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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부호

양혜연(楊惠姸): 최고부자의 면목

by 중은우시 2008. 12. 28.

글: 용비(龍飛)

 

현실은 무대보다 더욱 극적이고, 더욱 상상력에 도전하게 한다.

 

"사실 그녀에 대하여는 아무런 인상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 유학생들중에서 그녀는 조금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한 동창은 이렇게 양혜연을 평가한다. 동창들이 보기에, 이 한때의 중국최고부자는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수업때는 머리를 쳐박고 노트필기에 열중했으며, 교실밖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기도 힘들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많은 부담을 받아서 그녀는 말이없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중국인들의 눌언민행(訥言敏行, 말은 느리고 행동은 빠르게)이라는 전통을 물려받아서이니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그녀는 원래 부끄럼이 많은 이웃집 아가씨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내성적인 양씨집안 둘째딸이 최근 2년간 중국대륙부호방에서 이름이 드높았다. 그때, 막 상장된 벽계원(碧桂園)은 하룻만에 이 소녀를 "대륙최고부자"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2008년, 벽계원의 주가가 최고로 올랐을 때는 포브스 전세계부호랭킹에서 9위를 차지한 바 있었다; 미국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양혜연의 개인재산이 이미 소로스,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미디어황제 머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일찌기 천억위안을 넘었던 재산은 90%가 사라졌고, 최고부자의 칭호도 이미 날아갔다.

 

양혜연은 그래도 외롭지는 않다. 일찌기 2007년에 잘나갔던 부동산거부들이 모조리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상해의 부동산거부 허영무(許榮茂)는 재산이 460억위안이나 날라갔다; 또 다른 부동산부호인 곽광창(郭廣昌)은 314억위안이나 재산이 감소했다; 중유치지의 오너인 장송교(張松橋)는 자산의 98%가 사라져서, 2007년에 포브스 중국부호랭킹 26위에 올랐으나, 2008년에는 아예 사라졌다. 호륜의 통계에 따르면, 금년의 재산감소가 가장 많은 6명중에서 5명이 부동산부호이다.

 

실패의 근원을 알려면 아마도 먼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때가 얼마나좋았는지는 상상도 가지 않는다." 벽계원을 떠난 어느 고위경영진의 말이다. 회사 자체의 경영에는 무슨 혁신이나 개량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해외에서 상장회사 하나를 활용하여 홍콩에 우회상장한 것이다. 그랬더니, "무수한 외국자본이 쫓아왔다."

 

2007년, 벽계원과 함/게 홍콩에 상장하여 졸지에 등용문을 뛰어오른 잉어가 되고, 탈태환골한 대륙기업이 10개는 넘는다. IPO자금조달액이 수십억홍콩달러에서 수백억홍콩달러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규모는 역대이래 최대였다. 지명도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는 SOHO중국, 원양지산, 오원집단등이었다. 업계내의 비유에 따르면, "국제투자자는 중국의 성공한 부동산상들에게 보너스를 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의 미래경제발전전망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미래 부동산시장의 성장공간을 좋게 보았다.

 

당연히 모든 것은 댓가가 따른다. 외자는 중국의 생산요소(토지)의 부가가치를 나누어가졌다. 자본가들에게 회사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믿게 하거나, 기관투자자들에게 그들의 평가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상장후에 더 많이 토지를 끌어모아서, 대규모의 토지를 확보했다.

 

이들 좋았던 시절을 상상해보면, 자본이 통제하는 둑과 같다. 둑의 한쪽은 비옥한 토지이고, 다른 한쪽은 풍부한 수원(水源)이다. 물은 이 옥토로 가고 싶어했고, 풍성한 즐거움을 나눠갖고자 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 둑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리고 홍콩상장은 바로 이 둑의 한 갑문이다. 자금조달채널은 국외에서 국내로 향하여 부동산을 경영하는 기업으로 향했다. 외국투자자들이 보기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끊이지 않는 자본은 모두 이 갑문을 통하여 진입하고자 했다: "모든 사람이 너에게 자기 돈을 쓰라고 달려들었다." 한 홍콩상장한지 여러해된 국내부동산업체는 2006년과 2007년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벽계원은 이를 틈타서 크게 성장했다. 원래의 경영모델은 도시농촌의 접경지에 대거 부동산을 개발하는 것이다. 토지확보능력이 아주뛰어났는데, 여기에 해외자금의 도움을 받아, 양혜연의 부친 양국강(楊國强)은 이 분야의 능력을 극도로 발휘했다. 벽계원은 "전국최대지주"의 길을 걸었다. 개략적인 통계에 따르면, 상장한지 반년내에, 전국토지보유량이 놀라울 정도인 5400만평방미터(건축가능면적)에 달했다. 매번 양국강이 토지를 확보했다고 할 때마다, 벽계원의 주식가격은 다시 한번 뛰어 올랐다.

