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수)
언론계의 친구들도 안녕하시고, 적십자의 여러 친구, 영도(領導)...제가 영도라고 하면 안되겠군요. 우리는 모두 마음으로 친구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적십자에서 일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실 강연이라는 건 제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최고학부의 강연대위에 서다니, 자격이 없습니다. 강연할 자격이 안됩니다. 저는 정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197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북경의 광교소학(廣橋小學)이라는 데서 1학년을 공부하다가 붙잡혀서 무술을 익히러 갔습니다. 무술을 익히기 시작하자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시대모토가 공부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경력을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소개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인생에서 느낀 점을 같이 느꼈으면 합니다. 만일 이런 느낌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들어주십시오. 만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웃어넘겨주십시오. 헛소리다. 이연걸이 마구 지껄인 것이다라고. (웃음, 박수)
저는 북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살때 부친이 돌아가셨고, 형님 두 분과 누님 두 분이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8살때 무술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냐구요? 전세계의 기자들이 저에게 여러번 물어봤었습니다. 나도 왜 무술을 익히기 시작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학교에서 그 체육학교를 소개해주었고, 교사가 너는 무술을 익힐 재목이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행운의 별이 나를 붙잡은 것인지, 내가 행운의 별을 붙잡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첫째 달에 1등을 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아주 힘들게 익혔습니다. 그래서 3개년후에는 중국의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소년이었죠. 12살때, 당시는 성년과 미성년을 가리지 않았고, 18세이하로 했습니다. 내가 시상대에 섰는데, 2등을 한 사람이 나보다 머리가 위에 있었습니다. 사실 자기의 개성이나 인생관이나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완전히 지도자, 어른,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성장과정이 죽 그랬습니다. 저는 연속 5년간 챔피언을 했는데, 다행스러웠던 것은 이 5년동안 11세부터 나는 운좋게도 중국을 대표하여 전세계를 방문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갔을 때는 1974년에 닉슨을 접견했습니다. 74년부터 79년까지 5년동안 아프리카의 10여개국가를 가보았고, 유럽의 많은 국가를 가보았습니다. 이라크, 시리아도 가보았습니다.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도 가보았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11살때부터 시작하여, 어른들이 하는 말을 다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저에게 한가지 측면만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은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말해준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내가 본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11살짜리가, 중국에는 그 때 사이다는 북빙양 사이다만 있었고, 아이스크림도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십여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있는 것을 봤을 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모두 한번 생각해보세요.
16살때까지, 저는 점차 자기입장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느끼기로, 어른들의 말이 완전히 맞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저는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미 5년간 챔피언이었고, 계속한다면 육년째, 칠년째,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겠지요. 그래서 저는 영화를 찍기로 선택했습니다. 영화는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17살때부터 <<소림사>>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주 성공했어요. 결과적으로 오늘 날 북경으로 돌아오든 상해를 가든 누구든지 만나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당신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지금 적십자회의 회장님은 아마 곧 예순이 되실 나이일 겁니다. 그런데 그분도 당신이 어렸을 때 제 영화를 보며 자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웃음. 박수)
제 말은, 제가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화를 찍은 후에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적으로 뿐아니라 제가 여러분들 나이에 가까워졌을 때부터, 인생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점과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해졌습니다. 하룻밤만에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겉으로는 겸손한 척 면사를 쓰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어어어' 하게 되는 겁니다. (웃음) 아주 득의만면하게 되었죠. 첫번째 영화를 찍을 때는 하루에 1위안의 보수를 받고 <<소림사>>를 찍었는데, 찍고나니 돌연 어떤 사람이 600만위안의 수표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600만, 1982년의 일입니다. 나에게 영화 2개를 찍는 돈으로 600만위안을 내밀었습니다. 그 시대에 얼마나 큰 유혹이었겠습니까. 너무나 달콤했습니다. 저는 정말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그래선 안되었습니다. 속해 있는 직장이 있었고, 속해 있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만일 받는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면 모조리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니, 여러분들은 사실 행복한 겁니다.
