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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남경에는 제왕릉(帝王陵)이 몇 개나 남아있는가?

by 중은우시 2011. 6. 18.

작자: 미상

 

 

 

남경은 역사문화명성(歷史文化名城)이며, 중국의 사대고도(四大古都, 북경, 남경, 서안, 낙양)중 하나이며, 중국역사상 육대문화고도(六大文化古都, 북경,남경,서안,낙양,개봉,항주)의 하나이다. 이곳은 용반호거(龍盤虎踞)의 땅으로, 지세가 험준하여, 제갈량은 일찌기 이 곳을 제왕지택(帝王之宅)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일찌기 번화했던 고도에서 세상을 다스렸던 제왕들 중에서 몇 명이나 이 곳에 잠들어 있을까?

 

남경은 자고이래로 장강하류지역의 문화와 정치중심이며, 중요한 상업경제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 도시는 풍부한 자연경관과 역사유물이 남아 있다. 동쪽의 탕산에서는 원인의 두개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35만년전에 남경이 고인류가 거주하던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오늘날의 남경 중화문의 서남쪽에 성을 쌓는다. 이때부터 남경의 성원사(城垣史)가 시작된다. 지금부터 2471년전의 일이다. 3세기부터, 동오, 동진과 남조의 송, 제, 양, 진이 차례로 이 곳에 도읍을 정한다. 그래서 남경은 육조고도(六朝古都)라고 불리운다. 그후 남당, 명나라초기, 태평천국, 중화민국도 모두 이곳을 도성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십조도회(十朝都會)라는 명칭도 있다. 남경성은 우리에게 풍부한 민족문화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일찌기 이 곳에서 번화한 도성을 주재하던 제왕들은 지금 어디에 묻혔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왕지택인 이 육조고도에 묻혀 있을까?

 

첫번째로 이 곳에 묻힌 고대황제는 삼국시대의 오나라 대제(大帝) 손권(孫權)이다. 손권의 장릉(蔣陵)은 남경 근교의 종산(鍾山) 독룡부(獨龍阜) 완주봉(玩珠峰)의 아래에 있다. 명나라의 개국황제 주원장의 효릉(孝陵)의 월아형(月牙形) 신도(神道)가 손권묘를 감싸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주원장의 효릉을 만들 때, 어떤 사람은 손권의 장릉을 이장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원장은 손권을 사나이로 존경했으므로 남겨두게 되고, 효릉의 문앞을 지키게 된다.

 

동진, 남조의 각 군주들도 건강(建康, 즉 남경)의 부근에 방대한 제왕능을 짓는다. 그리고 일부 왕공귀족들의 능원도 있다. 묘의 앞에는 거대하고 생동감넘치는 석각예술품이 놓여 있다. 이는 중국의 석각예술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능침의 건축에서, 동진은 서진의 옛 제도를 그대로 답습한다. 남조는 충분한 부를 갖추고 있어, 궁전의 건축이 아주 호화스러웠고, 지상건축도 상당히 웅장했다.

 

남조시대의 첫번재 황제인 송무제 유유(劉裕)의 초녕릉(初寧陵)부터, 능원의 지하궁전과 지상건축규모는 날로 방대해진다. 비록 능침의 건축은 일찌감치 전화에 불타버렸지만, 오늘날 능의 앞에 있는 신도의 양측에 세워져 있는 천록, 기린의 석조를 보면, 장엄고박한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며, 살아있는 것처럼 웅혼하며, 아주 위엄있고 용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유송왕조는 모두 8대의 제왕이 나왔는데, 대부분의 제왕은 건강에 묻힌다. 남조의 제왕중에서, 유유의 정치적 어적만이 중화영웅이라고 할 만하고, 현재의 초녕릉도 세상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능침은, 혼군 유준(劉駿)의 경녕릉(景寧陵)만이 1960년에 발굴되어 아직도 유적으로 남아있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능침은 대부분 전란으로 이미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남제, 남량의 제왕 11명은 모두 성이 소씨(蕭氏)이다. 이들은 단양군 남난릉(南蘭陵) 출신이며, 사후에 그들은 남난릉에 묻혔따. 남제의 여러 제왕릉중 현재 선제 영안릉, 고제 태안릉, 무제 경안릉, 명제 흥안릉, 경제 수안릉의 다섯개 능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이후에 이 곳에 묻힌 제왕으로 유명한 것은 지하궁전 '남당이릉(南唐二陵)'이 있다. 즉 남당 열조 이성의 흠릉과 중주(中主) 이순릉이다. 그리고 주원장과 마황후의 명효릉도 이 곳에 세워졌다.

 

이처럼 수백년간 번화했던 도성은 지금도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모든 왕후장상들이 후세에 남긴 것은 그저 폐허뿐이고, 약간의 흔적 뿐이다. 청산만이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용반호거의 웅혼한 기세는 여전하며, 지금도 우리에게 옛날의 번성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