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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징기스칸)

레닌은 징기스칸의 후손인가?

by 중은우시 2009. 12. 9.

글: 신력건(信力建)

 

1870년 4월 22일(율리우스역일 4월 10일), 레닌은 러시아 심비르스크성 심비르스크시(현재의 우리야노프스크주 심비르스크시)에서 태어났다. 위키피디아의 소개에 따르면, 레닌은 다원적인 혈통을 지닌 혼혈아이다. 그는 러시아인, 모르도바인, 칼미크(Kalmyk)인, 유대인, 볼가독일인 및 스웨덴인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 칼미크인은 바로 러시아 볼가강 하류 카스피해 서북연안의 칼미크자치공화국의 주민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아스트라칸, 볼가그라드, 로스토프와 스타프로보르등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오이라트인의 후예이다. 몽골인종 서아시아유형에 속하며, 칼미크어를 사용하는데, 토르후트와 두르보트의 두 방언이 있다. 알타이어계의 몽골어족에 속한다. 슬라브알파벳문자를 가지고 있으나, 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러시아어문자로 바꾸어 사용한다. 칼미크인은 주로 유목 혹은 반유목에 종사한다. 면양, 말, 낙타등을 기르고, 일부 어업에 종사한다. 190년대부터 점차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현재, 국민경제에서 주요한 지위를 점하는 것은 농산품, 축산품과 어획물의 가공공업이다. 농업은 보리와 사료생산을 위주로 한다. 주로 러시아 칼미크공화국에 살고 있는 몽골족의 언어는 몽골어족의 오이라트어갈래 혹은 서부어갈래에 속한다. 오이라트 방언은 몰골서부, 중국 신강성과 부근의 각 성에서 통용된다. 칼미트인의 고향은 볼가강의 서부하류지방이며, 카스피해의 서북해안에 화살처럼 구부러진 지역이다. 부자와부락의 소수 칼미트인들은 돈강유역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소수의 무리는 사르트 칼미크인이라고 부르는데, 키르키즈공화국에 붙어있는 중국변경지역에 살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후, 소수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칼미크인들은 오랫동안 유목생활을 하면서, 말, 소, 양 및 약간의 낙타를 길러왔는데, 유목생활방식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매년 겨울숙영지를 출발하여, 봄초지, 여름초지와 가을초지에서 방목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몽고파오에서 산다. 농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모두 정착하여 생활한다. 가정생활, 호주상속제도, 혼인관계와 재산상속은 모두 부계를 따른다. 전통적으로 대가족제도이며, 부모, 기혼자녀 및 그 가족과 미혼자녀로 구성된다. 몇 개의 가족이 하나의 가족촌락을 구성하며, 촌락이 다시 씨족을 구성하며, 씨족이 다시 씨족연맹을 구성한다. 다른 몽골인들과 마찬가지로, 칼미크인들은 라마교도이다. 그러나 그들의 불교는 원주민신앙과 샤먼교의 결합물이다. 사르트칼미크인은 무슬림이다. 칼미크인의 인구는 147,000명(1979년)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레닌의 혈통에는 몽골인의 유전인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하여 레닌 자신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10월혁명기간동안, 한 칼미그(몽골인) 동지가 레닌의 거주지를 찾아갔을 때, 레닌은 밀크티로 그를 접대했다. 그는 이상하게 여겨서 레닌에게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이런 차를 마실 줄 아는가?" 레닌은 흥분해서 그에게 말했다: "나의 할머니는 칼미크인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밀크티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칼미크인들 사이에 널리 전파된다. 그들은, 위대한 레닌의 혈액중에 칼미크인의 피가 흐른다고 자랑스러워한 것이다. <<레닌전>>의 기록에 따르면, 그중 제1장에서 레닌의 여동생 마리아 우리야노바가 레닌을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나온다: 그의 외모, 발음특징을 잘 살펴보면, "체격적으로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그의 부친과 아주 닮았다. 그는 그 부친의 몸매, 광대뼈가 높이 솟은 얼굴형, 몰골형의 눈가, 약간 위를 보는 눈, 넓은 이마를 이어받았다. 그는 부친의 말하는 기질과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진실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심지어 그 부친이 'ㄹ'을 발음할 때의 가벼운 목소리도 이어받았다."