한 젊은이에게 있어서, 돈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아주 잔혹했습니다. 영화를 찍고나서 돌아왔습니다. 영도의 말에 따라 두번째 영화를 찍을 때는 1일당 2위안이었습니다. 세번째 영화를 찍을 때는 1일당 3위안. 이게 한 젊은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겠습니까. 동시에 자아가 점차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자아중심의 각도로 세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스승, 선배, 많은 것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입니다. 19살이후 24,5세까지 계속해서 자아를 중심으로 사회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감히 표현하지는 못했고,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말했다가는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거친 후, 나중에 90년대부터, 자기가 오너가 되어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돌연 각도를 바꾸어 인생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나는 급여를 받는 입장이었으므로 매일 돈을 달라고 하고, 이걸 해달라 저걸 해달라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사장이 되고나니, 나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가 많았습니다.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예전에 내가 했던 일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저는 비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격은 받았습니다. 제가 <<소림사>>를 찍은 이후, 다리가 부러진 것입니다. 아주 심했습니다. 나는 우리 북경대학의 제3부속의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시 7시간의 수술이 끝난 후에 의사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증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길을 걷는데 문제없도록 하는 것까지이고,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고, 병원에서는 3급장애자증명서를 끊어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3급장애자증명서이면 평생 공무로 다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살밖에 안되었고, 거의 아시아의 모든 사람이 다 알아보고 잘나가는 때에, 쿵후실력이 대단하던 때에, 나 자신은 인생 최대의 곤경에 처해지게 된 것입니다. 내가 달리고 뛰어넘을 수 있을지를 아무도 확실히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그 충격은 아주 컸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80년대를 전체적으로 보면, 자아중심, 자아팽창, 자아고통의 기나긴 단계였습니다. 90년대가 되어서야 점차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젊은이들이 겪는 단계를 겪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 이익, 물질을 위하여 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하여.
90년대에 들어선 후,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배운 무술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음과 양의 두 측면의 것을 얘기해주었었는데, 나는 항상 음의 측면에서 인생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아를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때 홍콩에 있었고, 저는 <<동방불패>>를 찍고 있었습니다. 감독과의 문제, 영화회사와도 문제등등이 모두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너는 서극 감독과 궁합이 그렇게 잘맞는데, 어떻게 문제가 생겼느냐고. 그러나 그도 입장이 있고, 나도 입장이 있으니,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지못하겠으면 보십시오. 스승과 학생간에도 문제가 있고, 부인과 남편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내 생각이 있고, 너는 네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양이 맞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확실히 기억합니다. 기자가 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서극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는 너를 길러주지 않았느냐?" 당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시 저는 중국철학을 이미 매우 좋아하고 있었고, 비록 읽지는 않았지만, 음양에 대하여도 알았습니다. 당시 저는 말했습니다. 만일 서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나, 첫번째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의 부모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감사해야 할 것은 국가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에게 무술을 배우도록 선택했기 때문이다. 세번째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그들이 나를 길러주었다. 네번째 감사해야 할 사람은 <<소림사>>의 감독이다. 그가 나를 발견했다. 다섯째 감사해야 할 사람은 많은 영화회사들이 나를 불러 영화를 찍게 해준 것이다. 여섯째 감사해야 할 사람은 서극 감독이다. 이것은 내가 "양"의 입장에서 한 감사의 관점이었다. 다만, 다는 동시에 기자에게 말했다. 나는 음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고. 나는 이 세상에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가 좋아서 나를 낳은 것이다. 정말이다. 