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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추악한 상해인

by 중은우시 2008. 10. 24.

글: 장일일(張一一)

 

나는 앞에서 <<추악한 호남인>>과 <<추악한 북경인>>을 쓴 바 있다. 다만, 그것은 그저 돌을 던져 옥을 끄집어내려는 것이거나 혹은 길을 여는 것이었다. 일단 당신이 상해인과 만나보면, 비로소 무엇이 진정으로 추악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 양성음쇠(陽盛陰衰)

 

상해라는 이 도시는 4장의 '문화명함'이 있다. 각각 류샹(劉翔), 야오밍(姚明), 한한(韓寒)과 위추위(余秋雨)이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유명한 이 네명의 상해인은 모조리 남자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아예 '남녀평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류샹, 야오밍, 한한과 위추위들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가? 운동선수인 류샹과 야오밍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였음에 틀림없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올림픽금메달대국인 중국에서 우리는 좋은 운동선수는 널려 있다. 현단계의 중국에서 사상이 있고, 경제건설을 이룰 수 있는 인재가 비로소 긴요하고 필요한 자원이다. 류샹과 야오밍에 대한 지나친 부풀리기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방향을 잃게 할 수 있다. 상해의 또 다른 두 장의 '명함'인 한한과 위추위는 더욱 황당하고 가소롭다. 한 사람은 자가발전을 통하여 성공한 경우이고, 한 사람은 몇편의 무병신음산문 심지어 자전적인 장편조차도 쓰지 못하면서도 '대가'와 '대유학자'로 자처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성공은 상해라는 이 도시의 비애일 뿐아니라, 더더구나 중국인의 집단비애이다.

 

류샹, 야오밍, 한한, 위추위는 상해도시문화의 상해남자의 몸에서 '경박'함이 무엇이지를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2. 숭양미외(崇洋媚外)

 

상해인들은 북경인, 광동인, 강소절강인 및 다른 모든 상해이외의 모든 대륙사람을 '시골사람', '농민' 또는 "비에싼(거지, 깡패)"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일찌감치 잊고 있다.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소북의 시골 또는 절강의 농촌에서 도망쳐왔던, '시골사람', '농민' 또는 '비에싼'이었다는 사실을.

 

상해인의 자녀는 거의가 상해이외의 지역으로 공부하러 가지 않는다. 당연히 성적이 아주 나쁘고 집안사정이 아주 좋지 않은 경우는 예외이다. 상해인의 자녀는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가는데, 상해말, 일본어와 보통화(표준어)는 상해의 3종 '공식언어'이다. 상해에서 왕왕 일본인이 있으면, 보든 사람은 자신들이 평소에 쓰던 상해화를 버리고 일본어로 대화한다. 상해에서 일본어의 보급정도는 놀라울 정도이다.

 

상해인들이 가장 많이 모는 차는 일본차이다.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판매원은 아주 자랑스럽게 이렇게 얘길 하곤 한다: "이것은 대일본제국의 오리지날 제품이다. 싸면서 오래 쓴다" 말하는데 침이 튄다. 말투로 보면 마치 대일본제국이 그들의 아버지나 되는 것같다.

 

3. 냉막자사(冷漠自私)

 

만일 중국에서 '가장 인정미가 없는' 도시를 고르라면, 상해말고는 없을 것이다. 만일 상해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져서 머리에 피가 흐른다고 해도, 절대 누군가가 너를 도와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 뒤에서 누군가가 죽어라 딸랑이를 울려대고, 한편으로 못참겠다는 듯이 중얼거릴 것이다: '아휴, 빨리 좀 일어나라. 나도 출근해야지.." 이것이 당신에 대한 가장 인도적인 구원이다.

 

상해사람들은 교통신호등이 무엇인지 모른다. 큰길을 걸어가는게 마치 자기 집안의 거실을 걸어가는 것같다. 그래서 상해의 교통사고빈도는 가장 높다. 어느 기관에서 상해의 십자로에 북경의 황마괘를 입은 교통협관원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말도 들린다. 어쨌든 진보는 진보이다.

 

상해의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영원히 '먼저 타고, 나중에 내린다' 3년전에 장일일 선생은 상해에서 한번 지하철을 타본 아름다운 경험이 있다. 역에 도착한 후 3개의 역을 지나도록 몸을 문쪽으로 빼내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절망적으로 '사람살려'를 외친 적이 있다. 그제서야 마지못해 조그만 길을 내주었고, 나는 4개역을 지난 후에 비로소 온몸에 상처를 입고 사면을 받은 것처럼 비좁은 전철에서 내린 적이 있다. 이때부터 상해지하철 이야기만 들어도 얼굴색이 변한다. 2008년 북경올림픽기간에 어느 네티즌이 야오밍 부모가 지하철을 타고 우커송체육관에 가서 농구경기를 보는 것을 찍은 것을 봤다. 나는 당시에 생각했다. 만일 이 우커송체육관을 상해로 옮겼다면,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야오밍의 부친은 분명히 그 경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왕지문과 대요가 합창한 사랑노래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사람이 북적대는 도시에서 내심이 완벽한 자아를 찾는다. 너는 조금 신경쓰이지 않는가?" 그래 나는 확실히 신경쓰인다.

 

4. 문화가 없다.

 

나는 일찌기 호남인이 문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화가나서 한 말이다. 최근들어 호남문화가 점차 몰락하여, 한철불성강(恨鐵不成鋼)의 점이 있다. 상해인을 참고로 한다면, 호남인들은 '거유(巨儒)'라고 할만하다. 호남은 어쨌뜬 수천년의 두터운 문화침전이 있다. 상해와같은 외래도시는 머리는 무겁고 다리는 가벼워 깊이가 없다. 미국인처럼 이,삼백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자기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마치 저우쉰(周迅)이 남자같은 목소리로 불렀던 것처럼 "너는 떠다녀라 떠다녀라, 나는 흔들린다 흔들린다. 뿌리없는 물풀" 뿌리가 상당히 천박하다. 근본적으로 무슨 문화의 바탕이랄 것이 없다. 그래서 한한과 위추위 같은 가장 문화가 없는 두 사람이 당당하게 상해의 가장 저명한 '문화인'으로 자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해의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명함이 되었다. 정말 방법이 없다.

 

상해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 어떤 이야기에 의하면 한 외국인이 두 상해인이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 좋은 뜻에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갔다. 원래 두 상해인들은 그저 조용히 얘기하는 중이었다. 이 이야기는 약간은 상해인들을 욕하는 의미가 있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상해인들의 내심이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의 기반이 없으므로, 내심이 공허하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상해인들은 죽어라고 소리높이는 와중에 안전감을 느끼는 것이다.

 

상해인들이 문화가 없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천박하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상해인들은 유명한 세리안(勢利眼, 권세와 이익을 쫓는 사람)이고, 유물질론(唯物質論)이다. 상해인은 화폐에 대하여 일종의 천연적인 애정을 지니고 있다. 상해여인은 매일 집에서 씨레기만두를 먹을지언정 LV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야 한다. 정말 존경스럽고 눈물이 난다.

 

오만한 상해인들아, 언제나 너희들의 고귀하지도 않은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