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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중국의 과학

중국은 "문화조공심리"를 극복해야 한다.

by 중은우시 2009. 8. 10.

글: 양홍새(楊鴻璽)

 

인문영역과 자연과학영역에서, 중국국내는 최근 몇년동안 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하나의 경향이 있는 것같다. 그것은 바로 일부 문화 및 과학기술 엘리트들을 포함해서, 어떻게 서방의 인문과 과학기술과의 편차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논하면서, 정신숭배와 문화조공심리가 아주 농후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드라마계에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일부 영화는 서양영화계에서 인정해주거나 무슨 대상을 타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효과의 소위 영화언어를 추구하지 않으면, 마치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 아니고 이류작품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쉽게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이는 일부 감독이나 배우들로 하여금 본국의 상황이나 민중의 기호는 도외시하고, 그저 서방영화관련 상이나 호평을 받는 방향으로 매진한다. 자연히 서방의 영화업자들과 민중의 입맛에 맞추게 된다. 명목이야 그럴 듯하게, "서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중국문화를 전파한다"는 것이기는 하다. 적당한 영화언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고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자주 일방적으로 영합적인 영화언어를 추구하는 잘못을 범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이렇게 왜곡되고 기계적으로 같다붙인 작품이 어느 정도 서방에서 중국의 전통문화를 감상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보면, 많은 경우에, 서방영화계의 입맛도 자주 변하고, 맞추기가 어렵다.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결국은 헛고생만 한 결과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만일 평상심을 가지고, 일부러 무엇을 추구하는 심리를 갖지 않는다면, 본국본토의 우수한 영화인재와 작품이 적지 않게 나온다. 실제수준도 외국의 무슨 동물 금상, 은상을 받은 것보다 못하지 않다. 노신, 파금등의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들보다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관중 혹은 중국계의 눈으로 평가한다면 어떤 영화작품은 심지어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수한 본토의 영화창작인원들을 일부 유명 감독이나 유명 배우들이 별로 쳐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방인들의 '예술적 요구사항과 대중의 입맛"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부 국제적인 상을 받은 중국본토작품에 비범한 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주화입마에 빠져서는 안된다. 필요한 것은 민족자신감과 문화자신감인 것이다.

 

다른 인문연구영역, 예를 들어, 경제학, 정치학과 국제연구에서 서방의 이론정수를 국내에 소개하고 도입하는 것은 필요하기도 하고 필수적이기도 하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이나 세계우수문명설과를 흡수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절대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된다. 그저 그대로 베껴와서, 끄덕하면 낯설고 설익은 이론으로 사람들을 겁주어서는 안된다. 중국현대역사상 기계교조주의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였는가? 역사의 교훈이 먼 곳에 있지도 않다. 문학작품에서는 비교적 객관적이다. 우리는 노벨문학상등 세계문학상의 명예와 무게를 잘 알고 있다. 이 측면에서 스스로의 문을 닫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그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자연과학영역에서, 우리는 서방 특히 미국의 선진적인 지위를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서방의 과학발전의 발걸음을 따라갈 필요도 있다. 열심이 배우고 잘 복습하면서, 흡수하고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약간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스스로 잘난체 하거나, 자랑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중국과 서방선진국간의 과학기술격차는 거대하다는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그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해야 맞다. 그러나, 이것도 과학영역에서 그저 따라가기만 하고, 그저 숭배하기만 함으로써, 심각한 의존성이나 경박한 심리가 나타나도록 해서는 안된다. 기초과학연구를 중시하지 않으면, 혁신정신이 상실되는 결과에 이른다.

 

과학프로젝트의 개시나 주제선정 혹은 글에서 선진국의 전문가의 건의나 평가의견을 들을 때, 국외과학기술잡지에 논문을 보낼 때, 만일 다른 사람이나 혹은 다른 잡지에서 거절을 당한다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스스로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핵신매용은 유지해야 한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개혁개방초기에, 일부 이전의 우수한 자연과학성과를 달느 선진국의 전문가에게 보내어 국제적인 인정을 받으려고 하였는데, 그때 심사를 통과했었던가? 과학기술발전과 국방적인 의미가 있는 중요한 성과에 대하여 그들은 욕심을 냈지만, 표면적으로는 고의로 가볍게 넘기고,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서, 암중으로 자신들의 것으로 하였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면서 아주 세부적인 사항에 대하여 현란한 말을 내뱉으면, 우리는 그 말을 따라갔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중대한 과학기술성과와 기술발전계기를 놓쳐버렸었다.

 

다음으로, 스스로에 대하여 기본적인 자신감을 잃지 말라. 자신의 곁에 있고, 국내에 있는 우수한 인재와 과학의 축적을 무시하지 말라. 일부 의견은 서방사람들이 비로소 인재이고, 서방에 유학해야 인재이고, 국내의 우수한 인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밖에서 봉황을 데려오고, 안에 있는 봉황은 냉대한다는 말이다. 이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심지어 소위 격차와 마찰을 확대시킬 뿐이다. 하물며 해외의 진정한 봉황을 모셔오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반드시 쌍방이 각자 가진 장점을 발휘해야 하고,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최근 들어, 일부 경험과 교훈을 통하여, 국내에서 과학기술의 심리적 태도에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고쳐야 할 점이 더 많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문과 과학영역에서 특히 실사구시와 변증법원칙을 견지해야한다는 것이다. 문화자신감은 문화자대(自大)가 아니다. 자아팽창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개괄할 수도 없다. 그것은 또 다른 잘못된 견해이다. 과도한 문화와 과학의 숭배심리는 극복하여야 하지만, 절대로 문화와 과학의 폐쇄상태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정확한 심리적 상태로 중국문화와 과학사업의 개방과 발전을 더욱 잘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