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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이론

<<이십사사>>를 쓴 사가들은 왜 황당한가?

by 중은우시 2009. 8. 24.

글: 장방(張放)

 

문인들은 중국의 수천년간 역사의 강물 속에서, 한번도 진정으로 독립한 적이 없다. 항상 어용의 도구일 뿐이었다. 특히 역사를 쓰는 이들은 더더구나 천백년이래로 제왕들의 후안무치한 붓이었고, 역사적 이야기를 마음대로 만들어내며, 조주위학(助紂爲虐)했다. 제왕들과 함께 민의를 강간하고, 대중을 우롱했다. 가장 악독한 점이라면, 그들은 뒤에 따라오는 일대 또 일대의 사가들에게 모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후세의 사가들이 제왕의 의도를 파악하여, 계속하여 역사를 두찬(杜纂)하여, 많은 우민들이 그들 제왕들은 원래부터 우민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고, 제왕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비막측한 천상이 묵묵히 그들의 나중에 황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고 알려준다. 그리하여 많은 우민들은 사실의 진상에서 멀어지게 되고, 세뇌를 당하고, 제왕들을 인식하게 되는데, 왜 제왕들이 자신들보다 위대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 수백명황제들이 시키는데로 하게 된다. 다음 왕조가 들어설 때까지

 

최근에 시간을 내서 역사쪽의 책을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고화(高華)가 쓴 560여쪽짜리 <<붉은 태양은 어떻게 솟아올랐는가?>>, 장정불(蔣廷)의 6만자가 되지 않는 <<중국근대사>>, 당덕강(唐德剛)의 <<민국전십년>>, 그리고 이십사사중에서 <<사기>>, <<구당서>>, <<신당서>>등을 골라서 읽어보았다. 일찌기 사실의 진상에서 멀어졌다는 느낌은 더욱 강렬해졌고, 세뇌받았다는 느낌도 더욱 강렬해졌으며, 제왕들이 왜 자신보다 위대한지의 이치에 대한 인식도 동시에 더욱 강렬해진 것같았다.

 

"정사(正史)"라고 불리우는 이십사사는 하나도 예외없이 제왕들이 노예화된 중국인들을 통치하는 최대의 사서이다. 그것은 거의 매번 '걸출한 인물'을 선전하는데 썼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정치적업적'을 지닌 황제는 일반인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한서>>에서는 한고조 유방을 얘기하면서, 생긴 모습이 농민같은 이 인물의 출생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스신화이야기가 울고갈 이야기를 꾸며냈다. 거기에서는 그의 모친이 어느 호숫가에서 쉬고 있는데,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데 꿈에서 신과 만났다. 그리하여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과 땅이 어두워졌다. 그때 유방의 부친이 앞으로 가서 보니, 교룡이 그의 처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 결과 오래지 않아 그의 처가 회임을 하고 나중에 유방이라고 불리우는 인물을 낳았다. 그렇다면 유방은 바로 교룡과 그의 어미가 교미하여 낳은 잡종이라는 말인가?

 

필자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이런 거의 문학창작같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정사'로 취급하여 연구하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한번 하는데 속아넘어갈 수는 있다. 그러나 여러번 거짓말을 하는데도 계속 속아넘어가준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멍청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왜 이들 제왕들은 일반인과 같게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자신을 잡종으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냐는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하여야만, 자신이 보통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고, 잡종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슨 특수한 사명을 띄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다시 <<수서>>를 보자. 양견이라는 자는 나중에 수나라의 고조가 된다. 역사의 시간은 앞으로 많이 흘러갔지만, 사관들의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름도 아주 평범한 양견의 탄생이랴기를 다시 날조해낸다: "모친 여씨가 대통7년 6월 계축일 밤에 고조를 풍우 반야사에서 낳았는데, 방안에 자기(紫氣)가 가득했다. 한 비구니가 하동에서 왔는데, 황제의 모친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아주 기이하다. 속세에 두어서는 아니된다." 유방보다 운이 좋은 것은 양견은 교룡의 정자를 받은 잡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출생한 후에 방안에 자기가 집안을 가득 메웠을 뿐이다. 그러나, 사관들은 억지로 여기에 비구니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비구니로 하여금 이 아이는 비범하며, 일반적인 집안에서 키워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룡의 이야기는 잊혀지지만, 신비한 비구니가 나중에 수고조가 되는 양견을 데리고 다른 집에가서 키우게 된다. 이렇게 하여 양견은 비구니에 의하여 길러진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기이하다. 고조의 모친은 자신의 아이를 안아보려고 하는데, 돌연 아이의 머리에서 뿔이 나오고, 온 몸에 비늘이 돋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즉시 자신의 아이를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비구니가 마침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는, 고심막측하게 예언한다: 아이를 놀라게 하였으니, 천하를 얻는 것이 늦어지겠다. 즉, 그는 황제가 되어야 할 시점에 황제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만, 이들 사관들이 양견의 얼굴에 어떻게 금칠을 하든, 그의 출생에 대하여 아무리 신비막측하고 해석되지 않는 현상을 덧붙여 놓더라도, 그의 이마 위에 다섯 개의 기둥같은 무늬가 나타나더라도, 그의 손애 '왕'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불문하고, 오늘날 그는 일찌감치 역사의 강물 속에서 역사의 먼지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필자는 때로는 생각해본다. 왜 원래 아주 평범하게 태어났던 사람들이, 자신을 천신의 대변인인 것처럼 꾸미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자신의 그 몇십년의 독재통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어느 왕조도 300년을 넘어간 적이 없다).  아마도, 황제가 된 자들은 이천년이래로, 겨우 수백명 뿐이다. 이 몇 백명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득이 붓을 놀리는 소위 '사관' - 실제로는 조주위학하는 왕팔단들 - 의 도움을 받게 되며, 자시의 통치에 대하여 정종(正宗)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농교성졸(弄巧成拙)이라고, 한 왕조가 다른 왕조를 대체하게 되면, 교룡과 사람이 교배한 잡종이나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비구니에게 길러진 또 다른 고조가 자신의 왕조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같이 관사(官史)라고 불리우는 체제와 범본은 후대의 통치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남긴다. 그들은 속속 이 모델을 본받는다. 그리고 계속하여 사관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더욱 황당하고 기이한 출생이랴기를 날조하도록 요구한다.

