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경제/중국의 부호

라이창싱(賴昌星)의 카나다에서의 생활

by 중은우시 2009. 3. 1.

 

 

글: 여진평(黎津平)

 

라이창싱, 낯익은 이름이면서, 낯선 인물이다.

 

1999년 4월, 중공중앙 기율검사위원회 감찰부는 관련부서에서 보내온 고발장을 받았다. 고발장에는 샤먼(廈門) 웬화(遠華)그룹 라이창싱등이 세관관리부서와 결탁하여, 대량으로 불법밀수를 해왔다는 범죄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고발장은 중앙지도자의 관심을 끌었다.

 

1999년 4월 20일, 중공중앙지도자는 지시를 통하여 해관을 중심으로 중앙기율검사조직이 협조하여 이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라고 한다. 1999년 8월 18일, 사건담당자들이 정식으로 샤먼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사건처리특별팀이 샤먼에 내려가기 5일전에, 즉 1999년 8월 13일에 샤먼 웬화그룹의 대형밀수사건 주범인 라이창싱은 처자식을 데리고 홍콩을 거쳐 카나다로 도망쳐버렸다.

 

라이창싱은 카나다에 그 후 10년가까이 머물게 된다. 이 10년동안, 중국정부의 지명수배를 받고, 카나다정부의 송환위기에 처했던 대형경제사범은 카나다 사법체계의 비호하에 갈수록 더욱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카나다에서 취업허가(Work Permit)까지 받았다. 라이창싱은 최근에 관련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외의 여론이 들썩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첫번째 반응은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라이창싱은 카나다에 이민도 아니고, 난민도 아니며, 특수인재도 아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국제적인 지명수배를 받고 있고, 또한 카나다정부에서 강제출국대상으로 확인한 바 있는 외국의 도망자이다. 카나다는 왜 이런 외국인에 대하여 취업허가까지 발급한단 말인가? 이는 혹시 라이창싱이 카나다에 합법적으로 거류해도 좋다는 뜻인가? 왜 라이창성을 중국으로 송환하겠다고 한 기구와 라이창싱에게 취업허가를 발급한 기구가 모두 카나다이민부인가?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외에 예전에 중국에서 '호풍환우'하던 인물은 10년동안이나 카나다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기자는 관련전문인사와 라이창싱 본인을 인터뷰하여 여러가지 의문을 풀어보고자 한다.

 

<<카나다이민법>>을 잘 아는 법조계인사는 이민부가 라이창싱에게 취업허가를 발급한 점에 대하여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법에 따른 조치라는 것이다.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카나다가 라이창싱에게 취업허가를 준데 대하여 불만을 표시했다. 벤쿠버의 이민변호사인 전로에 따르면, 카나다정부가 라이창싱에게 취업허가를 발급해준 것은 카나다 <<이민 및 난민보호조례>>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이 조례의 206조에 따르면, 이미 카나다에 들어온 외국인이, 직장이 없이는 자립할 수 없으면, 두 가지 경우에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나는 이미 난민신청을 했는데, 카나다정부가 아직 결정을 하지 아니한 경우; 또 하나는 카나다정부가 이미 난민신청을 거절하였고, 그에게 국외로 강제추방명령을 내렸으나 정부가 내린 강제추방령을 어떤 사유로 집행할 수 없는 경우.

 

라이창싱은 위의 두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는 세 가지 필수조건이 있다: 첫째, 카나다정부가 당사자에게 강제추방령을 내렸을 것; 둘째, 이 강제추방령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잠정적으로 집행할 수 없을 것; 셋째, 당사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 전로 변호사에 따르면, 앞의 두 조건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핵심은 셋째 조건이다. 만일 이민부가 라이창싱이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라이창싱에게 취업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률규정상 그러하기 때문이다.