우아한 표현은 아니지만, 내가 이 세상에 오겠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둘째, 국가는 인재를 원했고, 내가 그런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내 스승도 중국의 전국챔피언을 배출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하나만 기른 것도 아니고, 내가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챔피언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 자신도 거기에 공헌한 것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넷째, 영화감독이 주인공을 뽑는데,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다른 사람을 뽑지 않고 너를 뽑았다면, 이는 네가 주인공을 맡을 재능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재능이 있어서 주인공이 된 것이다. 다섯째, 영화회사가 나를 발견한 것은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부른 것일 것이다. 여섯째, 서극도 내가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원래 음과 양의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각도에서 같은 문제를 쳐다보면, 답은 서로 다르게 된다. 나는 이 각도에서 생활을,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내가 홍콩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미국에서 몇년간 일을 했으며, 나중에 유럽에서도 몇년간 일을 했다. 지금까지 이미 나는 인생의 기본관념을 바꾸었다. 나는 한 각도에서만 문제를 보지 않는데 습관이 되었다. 나는 양쪽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중국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고, 미국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여러분이 한 사람으로서, 인생관을 세우려고 할 때, 자기만의 굳건한 사고방식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진리는 아니다. 반대편에 선 사람은 아마도 서로 다른 문화적인 배경,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하여, 너와 반대되는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다만 그것도 진리는 아니다. 그래서 생명은 한 길을 쭉 걸어서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인류는 하나의 "원"이라고 생각한다. 무극(無極). 무극은 바로 원이다. 원이 있은 이후에 천지가 있으니, 음양이다. 천지가 있고나서 사상이 있다. 그 후에 팔괘가 있는 것이다. 팔괘 64효으로 변해서 전체 인류가 나온다. 만일 너무 자아를 중심으로 한다면, 이것은 내 개인의 경험인데, 아주 고통스럽게 된다. 자아중심을 버리게 되면, 아주 즐겁다. 이것은 내가 지금도 자주 배우고 자주 하는 일이다.
내 말이 너무 재미없지요. 미안합니다.(열렬한 박수)
얘기가 재미없을 때 한마디 하겠습니다. 사실 97년때 저는 은퇴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물질은 영혼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70년대부터 한번 출국했다 돌아오면서 모친에게 시계를 하나씩 사드렸습니다. 다음에는 시계를 사서 누나를 드렸고, 다음에는 형님을 드렸습니다. 나중에 이것만으로는 만족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전거를 하나 샀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가 모두 자전거를 하나씩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텔레비전, 칼라텔레비전, 70년대에는 아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냉장고, 세탁기를 샀습니다. 그 이후에는 집을 샀습니다. 끝도 없이 가정을 위해서 일하고 자기를 위해서 이루어냈습니다. 당연히 나 자신은 더 좋은 것을 샀습니다. 어느 정도가 되자, 자동차도 있고, 집도 있고, 권력도 있고, 욕망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곧 발견합니다. 나 뿐이 아니라, 물질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나의 내심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주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가난한 친구가 많습니다. 아주 부자인 친구도 많습니다. 아주아주 돈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의 고통을 만드는 원인은 원래 물질만이 아닙니다. 물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영혼은 또 무엇인가? 나는 그때부터 깨달았습니다. 안된다. 이건 내가 걸어야할 길이 아니다.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도대체 무엇인지를. 정말입니다. 나는 물질은 어느 단계에서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이게 없으면 공부에만 신경쓸 수가 없고, 가족을 돌볼 수가 없고, 어떤 일을 전력을 다해서 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단계에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다만 그 단계를 넘은 후에는 질은 바뀌지 않지만 양이 바뀌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관점은 어떤 사람은 한 달에 1천위안이면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5만위안, 50만위안을 바랍니다. 이것은 양의 차이입니다. 50만을 바라는 사람에게 1천위안을 주면 그는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돈과 물질은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나는 자주 농담으로 말합니다. 여기 앉아계신 분들이 정말 돈을 벌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이가성이라고 칩시다. 그래도 앞을 보면 빌 게이츠가 있습니다. 돈이 더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빌 게이츠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물질은 영혼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도가 되었습니다. 다시 우주를 보고, 생명을 보고 물질구조가 무엇인지, 영혼구조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2003년에 무의식중의 한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보고난 후 깜짝 놀랐습니다. 2003년, 중국에서 28만명이 자살했다는 겁니다. 