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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절강상인: 도박의 십자로에서 배회하다

by 중은우시 2009. 2. 2.

글: 하용(何勇)

 

절강(浙江)의 민간자본은 아주 활발하다. 이우(義烏), 원저우(溫州), 닝보(寧波) 일대에는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부족함이 없는 생활, 다 쓸 수가 없는 많은 돈, 이것들은 일부 향락의 잘못될 길에 빠질 수 있는 좋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도박'의 온상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카오의 카지노개설권이 개방되기 전에, 카지노의 고객은 주로 홍콩사람들이었다. 당시의 "마자이(碼仔. 카지노브로커)"는 홍공사람들이 위주였다. 2002년 카지노개설권이 개방된 후, 중국내지의 많은 성시에서 홍콩마카오 '자유여행'을 허용하게 되면서, 본토의 여행객들이 마카오에 가는 것이 아주 편리해졌다. 그리하여 카지노에서 본토사람들이 늘어가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먼저 부유해진 원저우상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왕왕 단체로 모여서 오곤 했다.

 

통계에 따르면, 2004년 마카오의 주권회복 5주년때, 도박세는 누적적으로 130억마카오달러를 넘어섰다. 도박관련업에서 발생한 수입(식사 숙박은 제외)을 모두 합하면 273억마카오달러가 되었다. 마카오관광사의 통계에 따르면, 마카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에서는 본토사람들이 절대다수이다. 일반적으로 매년 황금주간에 마카오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서 60%이상은 본토에서 온다.

 

자주 마카오에 가서 도박을 하는 절강상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 본토관광객들 중에서 절강사람이 가장 많다. 그들은 도박고객의 주력일 뿐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마자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마카오에서 "고리대금업(放數)을 하고 있다"

 

일부 원저우 사람들은 마카오 카지노업의 전후방관련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단기간내에 마카오거류권을 취득할 수 없어서, 아예 주하이(珠海)에 집을 사놓고, 낮에는 마카오로 건너와 일을 하고, 저녁에는 주하이로 돌아가서 잡을 잔다. 현재 원저우의 도박고객들 중에서 지명도가 아주 높은 두 명의 "마자이"가 있는데, 이전에는 원저우 현지에서 노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 마카오에서 두 개의 카지노를 통채로 빌려서 돈을 벌고 있다. 그리하여 마카오와 원저우를 오가면서, 원저우상인들이 마카오로 와서 도박을 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부인도박단

 

2008년 12월 22일, 원저우의 경찰이 부녀도박단사건을 적발했다. 현장에서 체포한 24명의 도박꾼들 중에서, 19명이 여성이었는데, 나이는 대체로 30세-50세였다. 가장 나이많은 부인은 72세였고, 가장 나이어린 여성은 80후(80년대출생)였다.

 

경찰이 자료를 검토해보니, 이들 여자들중 절반은 도박전과가 있었다. 72세된 노부인은 도박으로 이미 경찰에 3번이나 체포된 경력이 있다.

 

원저우시 루청(鹿城)구 장빈(江濱)파출소 소장인 천커하오(陳可浩)는 요 몇년동안 여러 건의 도박 "낭자군'을 적발했다. 이는 아마도 '원저우특색'이라고 할만할 것이다.

 

절강상인연구전문가에 따르면, 절강상인은 전국에서 도박이 가장 성행하는 상인집단이다. 이전에는 주로 남자들이 도박을 했는데, 현재는 갈수록 많은 여성들이 이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주요한 원인은 원저우의 민영경제가 발달하면서, 백성들의 집안형편이 비교적 넉넉해지면서, 도박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던 부녀들에게 도박을 할 수 있는 물질적인 기반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자들은 장사하느라고 바빠서, 집에서 놀고 있는 부인들이 도박으로 소일거리를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은 원저우의 민간에서 이미 통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일부 스스로 점포를 열고 있는 여사장들도 점포를 종업원에게 맡긴 후에 도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원저우 현지의 한 신문사에서 정법을 담당하는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 외부에서는 그저 "원저우부인부동산투기단(溫州太太炒房團)"이 유명했지만, 사실 "원저우부인도박단(溫州太太賭博團)"이 더욱 무섭다고 한다. 그녀들은 어떤 사람은 한번에 1만위안씩 걸기도 하고, 많으면 수십만위안, 백만위안이상을 걸기도 한다. 호쾌함은 남자들보다 더하다. 그리하여 이는 현지에서 특이한 풍경이 되고 있다.

 

'경제절강상인'의 변신이 필요하다

 

절강상인문화에 대하여 연구를 깊이한 중국재세박물관 관장인 웡리화(翁禮華)에 따르면, 일부 절강상인이 도박에 열중하는 것은 재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즉 전체적인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웡관장의 분석에 따르면, 절강상인집단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이다. 농민들이 사업을 하는데 비용이 별로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기회를 붙잡아서 돈을 번 절강상인들은 대부분 농민출신이었다.

 

"농민들에게는 천성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교육수준이 낮고, 문화소질이 떨어지며, 가치관과 인생추구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에 대한 이해가 왕왕 아주 직접적이다' 웡리화에 따르면,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된 후에, 인생의 행복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른 형식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문화수준은 그들을 제약하고, 그리하여 주지육림에 빠지고, 사치하고 낭비한다. 혹은 도박을 선택한다."

 

웡관장에 따르면, 절강상인이 도박등 저급한 문화에서 벗어나서, 재물을 잘 다루려면, 가장 거논적인 것은 바로 철저하게 '졸부'근성을 버리고, 자신의 자질을 끌어올리며, 한단계 높은 고급문화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좀더 가치있는 인생의 이상을 실현하도록 하여야 한다.

 

"강소절강일대에 부자들이 많다. 돈이 있으면 도박을 하다보니, 자연히 도박금액도 커진다." 원저우시 경제학회회장인 마진롱(馬津龍)의 말이다. "이는 기업가들이 성공한 후에 자신을 규율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가 보기에, 절강에서 가장 성공한 몇몇 기업가들은 도덕적으로나 자질면에서 괜찮은 편이다. 다만 절강상인의 전체적인 수준은 확실히 낮은 편이다.

 

절강성의 한 정부관리는 이렇게 총평한다: 기업가가 상당한 금액의 재산을 모은 후에 자신의 앞에 놓여진 선택은 몇 가지가 있다: 도박에 빠지는 길, 비록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만 막다른 길은 아니다. 다만 가면 갈수록 위험해진다; 수성의 길. 작은 재산으로 만족한다. 비록 좁은 길이지만, 가면 갈수록 좁아지며, 오래 가지 못한다; 창업의 길. 비록 힘들고 고되지만, 밝은 길이다. 가면 갈수록 넓어진다. 멀리갈 수 있다; 자선의 길. 비록 바른 길(正路)이지만, 반드시 창업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현재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금융위기하에서 수출형기업을 위주로 하는 절강상인들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으로 산업업그레이드, 다원화 및 전문화를 필요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가족제와 현대기업제도의 충돌과 모순이 있다. 여기에 도박에 빠져서 대량의 자금을 잃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절강상인들이 사상유례없는 곤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절강상인들이 '경제절강상인'에서 '인문절강상인'으로 변신하기를 바란다." 절강성 절상연구회 부회장 겸 정강청년학원 부원장인 왕슈광(王曙光) 교수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