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금계(衛金桂)
서북지역 농민의 집에 가서 왜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물으면, 그들은 그냥 웃을 것이다. 외지에 나가보지 않은 노인은 목욕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만일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그들은 쑥쓰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여름에 장난끼있는 남자아이들이 강물이 흐르다가 모여있는 곳에 두어번 왔다갔다하는 것을 '타조아(打澡兒)"라고 하는데, 이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수영이고 목욕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저 물놀이에 불과하다. 만일 그곳에서 계속 생활한다면 평생동안 딱 1번 목욕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세삼(洗三)"이라고 하여, 아이가 태어난지 3일째 되는 날 산파가 해주는 의식이다.
"세삼"의 습관은 많은 지역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무석(無錫)에도 "세삼가(洗三歌)"라는 것이 있다: "세세단(洗洗蛋), 주지현(做知縣); 세세구(洗洗溝), 주지주(做知州); 세세두(洗洗頭), 주왕후(做王侯)"라는 말이 나온다. 필자는 서북의 '세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남존여비와 부녀의 생식기는 불결하다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영아의 몸에서 모체와의 연대를 깨끗이 씻어내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여자의 하의를 만일 높은 줄에 매달아두면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간섭할 것이다. 남자가 부주의해서 그 아래로 지나가게 되면 재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부녀가 아이를 낳을 때 양수와 혈액을 받은 초목은 변소에 넣어 비료로 삼지 않고, 깊은 곳에 묻어버린다. 그것은 농사에 부정이 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노인, 노부인은 월경을 하는 여자를 보지 않는다. 그녀들을 보면 눈이 아프다고 한다; 부주의해서 월경중인 여자의 방에 들어가면, 문을 나올 때 땅바닥에 침을 뱉어서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 3년전에, 필자는 시외버스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그만 농민니 놔둔 양식포대 위에 앉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분노해서 소리쳤따: "여자가 앉았던 양식을 우리보고 어떻게 먹으라는 것이냐?"등등. 이것들을 보면 아이가 '세삼'을 하지 않게 되면, 그후 아이를 앉아주고, 뽀뽀해줄 때도 마음 속으로 거리낌이 있지 않겠는가? 세삼을 한 이후에 평생동안 다시 목욕하지 않는다. 각 지역과 각 민족은 서로 다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서는 여자들이 시집가기 전에 큰 목통에서 딱 한번 목욕한다. 회족들은 사망한 후에 1번 몸을 씻는다; 기온이 높고, 물이 많은 곳에서는 여름에 몸을 자주 깨끗이 씻는다.
서북산지에는 댐이 적다. 물이 적을 뿐아니라, 전답에도 관개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적다. 물을 모아두어도 소용이 없다. 절대다수의 물은 고산지대의 만년설이 녹은 것이거나, 지하수이다. 수온이 아주 낮다. 그리도 대부분은 개울물이다. 사람이 그 물 속에 들어가더라도 등을 다 적시지 못할 정도이다. 일부 큰 강물은 산사태등의 원인으로 강바닥의 곳곳에 날카로운 돌맹이가 있다. 만일 몸이 얼거나 살이 갈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물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바지를 걷고 물 속에 잠깐 담궜다가 바로 나오는 것이 가장 좋다. 황하고원에 있는 저수지는 여러 집의 화장실이나 도로를 흘러서 모여든 물이다. 씻고 싶으면 씻어도 된다. 그러나 씻으면 씻을수록 더러워질 것이다. 수영? 할 곳이 없다. 저수지는 미끌미끌해서 조금 잘못하면 미끄러져 들어가고, 그 속의 진흙탕에 묻히면 몸을 빼지 못한다. 황하의 가에서 발뎐되는 검치상(劍齒象)의 골격화석을 보았는가? 바로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집안에서 씻는다고? 사람이 먹을 물도 먼 곳에 있는 작은 우물에서 가져오고,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 길어오는데, 세수할 물조차 얻기 힘들다. 그것을 가지고 목욕을 하라고? 그리고 어느 집도 목욕을 할 수 있는 목통을 갖추지 않고 있는데, 어디가서 씻을 것인가? 생활이 곤란하여 갈아입을 옷조차 없다면, 씻는다고 하더라도 헛일이 아니겠는가?