 

일찌기 라이창싱 사건에서 이민전문가로 증인이 된 바 있던 카나다 형법개혁및형사정책국제센터의 고급연구원인 양성(楊誠)은 '취업허가' 배후의 사법논리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카나다법률제도의 설계와 운영에 있어서, '범인도 사람이다'라는 관념을 고려한다. 카나다사람들이 보기에, 외국의 도망자라도 카나다의 길거리에서 굶어죽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사건이 시간을 오래 끌게 되면, 그들은 카나다에서 수입이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취업허가를 발급하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고, 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다. 이들이 장기간 체류함에 따라 카나다납세인들에게 조성될 수 있는 경제적부담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

 

양성에 따르면, 카나다가 이런 법률제도를 둔 것은, 인도적인 고려와 국내복지압력을 고려한 것이다. 카나다도 부득이한 것이다. 당연히, 어떤 법률제도라고 남용될 가능성은 있다. 카나다의 이런 제도는 남용될 수 있을지 아닌지는 개별적인 사건에서 구체적인 상황을 보아야 한다. 이 제도의 실질적인 운용으로 보자면, 만일 카나다정부가 난민신청이 거절된 외국도망자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서, 일을 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취업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이러한 통상적인 경우를 유추해보면, 라이창싱이 이번에 취업허가를 받았다는 것은, 카나다정부가 생활에 있어서 그가 상당한 곤란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판단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라이창싱이 이번에 얻은 취업허가는 카나다정부가 그의 난민신청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아도 좋은가? 혹은 그를 강제추방하려는 결정이 변경되었다고 보아도 좋은가?

 

전로에 따르면, 이 양자간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라이창싱이 카나다에서 취업허가를 받은 것은 카나다의 법률이 그러한 효력을 부여한 것이다. 다만, 이것은 그의 난민신청을 받아들일지 아닐지의 문제나 강제추방시킬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

 

양성의 분석에 따르면, 라이창성사건은 10년을 끌었다. 이는 주로 카나다와 중국의 양국법률제도와 문화관념에서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땜누이다. 쌍방은 형사범죄의 사법공조에 관련된 협조를 진행함에 있어서, 큰 장에가 있다. 양국은 1994년 사법공조협약을 체결했지만, 아직까지 범죄인인도조약은 체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민법에 따라 범죄자를 송환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카나다에는 판사와 관리들이 중국의 법제에 대하여 이해와 신뢰가 없다. 중국에 대하여 그다지 이해가 없는 카나다의 리스크평가관리가 라이창싱이 귀국후에 리스크가 있을 것인지 아닌지를 논증한다는 것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카나다의 행정, 사법관리는 중국사법제도에 대하여 오랫동안 편견을 지니고 있다. 이는 짧은 기간내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라이창싱의 사건은 더욱 시간을 오래 끌 게 될 것이다.

 

현지 중국인사회는 이 사건에 대하여 완전히 둘로 갈린다. 어떤 사람은 라이창싱을 '영웅'이라고 칭하고, 어떤 사람은 그를 카나다를 '바로'라고 욕한다.

 

라이창싱을 지지하거나 동정하는 사람들은 라이창싱이 과거에 중국에서 밀수탈세를 저질렀지만, 그 당시에 중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어떤 사람은 '역사가 공동으로 책임질 사항'(歷史共業)이라는 대만의 용어로 라이창싱의 과거행위를 평가한다. 그의 과실이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라이창싱을 까오산(高山), 이씨형제와 마찬가지로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일반백성을 해친 것도 아니며, 카나다에서 이미 10년가까이 머물렀으므로, 카나다에 새로 이민온 사람들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카나다에 남겨두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려 라이창싱이 취업허가를 받은 것을 축하하고 있다. 마침내 머리를 내밀 기회가 왔다고.