 

당나라에 이르러, 교룡과 사람이 교배한 잡종은 나타나지 않는다. 비구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신당서>>의 편찬자들은 이렇게 썼다: "인공이 고조를 장안에서 낳았는데, 몸에 젖이 3개였다" 오호, 이는 정말 상상력이 한단계 더 승화한 것이다.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이 당고조의 몸에 젖이 3개 있었다는 것을. 만일 오늘날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뉴스는 전국민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게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분명히 뚱뚱한 것을 아름답게 생각했던 당나라때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당고조에게 젖이 몇개이냐보다는, 자신의 여자가 충분히 뚱뚱한지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시간의 강물은 다시금 교룡과 인간의 잡종인 유방의 유해, 머리에 뿔이 나고 몸에는 비늘이 났던 양견의 유해, 그리고 세개의 유방을 가졌던 당고조의 유해를 먹어삼키고, 이제 송나라의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시간은 항상 앞으로 흘러가고, 사람의 사상은 앞으로 전진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송나라의 태조에 대하여 사관들은 여전히 송태조 출생시의 괴이한 천상과 환경을 날조하고 있다. "모친 두씨가 당나라 천성2년, 낙양 협마영에서 태어난다. 붉은 빛(赤光)이 방을 휘감았고, 기이한 향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몸에는 금색이 나고 삼일간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몸에 금색을 나타내는 동시에 출생시 방안에 붉은 빛이 충만했다. 아마도 사관들은 위에서 본 '자기"에 영감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자색을 붉은 색으로 바꾸었다. 송태조에 대하여 이 정도만 묘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리하여 더욱 대단한 이야기도 꾸며넣는다: "일찌기 길들이지 않은 말을 시험해본 적이 있는데, 고삐를 매지 않았다. 말은 성벽의 기울어진 길로 부닥쳐 갔다. 송태조의 머리에 부딛쳐서 문미(門楣)가 부서졌따. 사람들은 머리가 깨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송태조는 천천히 일어나서 다시 말을 쫓아가서 말에 올라탔다. 송태조는 상처 하나 없었다. 이것은 위의 몇몇 고조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이게 어떤 사람인가? 결국 신이 보낸 금신불패(金身不敗)의 태조라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오늘날의 사람은 그의 부서지지 않는 머리를 더 이상 찾을 수가 없고, 더더구나 금신불패의 태조의 몸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시간이 다시 흘러 명나라가 되었다. 사관들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심해졌다. 명태조 주원장은 거지출신인데, 그를 하늘 위로 띄워주었다. <<명사>>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친 진씨가 막 주원장을 잉태했을 때, 꿈에서 신선이 약을 한 알 주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빛이 났다. 그것을 삼켰다. 꿈애서 깨어나보니 입가에 향기가 남아 있었다. 분만할 때, 붉은 빛이 집안에 가득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신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양심없는 사관은 계속 그들의 창조려과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때부터, 밤에 여러번 빛이 나타났다. 이웃들이 보고는 놀라고 두려워했다. 불이 난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매번 불을 끄러 달려왔다. 그러나 도착해보면 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이십사사의 "정사" 속에는 너무 나 많은 헛소리같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목적은 바로 이런 선전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한가지 신비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이 제왕은 비범한 사람이다. 이 제왕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저 이런 신과 같은 제왕의 통치하에서만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보게 된 것은 수천년동안 어용의 '사관들'은 이러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백성들을 세뇌시키고, 통치자를 보호해주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필자는 시간이 있으면 중국역사(현대사 포함)를 읽고 있다. 여기서 보는 것은, 거의 모든 제왕들과 재상들의 추악하기 그지없는 입과 얼굴이다. 남경대학의 역사학과에서 쓴 역사연구의 역작 <<붉은 태양은 어떻게 솟아올랐는가>>를 쓴 고화교수가 그 책의 후기에서 기술한 바와 같아, 사실 역사서적을 읽는 과정은, 정말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내는 과정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구름과 안개가 진상을 감추면서 둘러싸고 있을 때, 짧은 수십년의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이 운무를 걷어내고, 진상을 향하여 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확실히 아주 힘들고 골치아픈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고화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한걸음 한걸음 역사의 진상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운무를 걷어내기 시작했고, 독자들을 데리고, 더욱 가깝게 아주 잔혹하지만 절대적으로 진실인 역사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이후의 사관들은 더 이상 이십사사의 사관들과 같은 행렬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중국의 현대사사적에서 전설은 적게 되기를 바란다. 교룡과 인간의 잡종이라는 류의 이야기는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사실진상에 더욱 가까운 사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