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효원(江曉原)
장생(長生)은 인류의 오래된 꿈이다. 이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오늘날 축하할 때 많이 쓰는 "영월불멸하라" "XX에 영원히 살아있으리라"는 등과 같은 말의 최초의 쓰임을 소급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하나의 오래된 신념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대인들은 영생(永生)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서방의 기독교에는 예수부활과 같은 류의 것도 영생의 관념과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비교적 실질을 숭상했다. 영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서 차선, 즉 장수를 추구했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 방면에서 이상적인 전설적 인물은 바로 팽조(彭祖)이다. 그는 800살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었다. 후세 중국인들 중에서 자주 이름을 "수팽(壽彭)"으로 짓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놀라운 점은 동서고대문명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초기문헌에서 추장 혹은 국왕은 놀라울 정도로 장수했다. 먼저 서방을 보자. 예를 들어, <<구약. 창세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셈 600살 : 홍수이후 2년, 셈은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고, 셈이 아르박삿을 낳은 후 다시 500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아르박삿 438세: 아르박삿이 35살까지 살아서 살라를 낳았다. 아르박삿이 살라를 낳은 후 다시 403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살라 433세: 살라는 20세까지 살아서 에벨을 낳고, 살라는 에벨을 낳은 후 다시 403년을 살고, 아들 딸을 낳았다.
에벨 464세: 에벨이 34세에 벨렉을 낳고, 벨렉을 낳은 후 다시 430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벨렉 239세: 벨렉은 30세에 르우를 낳고, 르우를 낳은 후 다시 209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르우 239세: 르우는 32세에 스룩을 낳고, 스룩을 낳은 후 다시 207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스룩 230세: 스룩은 20세에 나홀을 낳고, 나홀을 낳은 후 다시 200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나홀 148세: 나홀은 29세에 데라를 낳고, 데라를 낳은 후 다시 119년을 살면서, 아들 딸을 낳았다.
데라 205세: 데라는 모두 205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
아브라함 최소100세: 그의 아들 이삭을 낳ㅇ르 때 아브라함은 나이 100살이었다.
다른 성경을 보면, 유사한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모세가 죽을 때 120살이었다"
기묘한 것은 고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사기. 오제본기>>를 보자:
황제:111세 혹은 300세
전욱: 98세
제곡: 105세
제요: 118세 혹은 117세 혹은 116세
제순: 100세
우: 100세
탕: 100세
상술한 이런 기록에 대하여 중국고대인들도 일찌기 상식에 비추어 회의를 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확실히 장수했다고는 믿었다. 예를 들어, <<황제내경: 소문>> 권1의 "상고천진론"에서는 황제의 입을 빌어, "천사"에게서 묻는다: 내가 듣기로 상고의 사람들은 춘추가 모두 백세를 넘겼는데도 동작이 쇠하지 않았다; 오늘의 사람은 반백이 되면 동작이 쇠하는데 세상이 달라져서인가, 사림이 무엇을 잃어서인가" 천사 기백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상고의 사람들은 생활에 절제가 있어서 장수했다; 오늘의 사람은 향락을 탐하여 수명이 짧아졌다."
오늘의 상식으로 보면, 이들 고대인들에 대한 고대의 기록은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첫째, 현대고고학과 의학에 따르면, 수천년전의 인류의 평균수명은 아주 짧았다. 그런데 이들 왕 혹은 추장들이 보편적으로 장수했을까? 그리고 당시 인류 평균수명의 몇배 심지어 수십배에 달하게 되었을까? 둘째, 현대고고학과 의학에 따르면, 인류의 평균수명은 점차 늘었다. 후세 왕 혹은 추장의 물질생활조건이 대폭 개선되었음에도, 왜 그들의 수명은 오히려 단축되었을까?
이상의 난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해석이라면 최소한 아래의 두 가지가 있다:
1. 고대의 왕 혹은 추장들은 일찌기 장수의 방법을 획득했었다. 그리고 이들 방법은 후세에 실전되었다. 혹은 인도적인 이유, 윤리적인 이유등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진시황, 한무제가 미친듯이 장생불사를 추구한 것은 아마도 고대에 일찌기 장생불로의 방법이 있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2. 고대의 초기에 어떤 왕 혹은 추장은 지구상의 인류가 아니라, 외계인이거나 외계인의 근친일 것이다. 그들은 초인적인 능력과 기괴한 용모를 가지고 지구인들보다 훨씬 장수했다. 그러나 그들이 지구인과 혼인하면서, 그들의 후대는 점차 이러한 특징을 잃어버렸다.
현대 과학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다:
1. 고대인의 평균수명은 비록 아주 짧았지만, 여전히 극소수의 개인은 아주 장수했다. 개국의 군주는 반드시 체력이나 지력의 두 측면에서 아주 우수한 자들이어야 잔혹한 왕권쟁탈전에서 이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승리한 왕이나 추장은 체력이 우수할 뿐아니라 이긴 후에는 천하가 그를 돌보았다. 아주 좋은 생활조건을 유지할 수 있어서 쉽게 장수할 수 있었다.
2. 고대초기의 왕들의 연도기재는 보편적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들 왕이나 추장은 그렇게 길게 살지는 못했다. 초기문명에서 공적이 큰 왕실조상은 신으로 모셔졌는데, 신이라면 신으로서 인간세상에 있었던 기간, 그가 통치한 부락이나 왕국의 연대는 모두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과장에 대하여 의문을 품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에 대하여 인간의 기준을 가지고 형량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기왕들의 연대는 모두 오래전의 일이어서 정확한 연대를 고증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하면 이들 기재의 진실성을 기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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