서북농민은 토항(土炕, 구들)에서 생활한다. 잠자고, 밥먹고, 놀고, 모이고 등등. 거의 모두 토항위에서 일어난다.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토항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 습관이 있다. 토항에 오를 때 신발을 벗으려면, 자신의 신발이 토항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밟혀서 엉망이 되지 않게 하려면 신발을 토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벗어두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맨발로 걸어서 토항에 오른다면, 실제로 벗으나 안벗으나 그게 그거다. 조금 신경쓰는 집안이면, 토항에 사용하는 빗자루와 바닥을 청소하는 빗자루를 따로 둔다. 그러나 많은 집에서는 빗자루 하나로 먼저 토항을 청소하고, 다시 땅바닥을 청소한다. 흙속에서 왔다갔다하고, 흙속에 앉고, 흙속에 잔다. 흙은 몸에 붙어 있게 되고, 다시 땅위를 돌아다닌다. 의복을 하루에 한번씩 갈아입을 수도 없다. 목욕을 한다고 하더라도 헛고생인 셈이다. 기온이 비교적 낮은 지역, 즉 청해와 서부에 해발이 높은 곳에서는 아주 짧은 여름동안의 최고기온도 섭씨25도가 되지 않는다. 관절이 좋지 못한 노인은 여름에도 면바지를 입는다. 땀도 거의 나지 않는다. 목욕을 한 후의 잠깐동안의 편안함보다는 번잡함과 추위가 더욱 골치아플 것이다.
기온이 낮고, 지세가 복잡하며 날카롭고, 여기에 보수적인 사상등도 영향을 미쳐서, 서북의 농촌에서는 거의 치마를 입지 않고, 시원하고 짧은 의복도 입지 않는다. 간편하고 편리한 긴 바지와 긴 소매의 의복을 기본 복장으로 한다. 오랫동안 이렇게 살다보니, 가급적 자신의 신체를 적게 드러내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신체는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자가 첫번째로 목욕을 할 때도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대학1학년때, 목욕탕에 갔다가 대야를 들고 운동장을 지나오게 되었는데, 멀리서 보니 같은 반의 남학생들이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 돌아서 재빨리 걸어갔다. 그때는 목욕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숙사에 돌아오자 앞에 나보다 나이가 몇 살많은 진수생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뭐하고 오는 거냐?"고 하였다. 나는 머릴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얼굴을 발개졌다. 다시 고개를 드니, 그는 얼굴에 미묘한 웃음을 띄며 가버렸다. 아마도 내가 왜그랬는지를 알았던 것같다. 그가 기숙사로 돌아간 후 나를 가지고 우스개거리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목욕을 하지 않고, 옷이 적다는 것은 위생문제를 가져온다. 이(蝨)와 서캐가 많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들은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번식의 결과 여자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는 하얗게 모여있고, 심각할 때는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할수없이 머리를 감는 물 속에 식초를 넣어서, 그것들이 물에 불은 후에 빗으로 빗어내야 한다. 옷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겨울에는 추운 밤에 내복을 바깥에 걸어서 반복해서 얼린다. 여름에는 물을 끓어서 몇번 삼는다. 전자와 비교하자면 끓는 물에 삶는 것은 옷을 낡게 한다. 그리하여 빈곤한 가정에는 설상가상이다. 그리하여, 이를 잡는 것이 필요하다. 2000년에 공서탁(龔書鐸) 선생이 필자에게 중국근대문화사 과정을 강의했는데, 그가 여러번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영국인들이 만든 중국역사교과서에는 장족들이 담장아래에서 이를 잡는 사진이 있는데, 그는 이것이 서방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며, 도대체 어느 시절의 사진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그에게 햇볕에 말리고 이를 잡는 것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모든 여자들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잡은 적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을 잡아준 적도 있다. 요즘들어 농민들이 바깥에서 일하는 일이 많아지고, 여기에 여러가지로 개선되어, 의복을 자주 갈아입게 되니, 이와 서캐가 적지 않은 집에서는 사라졌다. 이것은 사회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욕하지 않는 상황이 옛날이나 똑같다면 이와 서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목욕을 하지 않거나, 목욕을 적게 하는 것은 수원(水源), 습관, 물질생활수준, 위생요소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기후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필자가 북경에 와서 공부할 때, 겨울에는 매주 1장씩 목욕표를 나눠주었다. 나머지는 교수에게 얘기해서 사야한다. 나는 그 정도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이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서(江西)에서 온 반친구는 온갖 방법을 강구해서 목욕표를 더 구했다. 그는 너희 서북사람은 좋겠다. 우리 남방사람들은 1주일에 1번만 씻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다시금 부끄러워졌다. 스스로에게 위생습관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년후 나는 구강(九江)을 갔다. 오전에만 세번을 씻었다. 강서사람보다 더욱 많이 씻게 된 것이다. 심지어 물 속에서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곳은 정말 무더웠다. 땀이 마르지도 않고, 계속 굴러떨어져서 온 몸이 찝찝했다. 그제서야 생각이 들었다. 남방사람들이 우리 서북에 오면 분명히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목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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