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화청(禾靑)
원나라 쿠빌라이가 일본을 정벌하려고 나섰다가, 원정군이 거의 전멸했다. 20만대군중 겨우 2만명밖에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어떤 글에서는 그 주요한 원인을 관리들이 선박건조자금을 횡령하고, 건조비를 빼돌려서, 선박의 품질이 나빴고, 게다가 태풍을 만나게 되니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쿠빌라이는 일벌이기를 좋아했고, 대외정벌을 위하여, 절강 경원(慶元)에 시박제거사(市舶提擧司)를 설치하여, 황실조선소의 관리,감독을 맡겼다. 시박제거사의 우두머리는 모두 당시의 간신 아하마(阿哈馬)의 심복들이었다. 그들은 아래위로 모두 썩고, 대거 검은 돈을 챙겼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지 않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조선소에 불을 질렀다. 일본을 공격할 때 태풍을 만났다는 것도 확실하다.
다만, 일본을 공격하다가 실패한 주요원인은 선박의 품질이나 해상의 태풍이 아니다. 인위적인 요소 즉 인화(人禍)라고 할 수 있다.
쿠빌라이가 대거 일본을 공격할 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쿠빌라이의 대외확장야심이다. 특히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한 후, 원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었고,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다.
일본은 일찌기, 몽골칸의 속국이었고, 매년 조공을 바쳐왔다. 쿠빌라이가 송나라와 전투를 벌인 이후, 일본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치러 오지 않았다. 쿠빌라이는 여러번 대신을 보내어 재촉했으나, 일본측은 계속하여 뭇들은 척했다. 쿠빌라이는 일찌감치 무력으로 혼내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송나라와 싸우는 중이었으므로 일본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계속 지연된 것이다.
송나라를 멸망시킨 후, 쿠빌라이는 즉시 조양필(趙良弼)을 국사로 보내어 일본의 죄를 묻는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쿠빌라이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조양필이 교토에 도착한 후, 일황은 계속 미루기만 하고 만나주질 않았다. 그러면서, 조양필에게는 국서를 내놓으라고 했다. 이는 확실히 원나라와 맞먹겠다는 태도였고, 대등한 입장에서 교류하겠다는 뜻이었다. 일본이 원나라의 속국이 아니라는 태도였다.
쿠빌라이는 그 말을 듣자 대노한다. 그는 핑계를 잡아서 일본을 공격할 궁리만 했다. 마침 핑계거리가 생겼다.
지원18년(1281년) 정월, 쿠빌라이는 남북 양로로 나누어 일본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아라한(阿剌罕)을 초토사(超討使)로 하여 남북양군을 통솔하게 하였다. 고려에 머물고 있든 흔도(忻都)와 송나라에서 항복한 장수 범문호(范文虎)를 초토부사(招討副使)로 삼아서 각각 북로군과 남로군을 통솔하게 했다. 북로군은 주로 몽골과 고려의 군대로 이루어져 있었고, 남로군은 주로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남송의 수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북로군은 고려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남로군은 절강 경원항구에서 출발하여 꾸불꾸불 북상했다.
쿠빌라이는 야심만만했다. 그는 만일 모든게 순조롭다면, 당시가 정월이므로, 육월 십오일을 전후헤서 남북양로군이 일서도(壹嶼島)에 도착하여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두 병력을 하나로 합쳐서 배를 버리고 상륙한 다음 바로 일본의 수도로 진격하고자 했다. 그러면 함락시키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아라한은 노장이다. 몽케의 제1차 남송정벌때 그는 쿠빌라이를 따라 강남을 공격했다. 악주를 포위공격할 때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아리부케를 평정하고, 이단(李璮)을 소멸시키고, 남송을 멸망시키는데 모두 참가한다. 그는 전장터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이었고, 이미 나이가 상당히 많았다.
남북양로군은 쿠빌라이의 지시에 따라, 각각 고려와 절강 경원에서 출발했으며, 처음에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칠월, 범문호의 선단이 일서도 해면에 도착한다. 이때 날씨가 급변하면서 시커먼 구름이 동북에서부터 밀려온다. 바닷바람을 차갑고 매서워졌으며 뼈가 시릴 정도였다. 바다에서는 파도가 크게 일었다. 범문호는 송나라때 장강의 수군을 통솔한 적이 있다. 원나라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경원의 선박사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일을 총감독했다. 그러므로 그는 바다의 기후변화에 익숙했다. 그는 거대한 태풍이 곧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즉시 명령을 내려 선박들에게 태풍을 피할 준비를 하도록 지시한다.
범문호는 스스로 잘 처리했다고 생각한 다음, 자기 배로 돌아가서 술을 진탕 마셨다.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몸이 따스해 졌다. 그는 잠을 푹 자고 싶었다. 그때 돌연 총사령관인 아라한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범문호는 뜻은 높으나 재주는 별로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빈틈을 잘 뚫고 들어가는 인물이다. 그는 송나라의 명장 여문덕(呂文德)의 사위이지만, 그는 인품에 있어서나 재능에 있어서 여문덕과 같은 반열에서 논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는 여문덕을 배신하고 가사도(賈似道)와 결탁했고, 원나라군이 안경(安慶)을 공격할 때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투항했다. 그는 아라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초토사 즉 총사령관의 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의식했다. 원나라 대도에서 새로운 총사령관을 파견해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총사령관을 누가 맡을 것인가에 그는 온 관심을 집중했다. 그는 총사령관의 자리를 차지해야겠다고 머리를 굴린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흔도가 선수를 쳤다. 그는 먼저 총사령관의 도장을 가져가 버렸다.
