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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분석/중국역사의 이론

계선림(季羨林)의 황제론(皇帝論)

by 중은우시 2009. 12. 21.

글: 계선림(季羨林)

 

역사상, 중국에는 많은 왕조가 있고, 왕조마다 모두 약간 명의 황제들이 있었다. 이들 "천자(天子)"들은 역사를 쓰거나, 역사를 읽는 자들에게는 쓰지 않을수도 읽지 않을수도 없는 것이다. 그중에 일부는 "성군(聖君)" "영주(英主)"로 칭해지면서, 그들의 문치무공은 역사책에 그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있다. 또한 일부는 "혼군(昏君)", "폭군(暴君)"으로 불리면서, 그들의 포악하고 부패한 행위로 인하여 더러운 이름을 지금까지 남기고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다만, "황제"라는 것의 본질에 대하여, 아무도 감히 말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아주 유감이라고 생각해왔다. 비록 본인이 불민하지만, 이 빈틈을 메워보고자 한다.

 

먼저 나의 "이론적 기초"를 밝혀야겠다. 얼마전에 나는 신해혁명전에 출판한 책을 읽어봤는데, 제목이 <<후흑학(厚黑學)>>이었다. 나는 그의 의견에 아주 동의한다. 나는 단지 "후(厚)" "흑(黑)"의 두 글자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본다. 나는 거기에 "대(大)"자를 추가시켜야 한다고 본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얼굴은 두껍고, 뱃속은 시커멓고, 담량은 커야 한다"

 

현재 나는 이 "이론"을 가지고 역대의 황제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내 생각에 황제는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개국지군(開國之君), 수업지군(守業之君), 망국지군(亡國之君).

 

개국지군은 중국역사상 단 두 명만이 존재했던 '마상황제(馬上皇帝)'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유방이고, 다른 하나는 주원장이다. 두 사람은 모두 지방깡패 출신이다. 의거를 일으킬 때, 곁에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깡패인 형제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들과 동급으로 자리했다. 전쟁과정에서, 점점 한 사람이 두드러지고, 그가 우두머리가 된다. 형제들은 당연히 그의 지시, 지휘에 따른다. 일단 의거에서 승리하면, 이 우두머리는 보좌에 올라, 황제가 된다. 처음에 금란전에서는 깡패기질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반드시 손숙통(孫叔通)처럼 '일을 도와주거나(幇忙)', '노는 것을 도와주는(幇閑)' 자들이 나타나서 예의범절을 정한다. 원래의 형제들은 '정풍'을 거쳐 말을 잘 듣고, 삼배구고를 하고 만세를 세번 외치게 되며,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이 깡패우두머리는 황제자리에 앉고난 이후, 반드시 각종 핑계를 대어서 다른 깡패를 살륙한다. 자손을 위하여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문자옥(文字獄)을 대거 일으켜서, 지식인들을 죽여버린다. 이것도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 후에 편안하게 '용어빈천(龍御賓天, 죽는다는 뜻임)"하고 무슨 '조(祖)'가 된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후' '흑' '대'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이 황제위를 물려받는데, 왕왕 아주 잔혹하고 격렬한 궁중투쟁을 거친다. 그 후에야 비로소 안정된다. 이들은 그들의 깡패선조와 달리, 높은 담장 안의 궁궐에서 자라면서, 궁녀와 환관의 손에 양육되고, 바깥의 사회나 백성의 상황을 잘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예 알지 못한다. 혹은 알아도 극히 조금을 안다. 그리하여 사마충과 같이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어떤 수성의 황제는 거의 백치에 가까웠다. 인민을 통치하고,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일을 도와주거나' '노는 것을 도와주는' 대신들에게 모조리 맡겨버린다. 나중에는, 혹은 길고 혹은 짧은 기간이 지난 후, 이런 조정이 반드시 궤멸한다. 이는 불변의 법칙이다. 중국역사상 왕조교체가 이루어지는 근본원인은 여기에 있다.

 

이들 수성의 황제들 중에서도 역시 '후' '흑' '대'의 문제가 있다. 왕위를 쟁탈하기 위하여는 결국 이 세 가지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 황제에 이르러서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여러해동안 쌓인 적폐가 있어, 그 자신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전체 조정통치기구는 이미 병이 뼛속까지 들었다. '얼굴을 두껍게 하고싶고, 뱃속을 시커멓게 하고 싶고, 담을 크게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이미 만회할 여지가 없다. 그저 청의소모(靑衣小帽)를 걸치고 투항하거나 매산(煤山)에 목매다는 수밖에 없다.

 

중국역사는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