 

그러나, 대다수는 창끝을 라이창싱 개인과 카나다 정부에 겨눈다. 카나다정부는 약간의 돈을 위하여, 해적, 범죄자와 깡패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지명수배범을 어떻게 카나다에 머물게 하고, 게다가 취업을 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가. 당연히 하루빨리 라이창싱을 중국으로 송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카나다정부는 모든 중국의 부패관리를 오라고 선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카나다는 범죄자의 천국이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일부러 중국정부와 대결국면으로 가려고 하며, 그러다보니 머리가 이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카나다의 법률체계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라이창싱이 카나다에서 어떻게 생활해왔는지는 수수께끼이다. 현지 매체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자주 잃어버린다. 그도 매체에 생활상황을 털어놓는 경우가 드물다. 기자가 라이창싱에게 연락했을 때, 그와 카나다에서의 생활을 얘기하고 싶다고 하자, 라이창싱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는 '뭐 할말이 별로 없다'고만 했다. 결국 기자의 계속된 요구에 그가 응락을 했다. 원래 인터뷰를 그의 집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라이창싱인 '우리 오범(五帆, Pan Pacific)호텔에서 보자'고 말했다"

 

기자가 왜 Pan Pacific호텔에서 보자고 하느냐고 묻자, "그것은 경치가 아름답고, 사진이 잘 나온다. 그리고 밴쿠버 관광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생각도 못했다. 카나다에 10년간 숨어사는 그가 밴쿠버의 무료선전요원이 되어 있을 줄은. 그는 자신은 이 곳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무 일이 없으면 거기에 가서 돌아다닌다고 한다. 특히 요 며칠은 어떻게 일자리를 찾아서 출근할까를 생각하느라고 여유가 없어서 못갔으니 더더욱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기자는 약속장소로 갔다. 라이창싱은 이미 호텔문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리털파카를 입고, 남식의 격자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원래 양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더욱 기운있어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보니, 그저 이렇게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카나다광장을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 호텔 이층의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기자가 라이창싱에게 카나다에 온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았다. "아주 힘들었다" 라이창싱의 대답이다. "다시 두 달만 지나서 4월 20일이 되면 사건입건 10주년이다. 8월 13일이 되면 내가 카나다에 온지 만 10년이 된다."

 

라이창싱은 막 카나다에 와서 아직 붙잡하지 않았을 1년간 그는 자주 낮에는 카지노에서 놀고, 저녁에는 호텔에서 중국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사건진전상황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특히 첫 두 달간은 그랬다" 라이창싱은 그가 당시에는 밤 아홉시까지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안좋은 소식이 들리면, 낮에는 더 이상 생각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카지노에 가서 스스로를 마비시켰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되어 처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이상 카지노에 갈 마음도 없어졌다.

 

"2000년 11월에서 2001년 3월까지 나는 4달간 갇혀 있었다. 풀려난 후에, 다시 여러번 체포되었다. 구치소에 들락거린 것이 10여차례이다. 2007년 4월 19일이 되어서야 "저녁외출금지"가 풀려 비교적 자유롭게 되었다. 라이창싱은 10년간의 카나다생활이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고, 정신적인 압력도 거셌다고 한다.

 

커피숍에서 개략 30분을 앉아 있으니, 라이창싱은 피곤해 보였다. 그는 저녁에 잠을 푹 자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밴쿠버 시중심을 떠나 차를 몰고 라이창싱이 거주하는 집으로 갔다. 라이창싱은 그가 거주하는 집은 원래 Burnaby 시이고, 이곳은 그가 출입국서비서처에 등기한 주소라고 했다. 이 아파트는 번화한 Loughheed 하이웨이 곁에 있었다. 건물은 30여층이다. 이 근처에는 철도역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대형 쇼핑센터도 있다. 교통과 생활이 모두 아주 편리한 곳이었다. 라이창싱의 이 주소는 방2칸에 거실이 있는 곳으로 면적은 약 100평방미터 가량이었다.

