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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부호

대만최고갑부 왕용칭(王永慶)의 유산분쟁

by 중은우시 2009. 7. 16.

글: 진왕(秦旺)

 

유서를 남기지 않은 왕용칭의 방대한 유산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가족들에게 큰 문제를 던져주었다. 비록 이전부터 매체에서 유산을 둘러싼 다툼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각 당사자들은 입을 꽉 다물고 암중으로만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장남인 왕원양(王文洋)이 드디어 강경한 태도로 폭탄의 뇌관을 건드렸다.

 

금년 5월 13일, 왕원양은 미국 뉴저지주법원에 왕용칭의 유산총액을 공개하고, 자신을 유산관리인으로 임명해줄 것을 신청했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까지 관리인을 맡겠다고 나선 것은 그가 왕용칭의 사후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하여 사실과 다르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부친의 사망시간, 유산의 총액, 그리고 유산을 신탁처리한 방식 및 교부한 관리인등에 모두 이견을 제기했다.

 

왕원양의 이런 조치는 "지분을 놓고 다투지, 빈껍대기 이사직은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어떤 사람은 왕원양이 '왕자의 복수'를 꾀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일찌기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에서 축출된 바 있는 플레이보이이다. 14년전에 뤼안니(呂安)와 사랑에 빠지면서 강경한 부친 왕용칭은 친히 그를 '후계자'의 자리에서 쫓아내 버렸었다. 이것은 그의 일생에서 큰 상처가 되었다. 지금, 그는 왕용칭의 사후에 기세를 몰아서 되돌아오려고 한다. 결국 한바탕 재벌집안의 내부싸움이 시작될 태세이다.

 

사실상, 부친의 영당앞에서도 왕원상은 재산을 다투겠다는 결심을 전혀 숨기지 않았었다. 고별식때도 그가 손으로 민 것은 자신의 모친이 아니라, 큰어머니인 왕웨란(王月蘭)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왕원상의 첫번째 발걸음은 아니다. 2005년 8월 2일, 왕용칭이 아직 살아있을 때, 왕왕양은 이미 나중에 부친의 유산을 다투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해서, 왕용칭의 유일한 합법적 부인인 왕웨란으로부터 유산처리에 대한 수권을 받아놓았었다.

 

그렇지만 자식을 아는데는 부친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왕용칭은 훨씬 먼저 조치를 취했다. 왕용칭은 모든 재산을 신탁에 맡기기로 했고, 영원해 신탁을 청산해서 나눠가져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정했다. 후대의 자녀들은 왕원양을 포함해서 유산에서 한푼의 돈도 꺼내갈 수가 없다. 이는 유산을 공익에 맡긴 것과 같다. 그리고 그가 살아생전에 희망했던, "백년불분가(百年不分家)"의 뜻이다.

 

방대한 가족재산은 왕용칭의 세심한 계획하에,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신탁에 교부되었다. 신탁의 관리를 맡은 자녀중에서 왕원양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신탁기금의 관리인을 보면 왕용칭의 두 가지 생각을 알 수 있다: 첫째, 두 딸과 두 조카에게 전해 준다. 신뢰가 중요하지 혈연의 가까움은 따지지 않았다. 4명의 관리인 중에는 동생 왕용자이(王永在)의 일맥인 왕원얜(王文淵), 왕원차오(王文潮)를, 그리고 왕용칭의 친자녀중에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 있었고 신뢰할 수 있는 셋째부인의 딸인 왕뤼화(王瑞華), 왕뤼위(王瑞瑜)를 선택했다. 둘째, 지분은 더욱 집중시켰다. 방대한 미국자산을 이용하여 포모사플라스틱의 4개주요기업지분을 통제하게 하여 더더욱 소수인에게 집중시켰다.

 

2,648억대만달러의 유산은 타이페이101빌딩을 4개는 지을 수 있는 돈이고, 보잉747비행기를 44대 살 수 있는 돈이다. 왕원양의 마음 속의 분노의 불길을 더욱 부추긴 것은, 비록 손안에 큰어머니 왕웨란이라는 에이스카드를 들고는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왕원양이 아무리 머리를 써도 부친 왕용칭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왕용칭의 사후에도 왕원양은 여전히 예전에 자신을 '후계자'의 지위에서 쫓아낸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후계자'의 자리를 잃게 되자, 셋째부인과 그 딸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왕원양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포모사 플라스틱에서 쫓겨난 것이 셋쩨부인이 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마음 속으로 불만이 남아 있다.

 

현재, 그는 예전에 받았던 치욕과 불공정함을 모조리 셋째부인에게 받아내려고 한다. 그리하여, 부친과 마찬가지로 고집스러운 성격을 지닌 왕원양은 절대로 쉽게 이 '가족전쟁'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는 왕원양이 반년의 시간을 들여서 부친의 유산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한 데서도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왕원양이 판을 뒤집고 싶어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시 결정을 할 때 왕용칭의 정신이 혼미했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부친의 당시 결정을 뒤집기는 아주 어렵다. 이외에 둘째숙부인 왕용자이가 아직도 건재하여, 이것도 큰 장애이다. 큰형과 함께 포모사 플라스틱을 일군 왕용자이가 가진 가족내에서의 영향력은 '태자'인 왕원양보다 훨씬 크다. 그의 두 아들은 바로 유산의 관리인이다. 그 본인이 여러번 화를 내면서 말한 바 있다: 내가 살아있는데, 누구든지 유산을 나누자고 싸운다면, 그것은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다. 셋째부인측도 그저 앉아서 공격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딸인 왕뤼화는 이미 미국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왕원양을 유산관리인으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원래 5월 19일에 열릴 예정이던 심리는 1달이 연기되었다.

 

결국 왕원양의 복수는 이번 유산다툼을 '백해무익'한 지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아마도 변호사들의 배만 불리고, 변호사들이 큰 돈을 벌지만, 왕원양은 한푼도 건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