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북대와 청화

북대(北大)와 청화(淸華)

중은우시 2007. 5. 6. 23:33

"많은 사람들이 평생 첫번째 자부심은 북대와 청화의 학교마크를 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수십년의 창상을 겪은 후, 여전히 스스로를 '북대인' 또는 '청화인'으로 부르며 그들의 황금시기를 보냈던 곳을 그리워한다"

 

1998년 북대개교100주년에 이방(李方)이 쓴 <<북대는 샘물, 청화는 용암>>이라는 글은 "북대청화비교학"의 대표작이다. 두 학교간에 "그동안 어느 정도 서로를 무시하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소개하면서, 이후 두 학교의 기업가들에 대하여 예언을 곁들이고 있다: "북대인들은 자부심으로 유명하다. 세상에서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친구를 모으고 동류를 찾거나 하지 않는다. 청화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천연적으로 집단협력정신을 타고난 사람들같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이 가장 많은 것은 청화대학졸업생이다. 그들은 공동창업하는 비율이 아주 높다. 이러한 단결력은 다른 학교출신들이 매우 부러워하는 것이다. 양뢰(楊)는 이렇게 말했다: "청화졸업생이 혼자서 기업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이유는 모르겠다" 설군(薛軍)은 이렇게 말했다: "청화졸업생은 비교적 뭉치기를 잘한다. 서로 격려하며 끌어주며 이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뒤에서 좋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응집력이 이처럼 강하여, 청화인들은 각양각색의 관계를 형성한다. 등봉(鄧鋒)은 전신(展訊) 무평(武平, 79학번 전자과)의 투자자이다. 주운범(周雲帆)은 억우(億友) 마운(馬雲)의 "앤젤투자자"이다. Tom과 Skype의 합작은 장범(張帆, 89학번 계산기학과, 그가 한 세콰이어의 5개프로젝트중 4개는 청화와 관련있다)이 왕뢰뢰(王雷雷)에게 소개한 것이다. 양동(羊東, 90학번 계산기학과)은 소프트뱅크 새부(賽富)에서 많은 청화졸업생(송가, 방흥동, 손굉빈등)에게 투자했다. 장범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공동의 DNA를 가지고 있고, 이것은 청화의 창업문화와 경쟁우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당연히 기업을 운영하는데에는 단합하는 것이 개인영웅보다 낫다. "이언굉(李彦宏)이 얼마나 잘하는지 봐라"라고 등봉이 말한다. 청화기업가들은 왕왕 뚜렷하게 모교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북대는 그렇지 않다. 왕지동(王志東, 83학번 무선전기과)는 말한다. 북대는 "겸용병포(兼用倂包)"를 숭상한다. "품격은 있지만, 최대의 품격은 하나의 통일된 품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상하지만, 북대기업가들은 청화에 대하여 상대방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왕지동의 신천지전자는 기본적으로 북대졸업생들이었는데, 서로 싸워서 좋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가급적 학교의 색채를 약화시켰다. 점격과기(點擊科技)는 이금도 청화과기원에서 일한다. 그 뒤에는 Google중국이 있고, 옆에는 소호(soho.com, 搜狐)가 있다. 왕지동은 스스로 '적의 진영'에 들어와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당초 그는 북대과기원에도 연락을 했었다. "정말 북대에 갔다면 스스로를 폐쇄시키게 되었을 것이다" 북대 건너편의 시나닷컴(Sina.com, 新浪), 바이두(baidu.com 百度)와 함께 모두 같은 학교졸업생들끼리 싸우게 될 것이다.

 

더욱 특이한 현상은 북대종횡(北大縱橫)은 50명이상의 청화의 석사박사를 데리고 있다. 왕박(王璞)은 이롷게 말한다: "반대의 현상은 아마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는 가끔 유민홍(兪敏洪), 왕지동과 만나기는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북대기업가들은 하나로 뭉치지는 않는다. 아마도 졸업생의 범위가 너무 넓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각 단과대학(예를 들어, 광화관리학원)별로 나누어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북대도 "북대기업가클럽"(사무총장은 海聞교수이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학교-기업협력체에 더 가깝다.

 

북대청화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견해도 있다: "북대는 남쪽 담장을 부숴버렸다. 안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청화과기원은 대문바깥에 있다. 근본적으로 퇴로가 없다" 그리고 두 학교간의 싸움은 마치 옥스포드-켐브리지간의 싸움과 비슷하다. 풍군(馮軍, 청화87학번 토목과)은 '애국자(愛國者, Aigo)' 북대청화장기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북대는 샘물, 청화는 용암>>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중국의 앞으로의 역사는 아마도 청화인들이 쓸 것이다...더욱 우수한 경영자와 행정관리가 될 것이고, 더욱 높은 의사결정권자로 승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대는 영원히 일종의 정신음유자의 이미지로 또다른 유형이 될 것이다. 북대정신과 청화정신이 결합되어야만 더욱 완벽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