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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원)

중국 원나라때 마라톤경기가 있었다

by 중은우시 2009. 7. 16.

글: 정계진(丁啓陣)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394년까지, 모두 293회의 고대 올림픽경기가 열렸다. 마라톤이 경기종목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현재 널리 알려진 마라톤은 1896년 제1회 현대올림픽대회에서 시작되었다. 장소는 그리스의 아테네이다. 이를 보면, 마라톤이라는 것은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스포츠경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가 짧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일찌감치 원나라(1271-1369)때 마라톤과 유사한 장거리달리기경기가 있었다.

 

원나라때 도종의(陶宗儀)가 쓴 <<남촌철경록(南村轍耕錄)>>의 '권1'의 '귀유적(貴由赤)'이라는 조(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귀유적(貴由赤)"이라는 것은 빨리 가는 것(快行)이다. 매년 1회 시행한다. 이름은 방주(放走)라고 불렀다. 다리 힘이 빠른 자가 상을 받는다. 그래서 감독하는 관리가 현장에 가서, 사람의 수를 확인해서 나란히 세우고 밧줄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서로 앞으로 가겠다고 다투는 일이 없다. 그 후에 밧줄을 놓아버리면, 앞으로 뛰어나가는 것이다. 대도(大都)에서는 하서무(河西務)에서 출발한다; 상도(上都)에서는 니하아(泥河兒)에서 출발한다. 삼시(三時)가 넘으며, 180리를 달린다. 황제의 앞에까지 가서 엎드려 만세를 부른다. 먼저 도착한 자는 은 1병(餠)을 하사하고, 나머지는 비단과 베필을 서로 차이있게 하사한다.

 

주석:

귀유적: 몽골어, 빨리 달린다는 뜻임

하서무: 마을이름. 지금의 천진시 무청 서북운하의 서안이다. 원나라 지정25년(1288년)에 이곳에 조운사를 설치하여, 양식을 북경까지 운송하는 업무를 책임졌다.

대도: 지금의 북경시

상도: 지금의 내몽고 정남기 동섬전하북안이다. 쿠빌라이가 중통원년(1260년)에 이곳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개평부라 칭한다. 4년후, 개평부라는 칭호는 상도로 승격된다. 원나라때는 상도와 대도를 합쳐서 이도(二都)라고 나란히 불렀다.

 

위의 기록을 보면, 우리는 원나라의 장거리 달리기가 다음과 같은 10가지 특색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이름을 '방주'라고 하였다. 아마도 풀어놓고 달리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2. 공평하게 하기 위하여, 출발지에 밧줄을 걸어놓았는데, 지금의 출발선과 같은 것일 것이다.

3. 현대마라톤과 같이 속도를 겨룬다.

4. 이는 정부가 조직한 경기이고, 조정관리가 현장에서 감독했다.

5. 전체거리는 180리로, 90킬로미터이다.

6. 일반적으로 3개시진 즉 6시간이 소요되었다.

7. 도착점은 황궁에 설치되었고, 황제가 친히 현장에 나왔다.

8. 매년 1회 개최되었다.

9. 개최도시는 2곳인데, 모두 당시의 수도였다.

10. 상을 내리는 방법은 1등에게는 은병 1매가 하사되었는데, 이는 금메달과 같은 것이다. 그 은병은 분명히 진짜 은으로 만들었을것이고 크기도 컸을 것이다. 가치가 지금의 금메달보다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등수에 따라, 각각 수량이 서로 다른 능라주단을 내렸다.

 

이를 보면, 원나라의 "방주"는 현대마라톤과 닮은 점이 많다. 중국인으로서, 최소한 두 가지는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중국의 마라톤(방주)이 서방의 마라톤보다 6백년이나 앞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마라톤의 거리가 서방마라톤의 두배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서방마라톤의 표준거리는 겨우 40.195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여기까지 쓰고 그친다면, 분명히 고수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분청(憤靑, 분노한 청년)취급을 당할 것이다: 봐라! 여기에 우리가 옛날에는 너보다 더 잘났다고 우기는 아Q가 또 하나 나타났다고.

 

나는 머리 속에 정말 아Q와 같은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그러나, 머리에 아Q라는 모자가 씌워지는 것은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몇 마디 말을 덧붙여야 겠다.

 

서방의 마라톤은 민간경기이다. 그 목적은 개략 다음과 같다: 자아에 도전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며, 대중들이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마라톤은 어용행사였다. 그 목적은: 황제를 칭송하고, 황제에게 잘보이는 것이었다. 즉, 최고통치자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고, 최고통치자에게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서방의 마라톤은 민간의 축제였다면, 중국의 마라톤은 황제의 축제였다. 이는 중국과 서방문명의 큰 차이이다. 이것은 또한 "근대화가 바로 동방이 서방에 종속되는 과정"(마르크스의 말)이라는 근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방에 있는 것이, 우리 중국에도 있었고, 중국에 더 먼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그다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서방의 발명은 비록 중국보다 몇백년씩이나 늦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잘 발전시키고 잘 키웠다. 그렇게 하여 세계를 점령했고, 전인류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중국의 발명은 통상적으로 문을 걸어잠그고 혼자서 즐기며 노는 것이었다. 심지어 단지 한 사람이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천년 문명사를 지니고 있고, 국토면적이 천만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국가로서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