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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지리

추악한 광동인

by 중은우시 2008. 10. 24.

글: 장일일(張一一)

 

나는 앞에서 <<추악한 호남인>>, <<추악한 북경인>>과 <<추악한 상해인>>을 썼다. 그리하여 무수히 날아오는 암기와 돌맹이를 맞았다. 장일일 선생은 정절방도 세우고 싶고, 만수무강도 하고 싶다. 원래 그만두고 돌아가려고 했다. 바로 '사불과삼(事不過三)'이라는 말이다. 이 세편의 글만으로도 벌써 2억명 정도를 원수로 만들었다. 다시 계속 써내려간다면 아마도 13억 중국인들 모두를 원수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일일 선생이 아무리 무예가 고강하더라도 아마 위로는 기왓장 하나 없고 아래로는 송곳 꽂을 자리도 없는 미묘한 지경에 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장일일 선생은 '명철보신(明哲保身)'하고 '시신이라도 온전히 수습(收拾全屍)'하려는 악착같은 마음으로, 잠시 더이상 지속하지 못했다. 저녁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돌연 아주 성의있게 진정을 담아 보내온 독자의 서신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일아, 너의 추악시리즈는 어째서 계속되지 않는 거냐. 나는 그들에게 걱정스러워서 이렇게 회신했다: 나는 큰 뜻을 아직 다 펴지도 못했다. 그리고 해야할 혁명사업이 아직도 많다. 왕발선생이나 이하선생처럼 요절하고 싶지는 않다. 독자들은 바로 회신을 보내왔다: 일일아, 생명은 고귀하다 그러나 양심은 더욱 가치있다. 너는 현재 어쨌든 80후의 저명작가가 아니냐. 그저 건드리다 마는 것은 지식분자의 도의나 작가의 양식이 아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머리가 시원해지고 한대 얻어맞은 것같은 것을 느꼈다. 갑자기 용감해지고 강해졌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라는 이 글 <<추악한 광동인>>을 쓰게 되었다.

 

1. 못생겼다.

 

광동인들은 키가 보편적으로 크지 않고, 얼굴이 누렇고, 몸이 마르고, 피부는 검고, 머리카락은 매끄럽지 못하다. 이는 영남사람의 주요한 특징이다. 광동여인은 일반적으로 가슴이 편평하여, 말이 뛰어놀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일단 내지에서 밀고 내려오는 약간의 용모와 파도처럼 튀어나온 풍부한 가슴과 풍성한 엉덩이를 가진 여인이 나타나면 바로 진세가 흩어지고, 산사태를 맞은 듯이 무너져 버린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한탄을 하고, 달을 보고 한숨짓는다. 눈을 들어 자기 집안의 추악한 남자를 보고, 털이 숭숭한 추악한 곰발바닥을 내밀어, 굶은 개가 먹이를 찾는 것처럼 추악하게 덮쳐간다.

 

2. 축첩현상

 

축첩은 광동에서 유행이다. 졸부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동한시대 광무제 유수는 미모의 누나 호양공주를 대사공 송홍에게 시집보냈다. 송홍은 '빈천지지는 잊을 수 없고, 조강지처는 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해서 후세게 미담으로 남았고, 백세에 전해진다. 광동인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졸부들은 한꺼번에 수십만 혹은 백만이상을 써서 첩들에게 집과 차를 사준다. 그러나 집안에서 전전긍긍 남편을 모시고 자식을 기른 못생긴 부인에게는 인색하다. 지분 몇개를 사주거나 양말 하나를 사주는 것마저도. 양심은 모두 개에게 줘버렸나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원부(怨婦)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의 대답은 전무후무하게 일치하게 될 것이다.

 

3. 먹는데 열중한다.

 

<<서유기>>는 광동에서 시청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광동인들이 하나같이 저팔계선생처럼 먹보이기 때문이다. 광동말에 "배조천(背朝天)하는 것이 아니면 다 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표준말로 바꾸면, "먹고 죽지 않는 것이면 다 먹는다". 광동인들을 보양식을 좋아한다. '보(補)'라는 말만 들어가면 하늘을 나는 것이건, 땅 위를 기어가는 것이건, 바닷 속을 헤엄치는 것이건 아니면 화장실에서 꺼집어낸 것이건 모조리 광동인들의 쥐눈은 빛을 내고, 까마귀입에는 침이 쉬지않고 흐를 것이다. 먹는 것을 제외하고, 광동인은 인류와 다른 공동언어가 거의 없다. 한때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광동인들은 영아까지도 먹는다. 장일일 선생은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뜻을 짐작해보았다. 당시에는 정말 이 말을 반신반의했다.