 

업계의 모든 인사들은 토지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다(혹은 토지가 외자에 대하여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그후에는 토지를 확보하는 전쟁이 벌어진다. "지왕(地王)"이 전국각지에 나타난다. 불산(佛山)과 같은 3선도시에도 근 100억위안의 "지왕"이 나타난다.

 

홍콩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부동산기업의 풍부한 자금력은 국내상장(혹은 미상장)의 개발상들이 부러워하여 마지 않는 것이었다. 네가 장량의 계책이 있다면, 나는 담장을 넘을 사다리가 있다. 중국특색의 회색거래가 대거 시작된 것이다. 일부 국유자본배경의 대형부동산기업도 '일급개발'의 명목으로 대거 땅을 확보한다. 한번 확보하면 십수만평방킬로미터였다. 상해에서 상장기업을 몇 개 가지고 있는 국유기업집단은 토지확보면적이 500만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이것은 거의 북경시 절반면적에 해당한다.

 

지방정부도 좋아졌다. 원래 아무런 쓸모없던 토지가 돌연 가격이 쑥쑥 솟은 것이다. "토지재정"은 지방정부로 하여금 대규모 인프라건설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대외투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증가시켰다.

 

벽계원의 목소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컸다. "나는 현위서기와 교류가 가장 잘된다" 양국강의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직접 토지경매시장에서 가격을 올리지 않고, 도시농촌결합부에서 "현위서기와의 교류"를 통하여 하나하나 싼 값에 토지를 확보했다. 바로 이런 특수한 운영능력으로, 벽계원이 외자의 인기를 끈 것이다. 그리고 양혜연이 한때 세계 9위의 부자가 되었다.

 

토지가격의 상승은 바로 주택가격의 상승을 불러왔다. 매월 두 자리수의 백분비로 올랐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의 원성도 올라가고, 고위층들도 걱정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정책조정으로 부동산은 겨울에 들어간다. 토지통제외에 중앙은 '둑의 갑문'을 조였다. 2008년초, 홍콩에 상장된 부동산업체가 대륙으로 가져가는 자금에 제한을 받는다. 국외에서 움직이는 외자는 이런 소식을 들었다.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틈을 찾는 것이 외자의 주요전략이 되어 버린다.

 

형세의 급격한 변동은 절대다수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2008년, 벽계원이건, 부동산업계이건, 한 해내내 계속된 것은 "하락"이다.

 

대규모의 정책조정은 부동산업체의 "목"을 졸랐다. 자금조달은 업계의 숨통이다. 옛날에 토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부동산상들의 평균부채율은 70%에 달했다. 은행대출을 조으자, 바로 부동산업체의 유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곧이어 부동산소비대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자 부동산에 대한 수요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바로 연초에, 부동산개발상들의 보편적인 태도는 그래도 느낌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한바탕 봄비와 같다(一切不過一場春雨)" 모 부동산기업 오너가 개인적으로 한 말이다. "은행대출을 조른다고? 그러면 우리가 직접 외국자본과 합작하면 된다."

 

일부 채널을 통하여, 일부 외자기금이 국내부동산으로 유입되었다. 이들 기금은 국내에서 부동산을 개발할 권리가 없다. 그래서 국내부동산업체와 결합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들 프로젝트에 우리는 겨우 10%의 지분을 점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동산가격조정을 걱정하지 않는다." 한 부동산기업 오너는 이렇게 답변했다.

 

벽계원의 인식도 이와 같았다. 이전에 그들은 국제투자은행을 통하여 5억달러의 전환사채를 발행하여, 모자라는 개발자금에 충당했다. 비록 주가는 계속 하락하지만, 양국강은 이것이 그들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양국강은 다른 업종으로의 확장을 시도했다. 한때는 양국강이 이미 TVB와 인수문제에 대한 협상을 끝냈다는 말이 나왔다. 시장에는 또한 양혜연의 남편이 다른 회사를 별도로 만들어 에너지분야에 뛰어들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국제금융쓰나미가 도래하면서, 현세는 급전직하한다. "대거 빠져나갔다"  외국자본은 계속하여 국내부동산주에서 빠져나갔다. 벽계원의 주가는 마치 설사약을 먹은 것과 같았다. 양혜연의 재산은 계속 줄어들었다. 벽계원 내부의 주주간의 갈등도 점차 두드러졌다.

 

이제 양국강 부녀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초에 채권을 발행할 때 서명한 "도박계약"은 벽계원으로 하여금 무거운 장부상 채무를 떠안게 했다. 거대한 채무는 다시한번 주가급락을 가져왔다. 1년도 되지 않아. 벽계원의 주가는 14.18홍콩달러에서 1.10홍콩달러로 급락했다. 양국강을 따라서 사업을 일으켰던 옛날 창업동지들도 벽계원이 가장 위급할 때 계속 주식을 팔았다. 최대주주인 양이주(楊貳珠)는 3억주이상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이때의 주가는 이미 1홍콩달러정도였다. 시장은 벽계원의 경영상황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다시 하락했다. 그리하여, 이전의 최고부자는 자산이 90%나 줄어들었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부동산상장기업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