 고민과 벽에 부닥쳤을 때에 얘기를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는 것은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그와 함께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모든 문제는 협소한 공간 내에서만 해결되어야 한다. 이렇게 오래되다보면, 일종의 거대한 불안감이 음습하고, 이것이 심리매커니즘을 모두 결정해버리게 된다.

 

두려움은 없애거나 항거할 수 없다. 두려움의 전체 본질과 구조를 이해하여야 비로소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신선하고 새로워야만 두려움을 이해하고, 두려움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곤란한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연상, 기억, 경험, 의외로 두려움을 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기존의 경험과 방식에 좌우된다. 진실한 존재를 대면하는 것은 아직 작용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이미 판결이 난 것이다. 우리가 판결할 수 없는 것을 판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호흡과 같이 자연스럽다. 혹은 하나하나의 구덩이를 지나면서, 하나하나의 위기를 겪으면서, 한번 또 한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기업가는 두려움과 공생하는 법을 배운다. 다양화된 심성수련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심성을 제고시켜야, 두려움이 극복된다. 어떤 기업가는 불교를 배우고 도교를 배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는다. 어떤 사람은 태극권, 대성권 및 여러 기공을 수련하고, 어떤 사람들은 착실하게 큰 일을 잘게 나누고, 구체적인 인들을 끝까지 챙긴다. 어떤 방식을 통하던, 작은 일을 하나하나 잘해나가다보면, 마음은 안정된다. 마음이 안정되면, 지혜가 올라간다. 이때 두려움은 더 이상 파도를 일으키고 뒤흔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이미 자연의 율동이나 리듬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업가의 생활속에 융합되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는데에는 끝이 없다. 이는 끝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 "일종의 내심에 창조적인 공간이 풍부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체험하게 되면, 사람은 바로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 이때는 방향도 없고, 편가르기도 없고, 편견도 없고, 집착도 없다. 즉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그의 행위가 좌우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노예가 아니며, 그가 현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기업가에 있어서, 2010년은 아마도 이런 시간초월의 통찰력을 가져서 깊이있는 변화를 해야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