 

10년동안, 라이창싱은 밴쿠버지역에서 주소를 10여번이나 바꾸었다. 벤쿠버 웨스트구, 버나비의 리전트빌딩, 그리고 밴쿠버시중심의 아파트 등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여러개의 아파트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라이창싱은 이들 주택은 대부분 친구가 그에게 빌려준 것이고, 자신은 현재 아무런 부동산도 없다고 말한다. "내가 어디에 돈이 있어서 집을 사겠는가?"

 

집에 들어가니, 라이창싱은 기자에게 집안을 소개시켜주었다. '거실은 내가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다" 기자는 호기심에 그에게 중문티비를 보는지 영문티비를 보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영어를 모른다. 보는 것은 모두 중문티비이다" 라이창싱은 그의 집에 기린티비를 설치해서 중국의 수십개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고 맗샜다. 그리고 언제든지 채널을 바꿀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고 했다. 라이창싱은 그는 티비드라마를 아주 좋아하고, 최근에 비교적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양검(亮劍)>>이라고 말했다. "남자주인공 이운룡으로 나온 이유빈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연기도 아주 잘한다" 라이창싱의 평이다.

 

"티비뉴스는 봉황티비와 CCTV 채널4를 좋아한다." 그는 얘기하면서 티비를 켰다. 그가 자주보는 CCTV 채널4의 '해협양안" 프로그램을 틀었다. 그리고 기자에게 어떻게 하면 빨리 켜고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라이창싱은 금년 CCTV의 춘절만회의 전체 프로그램을 그는 다 보았다고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샤오선양(小瀋陽)과 자오번산(趙本山)의 소품 <<불차전(不差錢)>>이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에게 카나다에서 생활하는데 돈이 모자라지 않는지 물었다. 라이창싱은 그 자신이 수입원이 없다고 다시 강조했고, 생활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유지한다고 말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마음 속에, 몸이 제일이다. 자유가 둘째이고, 친구가 셋째이다. 돈은 기껏해야 네번째이다."

 

이어서, 라이창싱은 나를 그의 서재로 데리고 갔다. 이곳의 책상에는 대형모니터의 애플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하루종일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문다." 라이창싱의 말이다. 그는 평소에 할 일이 없어서, 티비를 보는 외에는 인터넷에 들어가서 "투지주(鬪地主)"를 한다. 그는 말했다. 만일 친구가 오면 그들과 함께 포커게임인 "투지주"를 즐긴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가 매일 오는 것은 아니므로, 라이창싱은 인터넷의 "투지주"게임에 빠지게 된 것이다.

 

"나는 QQ에도 들어가서 '투지주'게임을 하며 논다" 상대방은 중국대륙의 네티즌이다. 라이창싱은 한번 놀기 시작하면 몇 시간을 논다. 가장 많이 노는 경우에는 열몇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면부족이다. 기자가 라이창싱에게 QQ 이름을 묻자, 그는 원래 실명으로 등록하려고 했는데, QQ에서 그가 라이창싱이라는 이름으로는 등록이 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다른 이름을 하나 지어서 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투지주'를 하는 외에, 나는 자주 인터넷에서 신문을 본다" 그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시나닷컴이다. 다른 뉴스웹사이트도 가끔 돌아다닌다. 그는 자기가 카나다에 온지 10년이 지나서, 생활이 편안하다고 했다: "이곳에서, 나는 카라오케, 나이트클럽에 가본 적이 없다" 자신은 집에서 집안요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라이창싱이 1월 22일 카나다이민부에서 취업허가를 받은 후, 일지기 건축이나 건물매매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라이창싱은 중국인시장을 겨냥한다. 영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고, 그의 경험에 따라, 부동산회사의 업무와 지명도를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업계의 인사는 라이창싱은 부동산브로커를 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카나다에서 부동산브로커를 하려면 반드시 자격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를 모른다. 배우지 않았다. 부동산브로커 자격증시험은 합격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부동산회사의 PR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다"

 

