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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중국의 연단술(煉丹術)

by 중은우시 2009. 6. 17.

글: 장각인(張覺人)

 

중국의 연단술은 원래의 채광술(採鑛術)과 야금술(冶金術)에서 유래한 과학의 한 분야이다. 일찌감치 원시사회후기에 중국에는 야동술(冶銅術)이 나오면서 은상(殷商)시대에 들어 대량으로 청동기가 사용된다. 춘추전국시대에 야철술(冶鐵術)과 철기의 사용이 나타난다. 인민들은 금속을 야연(冶煉)하면서, 풍부한 화학 지식을 축적하고, 여러가지 채광과 야금의 방법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연단술이 나타난다. 봉건통치자들은 인민을 통치하고 자신의 타락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장생불사와 부귀영화를 꿈꾸었다. 그들이 동물과 식물에서 장생불사약을 찾다가 찾지 못하게 되자, 다시 광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아직 제련되지 않은 광물을 복용후에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일부 방사(方士)들은 사람들이 발견한 야금술을 광물약제를 만드는데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연단술은 야금술의 범주를 벗어나서 독립된 하나의 전문분야로 자리잡는다.

 

중국은 일찌감치 춘추전국시대부터 연단술을 하는 방사들이 나타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북방 연나라의 송무기(宋无忌), 정백교(正伯喬), 충상(充尙), 선문자고(羨門子高)등의 방선도를 창립한 방사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들은 "선도" "신선"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들의 주요한 목적은 '해상'으로 가서 '신선'을 만나 장생불사약을 캐는 것이다. 연금술을 그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은 중국에서 기원전2세기경에 이미 연단술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중에 진나라와 양한(兩漢, 서한과 동한)의 방사들이 계속 노력하여, 더욱 발전하게 된다. 신선에게 선약을 구하는 것 이외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솥을 걸어놓고 단사(丹砂)를 연단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적은 <<사기>> 및 <<후한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동한말기에 이르러, 연단술사들은 신흥 도교와 합류하여, 연단술이 더욱 튼튼한 사회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 이용하여 상층통치계급에 잘보였을 뿐아니라, 적지 않은 실의에 빠진 지식분자들도 이를 이용하여 현실도피를 하게 된다. 동시에 이것을 가지고 일반백성들을 속여먹는다. 그리하여, 연단술은 위, 진, 남북조, 수, 당, 오대에서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중시되고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연단의 방법은 어떠했는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설명한 자료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초기의 연단저작은 <<예문지>>와 <<포박자. 내편>>을 보면, <<태일잡자>>, <<황치>>와 <<단호경>>이라는 책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책은 <<포박자>>를 제외하고는 일찌감치 망실되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 <<사기>>에도 진시황, 한무제가 신선에게 불사약을 구하려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시황은 늙어죽기 싫어서, 방사의 말을 듣고 서불(徐巿), 호광(胡廣)등으로 하여금 동남동녀를 데리고 동해로 가서 장생불사약을 구하게 했다는 것이다. 한무제때는 연대(戀大), 이소군(李少君)등이 한무제가 선약을 구하고자 안달한다는 것을 알고는 한무제에게 건의했다: "만일 신선이 되려몀 첫째는 조신(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둘째로는 단사를 가지고 황금으로 연단하는 것이다. 황금으로 음식기를 만들면 수명을 늘일 수 있다. 이후 바다로 가서 봉래산의 신선을 만나볼 수 있고, 만나보고 봉선하면 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도 실패로 끝난다. 신선을 만나고 단약을 구하는 것은 고대인들의 환상이었고, 현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연단가들은 장생불사를 위하여, 더욱 많은 재물을 위하여, 죽어라 연단을 하게 된다. 언젠가는 황금과 선단을 만들어내서 그들의 욕망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들어낸 단약을 사람을 장생불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먹은 사람들이 중독사했다. 그리하여 오래 살고자 하다가 일찍 죽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리하여 연단술을 통하여 만들어낸 황금은 사회에서 효용이 없어지게 되자 폐기되어버린다. 이소군, 연대와 같은 무리는 단사를 황금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차례로 죽어버린다. 한무제(기원전70-49)때, 자칭 회남왕의 <<침중홍보원비서>>를 읽어 황금을 연단할 줄 안다고 말하는 유향(劉向)이 나타나나 역시 황금을 연단해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황금은 물질계에서 가장 정수이므로 만들기가 어려우니, 그 다음 정도를 추구하여 백은(白銀)을 제련해내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하여 부를 움켜쥐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꿈도 실현되지 못한다. 한나라때 황문시랑 정위(程偉)는 <<침중홍보>>의 방법에 따라 연금을 시도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아주 고뇌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의 처가 남은 약을 수은통에 집어넣자, 수은이 졸지에 백은으로 바뀌어 버렸다(실제로는 乾水銀이지 백은은 아니다). 이것도 중국에서 2세기전에 이미 연단과 연금술이 유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선약을 먹고 장생불사하려다가 오히려 몸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술을 구해서 마시고, 좋은 옷을 구해서 입는 것만 못하다"는 말까지 나온다(고시19수중의 하나).

 

연단술사는 비록 선단을 제련하지도 못하고 황금을 제련하지도 못했지만, 객관적으로 인민들에게 여러가지 유익한 공헌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현대 화학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자연계의 많은 광물을 활용하여, 장기간의 실험을 통해, 적지 않은 물질의 성능과 변화를 밝혀냈다. 그리고 이런 천연의 물질을 이용하여 인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비록 사람들이 장생불사할 수 있는 연단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인민들의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만들어 냈다. 예를 들머, 수은, 유황, 비소등으로 약물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그들의 성과이다. 이외에 어떤 사람들은 화약과 많은 안료, 합금등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것도 연단술사들이 창조발명한 것들이다.

 

연단술은 원래 도가와 연결된다. 고대에 연단술을 익힌 사람들은 대부분 도사였다. 이들은 실제 생산업무에 종사하지 않은 백수들이아. 그래서 이런 연구를 할 조건이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도가철학을 자신들의 연단이론의 기초로 삼았다. 견강부회적으로 '장생불사'의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의 신선들 중에서 사람도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누가 제일 먼저 창안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연(燕), 제(齊)등의 지방에서는 신선가들을 속속 배출한다. 열국의 제왕들도 이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곳은 발해에 인접하여 있고, 자주 신기루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신기루의 환영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자들이 많았다. 이곳이 바로 '봉래선경'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습유기>>에도 "바다에 3 신선이 있는데, 이름이 봉래, 방장, 영주이다...여러 신선과 불사약이 그 곳에 있다"

 

득도한 사람은 선인(仙人)이다. 불사약에는 도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연단술사들은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금단을 연단하였다. 이처럼 단약을 만들어 신선이 된다는 견해는 처음에는 도가의 전유물이었다. 나중에 민간에 보급되면서, 도가와 관련있는 사대부들도 관련이 되고, 근대에까지도 이런 기풍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연단술은 현대화학에 확실히 공헌을 세웠다. 연단술사들은 연단과정에서, 침전, 증류, 증발, 연소, 승화, 결정, 수욕, 사욕등의 조작방식을 연구해냈고, 이것들은 모두 현대 화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연단술은 현대 화학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유럽연단술사들은 "철인의 돌" 및 "불사약"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신원소와 신화합물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Albertus Magnus가 비소를 발견하고, 발렌티누스가 아연, 안티몬 및 인을 발견한다. 다만 이들 원소는 모두 중국으 연단술사가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들이다. 다른 화합물들도 부지기수로 발견된다. 이외에 납, 단사, 수은, 석회, 유약, 초석, 화약등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