범문호는 이를 알고는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병력은 그가 흔도보다 훨씬 많다; 전선도 흔도보다 역시 오,육백척은 더 많다. 그런데 왜 흔도가 총사령관이 되어야 하는가? 흔도로 하여금 총사령관의 도장을 내놓게 하려니, 흔도는 몽골인이고, 범문호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인물이니,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다.
범문호는 그리하여 무력으로 총사령관 도장을 빼앗아오기로 결정한다.
아뿔사! 아직 적과 교전을 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먼저 내분을 일으켜 서로 죽고 죽이려 한 것이다. 이는 병가의 큰 금기사항이다. 하물며 날씨도 좋지 않고, 태풍이 곧 닥칠 상황이었으로, 까닥 잘못하면 전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 선봉 이정(李庭)을 위시하여 일보 장군들이 범문호에게 냉정해지고, 절대 내란을 일으키지는 말라고 권한다.
범문호는 전혀 이를 듣지 않는다. 그리고 병력을 셋으로 나누어 흔도의 전선을 습격한다.
이정은 바닥에 꿇어앉아서 애타게 권했다: "당신은 해상의 날씨를 잘 안다. 검은구름이 미친듯이 몰려오고, 파도가 높다. 갈매기는 놀라서 날아갔다. 현지 어민들은 속속 그물을 거두어 항구로 돌아간다. 이것은 모두 태풍이 곧 닥친다는 신호이다. 우리 선단은 방대하고, 전선은 무거워서, 즉시 항구로 대피하지 않으면, 아마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다. 사령관은 재고해달라. 재고해달라."
이정은 범문호를 저지하기 위하여 바닥에 머리를 찧었고, 이마에서는 피가 났다.
태풍에 관하여는 범문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총사령관의 직위를 흔도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람은 항상 요행을 바란다. 그는 태풍이 오기 전에 총사령관 도장을 빼앗아내려고 생각한다. 그 후에 상륙하여 태풍을 피할 생각이었다. 범문호는 여기까지 생각한 후에 냉랭하게 이정에게 말한다: "태풍의 일은 네가 걱정할 것이 없다. 본사령관은 해상의 날씨 변화를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다. 총사령관 도장을 빼앗은 후 다시 상륙하여 태풍을 피하더라고 시간이 충분하다. 시간이 급하니 빨리 일어나라"
"장...군" 이정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죽어라 간언하며 일어나지 않았다: "쌍방이 싸우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저 혼자 생각이 아닌가. 만일 태풍이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지 못한다면, 전멸하고 말 것이다. 정말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장군. 절대 그런 리스크를 안고 일을 해서는 안된다."
범문호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그는 미친 맹수처럼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간도 크구나. 군심을 교란시키고, 투지를 동요시키다니, 본 장군이 총사령관 도장을 회수해서 돌아온 후에 다시 너의 죄를 묻겠다" 그리고는 여러 병사들에게 명령한다: "즉시 출발한다. 흔도의 선단을 향해서 총공격을 하라!"
이렇게 하여, 범문호는 천척이 넘는 배를 3로로 나누어, 범문호가 친히 중로를 지휘하며, 흔도의 선단을 정면에서 공격해갔다. 좌우 양로는 각각 흔도의 양날개를 공격했다. 기세등등하게 흔도의 선단으로 진격해 들어간 것이다.
만일 흔도가 대국을 중시했더라면, 사정은 아마도 만회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흔도도 사리사욕에 눈이 먼 자였다. 국가이익과 사병의 생명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해상의 악전고투가 시작된다.
아마도 쿠빌라이의 대외확장욕망은 하늘의 분노를 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범문호와 흔도간에 죽고 죽이기가 해신의 분노를 샀는지도 모르겠다. 범문호와 흔도의 양군이 교전을 하려고 할 때, 사나운 태풍이 동전만흔 큰 비를 내리면서 다가왔다. 태풍의 앞에서 범문호와 흔도의 선단은 너무나 작았고, 형편없었다. 철갑전선은 태풍에 부서지고, 망가졌다. 장병들은 도망치기 위하여 서로 밀고 당겼으며, 속속 바다에 빠졌다. 놀라운 파도가 배를 삼켜버렸다. 불쌍한 수십만대군은 순식간에 바닷속에 수장된다. 그들은 지세를 잘 몰랐으고, 피로하고 배도 고파서, 전투력이랄 것이 없었다. 맞아죽지 않으면 포로로 붙잡혔다. 살아서 돌아간 자가 열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범문호가 통솔하는 남송의 수군은 겨우 3 사람만 살아서 돌아갔다.
범문호와 흔도는 모두 다행이 목숨을 건져 도망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크다는 것을 잘 알았다. 감히 한낮에 수도로 돌아가지 못하고, 감히 쿠빌라이를 만나러 가지도 못했다. 그들은 아하마의 수완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밤에 몰래 아하마의 저택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방안을 부탁했다.
아하마는 그들에게 내분으로 위험에 처한 사실을 감추라고 한다. 그저 해상태풍을 만나서 그렇게 된 것이니 실패의 원인은 그저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서라고 하여, 쿠빌라이를 속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목숨을 건지게 된다.
쿠빌라이의 무모한 대외확장, 그리고 장수들간의 권력다툼이 멀쩡한 수십만 장병의 생명을 앗아갔고, 그들을 이국타향의 원혼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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