2007년 관련당국이 야간통행금지를 취소할 때, 라이창싱은 농장을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농민출신이므로, 기자가 그에게 여전히 농장에 흥취가 있는지 물어보고, 왜 농장에서 일자리를 찾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농장의 급여는 높지 않다. 부동산업종이 괜찮은 돈을 준다" 라이창싱은 농장에는 여전히 흥미가 있다고 했다. 그가 돈을 모아서 농장을 사면 물고기를 기르고 채소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이미 두 부동산업체가 그와 접촉하고 있고, 그를 초빙하고자 한다고 했다. 기자가 인터뷰했던 그날 밤에, 그는 면접을 보러가야 한다고 했따. 라이창싱은 현재 어느 회사로 갈 것인지는 정하지 못했지만, 더 높은 보수를 주겠다는 부동산업체로 갈 것이라고 했다.

 

어떤 매체는 라이창싱이 이미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의료보험카드를 취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라이창싱은 그는 그저 관련부서에 의료보험카드신청서를 제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의료보험카드를 발급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병이 들면 자기 돈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 카나다의 의료보험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라이창싱은 그의 의료보험카드신청이 조금만 지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라이창싱이 자주 성당에 간다고 말한다. 기자가 그에게 세례를 받았는지 물어보았는데, 라이창싱은 성당에 가본 적은 있지만, 매주 가서 예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세례를 받지 않았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세례를 받으면, 매체는 분명히 내가 이전에 죄를 많이 짓고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지옥에 떨어질까 겁이나서 세례를 받았다고 보도할 것아니냐?" 성당의 사람들은 모두 우호적이고 사랑이 있다. '성당에는 부동산 사장이 한 명 있는데, 자주 나에게 자기 회사에 와서 일하자고 한다. 그러나 그의 회사에는 두 사람의 서양사람이 있어, 내가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할까봐 계속 고민만 하고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자가 라이창싱에게 웬화 사건에서 중국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은 인정하는지 물어보았다. 라이창싱은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대부분 사업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을 저질렀다. 그 시대에 중국의 사업가들은 백이면 구십은 모두 그렇게 했다. 사업을 하는 것은 돈을 더 벌려는 것이고, 어떤 때는 빈틈을 노리는 것이다. 내가 범한 죄는 살인방화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액수가 비교적 크다는 것은 인정했따. "그러나, 핵심은 국가의 관리감독상의 헛점이었다" 라이창싱은 계속하여 그는 무슨 관계를 통하여 돈을 번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도상의 헛점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그에게 중국세관의 현재 헛점을 물어보자, 그는 '이미 10년이 지났다. 현재의 규정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카나다에서의 소송에 대한 결과예측을 물어보자, 라이창싱은 소송이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고만 말했다. 그에게 중국으로 송환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국가는 두렵지 않다. 정부도 두렵지 않다. 무서운 것은 사건처리하는 소인배이다" 그는 자기는 중국지도자를 믿는다고 강조하고, 그저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사건처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신뢰가 없다고 했다. 기자가 그에게 사건처리담당자들에게 원한을 지니고 있는지 물어보자, 라이창싱은 "벌써 일이 이렇게 오래 흘렀는데, 나는 따지고 싶지 않다. 그저 그들이 다시는 나의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이창싱은 근 10년동안 각종 소문이 많았다. 그도 여러번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여러 정보는 맞지 않았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가? 그것은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면, 근 10년동안 라이창싱은 계속하여 카나다-중국관계의 걸림돌이었다는 것이다. 양국은 중국공민해외관광 목적지에 대한 협상이 계속 지연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라이창싱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라이창싱이 취업허가를 받았는데, 원래 사이가 좋지 않던 중국-카나다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비록 카나다이민부장은 여러번 이것이 정치적결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두번이나 이 일에 대하여 강하게 언급했고, 카나다에 엄중하게 교섭을 요청하겠다고 하였다.

 

라이창싱은 카나다에서 도대체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까? 사건은 중국-카나다관계발전에 얼마나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칠까? 모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문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