당시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20여만, 모든 사람에게 형제자매,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친구가 있을텐데, 10배의 고통이라고 생각해도, 수백만명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당시 영혼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일정한 단계가 되면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가? 어떻게 이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의 능력으로 이 사회를 위하여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정했습니다. 영화 <<곽원갑>>을 통하여 나의 42년동안 걸어온 심리적인 역정을 얘기하자. 자주 자아를 중심으로 포지셔닝해서 사회를 바라보고, 생명을 보고, 나의 스승은 어떻고, 나의 동료는 어떻게, 누가 나에게 잘해주고, 누가 나에게 못하는지, 습관적으로 자아를 중심에 놓게 됩니다. 만일 일찌감치 다른 입장에 서서 생명을 보았더라면, 나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고, 무엇이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인지. 진정 가지고 싶고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올바른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벤츠를 아주 갖기를 원한다고 할 때, 벤츠를 진짜 가지게 된다면 골치아픈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관리에도 돈이 많이 들고, 보험료도 비쌉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양의 차이는 있지만, 질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양의 차이를 여러번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내 친구중에 대통령도 있는데,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고민이 있습니다. 스타에게도 스타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스타가 되고싶어, 그 고통까지도 사랑할 거야. (웃음) 정말입니다. 나는 이런 방향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방향도 아주 좋습니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좋은 것의 배후에는 무엇을 대가로 내야하는지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각도에서 생명을 보면, 그들의 찬란한 배후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는지 보입니다.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자살하는지 보셨지 않습니까? 저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다만 나는 아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저 그들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어떤 종교에서도 불교이든 천주교이든 기독교이든 오랜기간동안 검증을 거친 종교에서는 모두 자살을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자살은 그저 육체의 고통을 잠시 해결해줄 뿐이고, 종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하면 할 수록 옆길로 빠지는 가요? (웃음, 박수)
내가 <<곽원갑>>을 찍은 것은 완전히 책임감에서입니다. 내 생각에 사람은..여러분은 모두 나보다 학문이 뛰어납니다. 우리가 이미 "영혼햇볕공정"을 하지만, 우리는 먼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하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광고가 있고, 거기서 얘기하는 것은 각종 물질입니다. 다만, 물질의 본질이 무엇인가? 우리는 계속 연구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엇인가? 나는 친척이 있는데, 내 조카딸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북경대학 의과대학에서 공부합니다. 의학의 각도에서 이해해보기로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해부하면, 여기 서있는 이연걸을 해부하면, 심장을 꺼내면, 그저 하나의 심장입니다. 모든 신체부위를 해체하게 되면 모두 학술적인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에서는 '이연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공능이 우리의 사고를 통제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것은 수천년동안 연구한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중요부분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낸 후에, 우니를 비로소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여러분은 마음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 개인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언론자유, 사상자유, 창작자유, 종교자유등등을 얘기하는데, 내가 보기에 많은 자유의 사람들 속에서 아직 마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이미 물질, 이익, 명예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내가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무언가도 필요로 하고, 무언가도 필요로 합니다. 그 무언가가 없으면 나는 고통스럽습니다. 그 무엇인가를 가지면 더 좋은 것을 가지고자 합니다. 여전히 그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말하면 나는 기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말하면 견디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다른 사람의 말 속에 사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미디어 아래에 사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내가 나쁘다고 하면 내가 고통받고, 다른 사람이 내가 좋다고 하면 내가 즐거워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그림자 아래에서 변형된 생활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풀어주어야 합니다. 내 생각에 인류는 중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전세계의 사람이든,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행복과 쾌락입니다. 