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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원)

원명(元明)교체기: 동실조과(同室操戈), 동근상전(同根相煎) (II)

by 중은우시 2009. 1. 3.

 

4. 남방한인의 동근상전, 북방몽골인의 동실조과

 

차칸테무르가 죽자, 주원장은 아주 편안해 졌다. 더 이상은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이 없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전력을 다하여, 남방의 각 한인무장세력들을 손보기 시작한다. 1363년, 진우량과 파양호에서 대전을 벌여 결정적인 승리를 취득하고 강서 전부를 차지한다. 1364년 무창을 공격하여 함락시킴으로써 호북을 차지한다. 1365년, 호남, 광동을 평정한다. 1367년에는 장사성, 방국진을 완전히 패배시킨다. 그리하여 남방은 기본적으로 주원장의 휘하로 통일된다.

 

차칸테무르 사후 5년간, 주원장은 남방에서 이처럼 거대한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거의 이와 동시에, 북방 원나라의 몽골인들의 각 군대도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다만 어느 한 군대도 결정적인 우세를 점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원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날로 쇠약해진다.

 

차칸테무르 사후, 그의 직위와 군대는 전부 그의 양자인 코케테무르(이 코케테무르는 김용소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조민의 오빠로 한자이름은 왕보보-王保保-이다가 승계한다. 코케테무르는 군대를 이끌고 4개월후에 마침내 익도를 함락시키고, 산동을 철저히 수복한다. 다만, 코케테무르의 공적은 여기서 끝난다. 그는 부친처럼 조국을 품고, 세계를 보는 넓은 흉금이나 날카로운 안목이나 웅대한 전략을 지니지도 않았고, 부친과같은 휘황한 전적과 영광의 이력을 지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부친조차도 무시했는데, 하물며 그에게는 어떻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남방을 공격할 틈도 없이, 후원의 불부터 꺼야 했다.

 

바로 그 볼로드 테무르가 이번에는 장량필(張良弼)이라는 장군과 연합한다. 차칸테무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들은 즉시 하나는 산서에서 하나는 하북에서 코케테무르를 향하여 공격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지반을 점령한다. 코케테무르는 조정에 의지하여 분쟁을 해결하고자 여러번 글을 올린다. 원나라의 마지막황제인 토곤테무르(원순제)는 두 사람을 단결하게 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함께 한인들에 대항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천자가 여러번 화해하라는 조서를 내려보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 코케테무르는 상대방이 황제의 말조차 듣지 않는 것을 보자, 천하의 흥망에도 불구하고 출병하여 응전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남방은 돌보지도 않고, 내전을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원나라에는 다시 츄스젠(綽斯戬)이라는 간상(奸相)을 등용한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악명이 자자한 일들을 벌이게 된다. 원나라라는 죽어가는 거인의 몸에 심각한 칼질을 해댄 것이다.

 

먼저, 츄스젠은 자신이 대권을 독단하기 위하여, 비교적 현명하기로 이름난 또 다른 재상 타이페이인(泰費音)을 모함하여, 그를 파면시킨 후 자살하게 한다. 동시에 그는 죽어라 돈을 긁어 모았다. 승상의 자리에 앉은 그는 사람을 시켜서 가짜 화폐를 찍어내서 큰 돈을 번다. 원래 원나라에서 유행하던 화폐는 지폐였다. 츄스젠은 지폐를 찍어내기 쉽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시켜 대량으로 찍어내게 하여 금은으로 바꾸었고, 자기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재정혼란이 오고, 민생이 어려워졌다(아마 재상이 가짜 지폐를 발행한 것은 전세계 고금을 통틀어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뿐 아니라, 그는 황제가 그에게 볼로드 테무르와 코케테무르의 갈등을 조정하라는 명을 받자, 그 성지를 돈받아도 된다는 허가증으로 활용했다. 둘 중에서 누가 뇌물을 많이 주느냐에 따라 황제의 뜻을 그에 유리하게 전달한 것이다. 남쪽에서 돈을 많이 보내주면 남쪽에 대하여 황제가 너희보고 북쪽을 치라고 했다고 말해주고, 북쪽에서 다시 돈을 많이 보내면 북쪽에 대하여 황제가 너희보고 남쪽을 치라고 했다고 말해주었다. 조정한다는 구실로 실제는 양쪽의 싸움을 교사했다. 국사를 애들 장난으로 안 것이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활용했다. 이렇게 하니 당연히 양쪽의 원한은 더욱 깊어지고, 내전은 끝나질 않았다.