 

해방군문예출판사가 출판한 <<레닌의 역정>>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레닌의 원적은 심비르스크가 아니다. 그의 할어버지인 니콜라스 바시리아비치 우리야노프는 가난한 재봉사였고, 과거에는 아마도 농노였을 것이다. 볼가강이 카스피해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의 근처에 있는 아스트라칸에서 살았다. 그곳은 물고기의 비린내가 퍼져있는 수공업 소도시이다. 니콜라스 바시리아비치라는 이 러시아인이 약 50세쯤 되었을 때, 그는 칼미크인으로 문맹인 여인 안나 알렉세예프나 스미르노바와 결혼한다." 그리고 레닌의 넓다란 관골과 외사시안(外斜視眼)은 그에게 아시아혈통이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소련의 레닌에 관한 전기에서 레닌의 종족을 얘기할 때는 순수한 러시아인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레닌의 조상이 러시아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러시아인으로서, 레닌은 왜 몽골인혈통을 지니게 된 것일까? 혹시 피바람이 몰아친 원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을까?

 

영국의 <<선데이타임즈>>보도에 따르면, 영국과학자 브라이언 사이키스는 남성염색체인 Y염색체를 연구한 신간서적 <<아담의 저주>>를 발표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징기스칸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파종자'일 것이라고.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징기스칸이 이끈 몽골기병은 판도를 역사상 최대규모로 확장했다. 동시에 그의 자손들은 유라시아 양대륙의 토지에서 번성하게 만들었다. 현재 전세계에는 최소한 1600만의 남성이 징기스칸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본다. 잉글랜드에도 그의 자손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영국황실가족도 포함된다. 사이키스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동안 그와 옥스포드대학의 연구인원이 중국,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몽골등 징기스칸제국판도내 및 그 주변지역에서 16개조의 혈액샘플을 채취했다. 결과는 8%에 달하는 남성유전인자중에서 서로 같은 Y염색체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비율은 통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동일한 선조로부터 계승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남성이 생활한 연대는 그다지 멀지 않다.

 

염색체의 미소한 변화를 검사한 결과, 이 공동조상이 생활했던 연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 얻어낸 결론은 바로, 그들의 공동조상은 모두 12세기에서 13세기에 살았다는 것이다. 이 유전인자의 변화증거와 징기스칸이 12세기에 건립한 몽골제국의 지리판도의 확장을 연결시켜보면, 연구자들은 이것은 바로 징기스칸의 염색체부분이라고 추단한다. 이외에 비교적 설득력있는 증거는 파키스탄의 Hazara라는 산간부락에서 나왔다. 그들은 구두로 자신들이 징기스칸의 후예라고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과학자들도 이 부락의 남성들 중에서 이 Y염색체부분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통하여 이 염색체는 바로 징기스칸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추가로 인증되었다.

 

사이크스는 또한 징기스칸의 자손이 많은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징기스칸왕국의 판도는 13세기에 몽골에서 아프간에 걸쳐 있고, 러시아와 이란까지도 퍼져갔다고 지적한다. 몽골대군은 매번 한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도살을 감행했고, 사병들은 대거 재물을 약탈하고, 붙잡아온 미녀를 징기스칸에게 바쳤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적지 않은 혼혈의 자식들이 있었다. 이들 자식들에게는 모두 그의 염색체가 흐른다.

 

징기스칸은 전쟁터를 40년간 누비다가 약 65세에 사망한다. 세력은 러시아, 헝가리와 폴란드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후손을 많이 두었다. 징기스칸의 장남인 주치만 하더라도 40명의 아들이 있었다. 손자인 쿠빌라이는 중국을 정복하여 원나라를 건립하고, 바투는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의 키에프를 점령했다.  그리고 헝가리와 폴란드도 침입했다. 그들은 징기스칸의 '수퍼염색체'를 계속 전파하여, 징기스칸가족은 갈수록 방대하게 되었다.

 

요약하면, 일대천교(一代天驕) 징기스칸의 철기는 수백년전에 거의 모든 유라시아대륙을 점령했고, 그의 죄악과 씨는 유라시아대륙에 널리 퍼져있다. 레닌의 몸에도 몽골인의 피가 흘렀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