이는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외에 사람들이 공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무리속에서 생활하고 있고, 무리속에서 관심과 사랑과 기여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동물들도 보호와 사랑을 압니다. 저는 배우로서 과거 몇년동안 최근 몇년동안 자주 강조했습니다. 사실 내가 목표로 한 아주 중요한 일부분은 바로 미국의 관중에 대한 것입니다: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나는 계속하여 나의 작품에서 이런 사상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사실, <<곽원갑>>의 아주 중요한 정보의 하나는 바로 사람들에게 "무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폭력은 다른 사람의 육체를 정복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정복할 수 없다. 오로지 사랑뿐이다" (열렬한 박수). 정말입니다. 단지 사랑의 힘만이 전체 인류의 영혼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오늘 오전에 많은 매체에서 계속 말해왔는데, "이연걸, 너는 이렇게 많은 영화를 찍었는데, 이전의 <<황비홍>>이 그렇게 좋았는데, 네가 미국에 간 후에 좋지 않은 영화만 많이 찍는 거냐". 저도 인정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중국관중들 중에서 나의 최근 작품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정반대로 지구의 다른 한쪽 끝에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나의 최근 영화를 좋아합니다. 하나의 문제에 두개의 답안입니다. 제 말은, 내가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가? 도대체 일부분의 사람이 보는 영화를 찍을 것인가? 전세계의 사람이 보는 영화를 찍을 것인가? 내 생각으로, 중국인으로서, 북경이라는 이 땅에서 자란 중국인으로서, 5천년문화속에 자란 중국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중국인이 쿵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 싸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은 아주 넓은 흉금과 각중 문화와 각종 서로 다른 견해와 서로 다른 종교를 포용하고, 사랑의 정보를 전파한ㄷ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가 진심으로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대에 이런 사고방식을 전세계에 전해주기 바랍니다(열렬한 박수)
민족주의사상은 아주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단결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자라서, 우리 중국경제가 갈수록 강대해지면, 주변의 많은 나라들은 아마도 불편해할 것입니다. 주변에 갑자기 강대한 사람이 생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국가상황에 맞아서, 적십자의 정신을 펼쳐서, 세계의 고통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게 된다면, 이전의 세계의 어느 곳에나 중국음식점이 있는 것에서, 세계의 고통이 있는 곳이면 바로 중국인이 함께한다는 것으로 바꾸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입니다. 다시 그 정화를 끄집어내서, 고통이 있는 곳이나, 즐거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적십자가 있고, 중국인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노력한다면, 우리 중국인의 진정한 흉금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박수) 그래서, 앞으로 저는 적십자와 협력하고자 합니다. 이 50만위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하자면, 이름을 낸 것은 저이만, 돈을 내는 건 제 처입니다. (웃음. 박수). 여자는 남자의 뒤에 서 있지만, 나는 그녀에게 아주 감사합니다. 돈을 내서, 모친으로서 청소년에게 관심을 가지고, 전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나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더 많은 중국인들이 청소년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지혜의 눈으로 보자면, 하나의 몸과도 같이 5대주는 당신의 심장, 간장, 비장, 폐, 신장에 해당합니다. 어느 한 곳이 감염되면, 예를 들어 아프리카가 감염되면 언젠가는 몸 전체로 퍼지게 됩니다. 만일 이 곳을 처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몸 전체가 감염되는 것입니다. 나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민족에 대하여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동시에 나는 여러분들이 전체 인류가 하나라는 입장에 서서 사회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의 조상들이 마음을 펴고 크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이렇게 강연대에 서있지는 않았고, 앉아서 묻는데 답변했었습니다. 삼십분이 되었습니까? (웃음)
나는 적십자와의 장기협력을 생각한 것은 내가 이전에 쓰나미때 죽음의 곁을 지나왔을 때부터입니다. 바닷물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번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죽음의 느낌은 컸습니다. 돌아온 이후 나는 기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 기금의 이름은 "일기금(壹基金)"입니다. 중국부터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홍콩에서도 일하고, 미국에서도 일하지만, 각지의 법률이 다르므로, 우리는 법률에 따라 일을 하고 절차에 따라 일을 해야 하므로, 나는 머지 않은 장래에 이 기금을 만들겠습니다. 한 사람이 한 달에 1위안을 내면 낙숫물이 모여 바다가 됩니다. 이것은 사랑의 바다입니다. 중국부터 시작해서 전세계로 퍼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돈은 아주 투명하게 적십자의 "영혼햇볕공정"에 드리겠고, 일부분은 자연재해에 쓸 것입니다.
거의 됐군요. 만일 물어볼 것이 있으면 제가 답변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아주 성의있게 여러분들이 묻는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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