 

츄스젠의 각종 비행은 많은 신하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어사대신 루두르수(婁都爾蘇)를 위시한 언관들이 속속 탄핵을 했다. 그러나 츄스젠은 황태자와 결탁하여 이 일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루두르수는 상황이 좋지 않다고 보고 볼로드 테무르에게 도망친다. 츄스젠은 볼로드 테무르가 루두르수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여 볼로드 테무르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성지를 전하여 볼로드 테무르의 일체관직을 파면한다. 그리하여 볼로드 테무르가 대노한다. 그는 사신을 죽이고 명을 받지 않으며, 군대를 이끌고 북경성으로 몰려간다. 당시 경성에는 군대가 없었으므로, 원순제는 볼로드 테무르의 요구대로 츄스젠등을 파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츄스젠을 볼로드 테무르에게 보낸다. 볼로드 테무르는 츄스젠을 보고는 그를 조롱해서 말한다: 당초에는 내가 너에게 아부했는데, 이제는 네가 나에게 아부할 차례이지? 최소한 당초 내가 너에게 보냈던 칠보진주팔찌는 나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츄스젠은 바로 사람을 시켜 그 칠보진부팔지를 돌려준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받은 물건이 너무 많다보니 칠보진부팔지만 수십개였다. 어느 것이 볼로드 테무르에게 받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먼저 6개를 보냈더니 모두 아니라고 하고, 일곱번째 물건을 보고는 자신이 보낸 것이 맞다고 했다. 이로써 볼 때, 츄스젠이 나라가 어려울 때 얼마나 많은 재물을 긁어모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볼로드 테무르는 대노해서 소리쳤다. "임금의 곁에 있는 자가 이처럼 탐욕스럽다니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는 츄스젠을 죽여버린다.

 

사서에서는 츄스젠의 죄악을 얘기하면서, "츄스젠은 승상 페이타이인을 교살했고, 지폐동판을 도용하였고, 사사로이 조서를 위조했으며, 마음대로 관직을 임면했으며, 매관매직하고, 재판을 마음대로 했다. 재상의 직에 십수년을 있었는데, 천하의 팔개 성의 땅을 모조리 빼앗긴다. 그는 나라를 망친 간신이다. 그의 죄악을 추궁하자면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원나라의 망국은 츄스젠의 죄악이 가장 크다"

 

볼로드 테무르가 비록 츄스젠을 죽였지만, 그가 경성에서 한 행위는 황음무도했다. 동시에 그가 병력을 경성으로 끌고간 행위는 각종 갈등을 더욱 격화시킨다. 그리하여 코케테무르는 황태자와 연합하여 대군을 모아 남북 양쪽에서 그를 향해 진공한다. 원순제는 형세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볼로드 테무르의 행동이 말도 안되는 것을 보고, 보로테무르를 죽이도록 명한다. 그리고 코케테무르를 부재상 겸 천하병마대원수로 임명하여 북방을 안정시키고 남방을 수복하는 대사를 맡긴다.

 

누가 알았으랴. 코케테무르가 젊은 나이에 부재상 겸 천하병마대원수의 자리에 오를 줄을.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욱 그를 경시하게 된다. 정재상(正宰相)이 우선 그에 협력하지 않았고, 일마다 뒷다리를 걸었다. 코케테무르는 우울해져서, 경성을 물러난다. 그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군공으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누가 알았으랴, 군대도 조정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무시했다. 그의 부친과 함께 의군으로 참전했던 노전우로 지금은 섬서성장 겸 군구사령관격의 지위에 오른 이사제가 먼저 그에 반대한다. "너 어린아이는 그저 이제 막 둥지를 빠져나온 어린 새이다. 옛날에 나와 네부친이 거사를 일으킬 때 너는 아직 젖을 먹고 있었다. 어찌 감히 나를 지휘하겠단 말인가?" 그리고는 몇 사람이 연합하여 그를 공격했다.

 

코케테무르는 우울에 분노가 겹친다. 어렵사리 볼로드 테무르를 처리했는데, 어찌 또 하나가 나타나는가. 모두 한족이 내부투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몽골인들이 배우다 배우다 어찌 이런 것까지 배웠단 말인가. 너희가 원나라가 어찌되는지 상관하지 않는데, 나라고 신경쓸 필요가 있겠는가? 죽으려면 그냥 같이 죽어버리자. 그리하여,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상대방과 전투를 개시하게 된다. 여기에 황태자의 세력, 장량필의 군대까지 있으니, 서로 견제하고 싸움만 벌였다. 그리하여 형세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내전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5. 몽골인들이 자중지란에 빠졌을 때, 주원장은 가볍게 큰 이득을 챙긴다.

 

바로, "물필선부야, 이후충생지(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물건이 썩고나서야 벌레가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원나라 말기에 이런 괴이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다니, 주원장이 남방에서 순조롭게 모두 통일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1367년, 기본적으로 남방을 통일한 주원장은 다시 머리를 북방으로 돌린다. 보니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원래 분열되었던 난방은 이제 통일되었다; 그런데 원래 통일되었던 북방은 현재 명목적으로는 여전히 통일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몽골인들의 동실조과가 한창 기세를 이루고 조금도 끝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고통치자인 원순제는 신하들이 그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것을 보고 계속 그만두라고 호소했지만, 듣지 않자, 고민만 하고 국가일에 흥미를 잃게 된다. 그리하여 매일 후궁에 틀어박혀 건축과 목수일을 연구한다. 그가 설계한 용선(龍船)과 방옥(房屋)은 정교하고 아름다워 "노반천자"라는 칭호를 얻을만했다.