 

4. 경박하다

 

중국에서 가장 할일없는 양대 '자가발전대왕'인 등건국(鄧建國)과 송조덕(宋祖德)이 모두 광동에 살고 있다. 이는 범인과 장물을 다 확보한 것처럼 가장 좋은 증명이다. 광공은 유명한 대학이 거의 없다. 광동인의 자녀는 소학교에서 부터 소상품을 전매하면서 이익을 보아 챙긴다. 물질에 대한 미련, 경박한 정도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만하다. 광동인의 학력은 대체로 높지 않다. 문화수준도 아주 낮다. 많은 광동인의 아이는 심지어 의무교육의 9년도 채우지 못한다. 그리고는 홍콩달러, 대만달러를 벌러 떠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일찌기 이런 개사한 가사가 불리워졌다: "광동인의 GDP는 어린이노동자의 피땀과 눈물을 포함하고 있다"

 

5. 사기꾼천지

 

광동의 껍데기회사는 껍데기보다 많다. 장일일 선생과 같은 청년준재가 옛날에 광동에서 속옷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발가벗길뻔한 적이 있다. 광동인의 사기환경의 순박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일일선생은 당년에 '내가 지옥을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을 들어가려'는 세상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몸소 사기를 시험해보았다. 더 많은 이유라면 후세인들에게 경종을 주기 위한 것이지, 나 장일일 선생의 재주가 부족해서는 아니다. 여러 독자분들과 광동분들은 본인을 비웃지 말기 바란다.

 

6. 큰 뜻을 품지 않는다.

 

광동인, 특히 80후, 90후의 아이들은 대부분 목표와 이상이 결핍되어 있다. 하루종일 그저 시간만 때울 뿐 아예 학업이나 전도에 대하여 생각지 않는다. 하루종일 먹는 것만 생각하고, 그 후에는 계집질이나 하고, 노래공연을 보고, 운동경기를 구경한다.(욕을 그렇게 얻어먹는 중국축구가 아직도 살아남은 것은 광동인들의 공이 크다) 광동인들은 매일 보약을 먹는다. 그저 청춘을 허송세월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무슨 미래의 설계나 생명의 초조함은 없다. 확실히 독립사고능력과 정신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하여, 광동의 서기인 왕양은 당초에 부임할 때 이렇게 말했다: "광동의 경제실격은 계속 성장한다. 개혁의식은 그러나 쇠퇴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경쟁력도 하락한다. 원래의 장점은 이미 존재하지 않거나 분명하지 않다" 중국근현대사상 "광동인들은 말을 하고, 강소절강인들은 돈을 내며, 호남인들은 피를 뿌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보면, 광동인들은 말을 한다는 이 전통적인 장점마저도 점차 소멸하고 있다. <<남방주말>>등의 옛 영광은 더 이상 없다는 것도 이런 문제를 설명해준다.

 

7. 인정이 메말랐다.

 

어느 이야기에, 광동의 한 여자가 40도의 고열인데, 이 여자는 광동인의 장점을 다 갖추고 있었다. 가슴에 큰 뜻을 품은 것도 아니고, 못생겼고, 경박한 먹보였다. 자연히 병치료할 돈이 없었다. 그리하여 친어머니를 찾아가서 100위안의 돈을 빌려 몇 개의 돌팔이 고약을 사서 열을 내리게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친어머니는 그녀에게 먼저 차용증을 쓰게 한 후에 돈을 주었다. 가련한 이 출가외인인 딸, 내다버린 물은 이미 펜을 들 힘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어찌 종이위에 글씨까지 쓰겠는가? 게다가 마음이 아팠고, 일시에 화가 끓어올라 바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약간 과장되었지만, 그러나 일부 광동인간의 인정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장일일 선생은 직접적으로 체험한 바 있다. 장일일 선생이 예전에 낡은 기타를 메고 광동을 유랑할 때, 쉽제 않게 약간의 돈을 모았었는데, 한 잘 생긴 광동놈에게 속아서 겨우 OK표 팬티 하나만 남게 되었다. 모든 일에 희망을 잃고 있을 때, 마침 주머니에서 5마오짜리 동전이 하나 나왔다. 엄청난 보물이 하늘에서 떨어진 기분이었다. 더 이상 체면을 지키느라 고생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심천의 사촌누나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 이 개같은 광동의 공중전화는 1위안짜리가 필요했다. 장일일 선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전화부스에서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장씨집안 11대를 내려오는 보물을 그 자에게 맡기고 5마오를 빌렸다. 거기에 원래의 5마오를 더했다. 광동놈은 손발을 움직이며 한참을 마음으로 입으로 계산하더니 5 더하기 5는 10이라고 하여 1위안짜리로 내주어서, 비로소 전화를 걸어 백리밖의 친애하는 사촌누나에게 구해달라고 할 수 있었다. 광동인이 나에게 내려준 이 아름다운 기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추악한 광동인>>은 원래 더 길게 쓰려고 했는데, 듣기에 광동인은 모두 황비홍 선생처름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는 말을 들었다. 장일일 선생은 아직까지 결혼을 한번도 하지 못했으니,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