 

옛날에 징기스칸이 부하에게 이렇게 말했었따: 우리 몽골인들은 단결해야 한다. 그래야 천하무적이 된다. 몽골인들은 그의 손아래 단결하여, 과연 일백년간 천하무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자손들은 그의 말을 잊어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원래 억지로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힘들게 다른 사람의 위에 앉아서 협소한 공간에서 행활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오히려 그들은 대초원으로 돌아가서 원래대로 자유롭게 노래를 크게 부르면서 행운유수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1367년, 남방의 동근상전에서 승리한 주원장이 북방을 다시 노려보았을 때, 북방의 통치자는 이미 남방은 거의 잊어버린 듯이 보였따. 아직도 내전에 골몰하고 있었다. 주원장은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지럽게 싸울 때 싸우지 않다가 만일 징기스칸, 차칸테무르같은 걸출한 인물이 다시 나타나서 몽골인들이 단결한다면, 한인들은 영원히 머리를 내밀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주원장은 북벌을 명한다.

 

1367년 십월, 서달(徐達), 상우춘(常遇春)등이 대군 25만을 이끌고 북방으로 진격한다.

 

주원장은 역사상 북방이 남방을 정복한 적은 있어도, 남방이 북방으로 진공하여 승리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역사가 재연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재삼 서달에게 당부했다. 조심해서 천천히 가고 안정되게 확보하고 안전하게 싸우라고. 일단 상황이 좋지 않으면 바로 물러나라고 했다. 누가 알았으랴, 이런 당부가 모두 불필요한 것이 될 줄은. 명나라군이 나아가자, 거의 무기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산동, 하남, 섬서등지의 원나라군은 바로 깃발을 내걸고 항복하거나, 아니면 소문만 듣고 도망쳤다. 전투라고 할 것은 몇이 되지 않았다. 낙양에서의 전투가 전투다웠다. 당시 낙양수비장수는 토인테무르인데, 낙양성밖에 5만의 군대를 집결시켜, 명나라군과 일전을 벌이고자 했다. 그러나, 상우춘이 일격을 날리자, 즉시 궤멸했다. 당시 차칸테무르가 10년을 들여 수복한 섬서에서 산동까지의 광대한 중원지역을 명나라군은 겨우 8개월만에 모두 점령한다.

 

속담에 "형제간에 안에서 싸우더라도, 바깥에 적이 있으면 함께 대적한다(兄弟鬩於墻, 共御外侮)"라는 말이 있다. 몽골인들은 중국을 백년간 점령하고 있으면서 뭐든지 다 배웠다. 바로 이 간단한 이치는 배우지 못했다. 원나라군대는 수십만정예인데, 이때 전부 명나라의 진격을 본척만척 했다. 여전히 자기들끼리 서로 죽고 죽였다.

 

1368년 팔월, 명나라군대가 북경에 다가갔다. 원순제는 삼궁의 후궁, 황태자를 데리고 북경성을 버리고 도망친다. 모조리 몽골대초원으로 가버린 것이다. 나머지 코케테무르, 이사제등 중병을 손에 쥐고 내전을 잘했던 군벌들은 명나라군대가 몰려오자, 한번도 싸우지 않고 모조리 도망쳤다(몽골대초원으로 돌아갔다. 거기에 가서도 계속 싸웠는지 여부는 사서에 기록이 없다.)

 

이렇게 하여, 주원장은 10개월만에 아주 적은 댓가를 치르고, 가볍게 북방 전부를 빼앗고, 중국을 통일하고, 대명황조를 건립한다.

 

그래서, 원나라는 비록 명나라에 의하여 대체되었지만, 주원장의 손에 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복통등 농민반란군으로 어지러워지고, 나중에 자신의 내부부패와 분쟁으로 마지막에는 아예 한인에 대한 통치를 포기하고 대초원으로 도망쳐 버렸다. 주원장은 인연이 닿아서 남방의 동근상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북방의 동실조과중에 어부지리를 취득한 것이다. 주원장도 자신의 승리가 너무나 쉽게 얻은 것을 알았다. 개략 원순제가 싸우지 않고 도망쳐준데 감사해서인지, 송렴이 <<원사>>를 편찬할 때, 특별히 이렇게 썼다: "대명황제는 제(원나마 마지막황제)가 천명을 따라, 피해서 가주었으므로 특별히 그의 호를 순제(順帝)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