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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중국의 명소 (남부)

모산도사(茅山道士)의 생활

by 중은우시 2007. 12. 25.

 

 

글: 중화유산

 

강소성 서남부에 위치한 모산은 최근 들어 점차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십만조산비시별(十萬朝山非是別)

오역자손휴견아(逆子孫休見我)

일반진향야유공(一半進香也有功)

효순아녀개위니(孝順兒女皆爲)

 

십만명이나 산을 찾아오는 것은 딴 것이 아니라네

불효한 자손들은 날 만나러 오지 말라.

하나, 반 만큼만 향을 살라도 공로는 있으니,

효성스런 자녀들이 모두 너희들이로다.

 

이것은 모산의 영관전(靈官殿)의 기둥에 쓰여 있는 주련(柱聯)이다. 이 주련은 원래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아라고 하는 말이고, 유사한 내용은 모산의 도관에 수도없이 많다. 지금 모산에 향을 사르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성황을 이루는 것을 보면, "십만조산"이라는 말이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천년도관이라면 아주 고요하고 조용한 장소이어야 한다. 그러나, 모산은 많은 경우에 시장바닥보다도 더 시끄럽다. 수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찾아와 향불을 피우고, 바삐 움직이는 도사들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도, 오래된 도관의 계단에는 시시때때로 유명인사, 거부 또는 뉴스에 나오는 인물이 등장하여, 요란한 모산에 또 다른 신비로운 색채를 더해준다.

 

모산의 향불은 확실히 아주 번성하고 있다. 비록 모산은 진강의 구용시관할이지만, 찾아오는 향객들중에서 현지사람들은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모산이 천백년이래로 쌓아온 유명세와 파급력은 이미 지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곳의 향객은 보통 사묘의 향객과 많이 다르다. 이곳의 향객은 대부분이 신도이고, 그저 길을 지나치는 관광객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정성껏 향을 사른다. 그저 한번 놀고 다시 오지 않는 경우와 다르다.

 

모산의 향(香)은 아주 특별하다. 다른 지방에서 향을 태울 때에는 한 자루씩 태우게 되지만, 모산의 향은 묶음으로 태운다. 파는 향도 모두 묶음으로 판다. 두껍던 얇던 어쨌던 모산에서는 거의 한자루씩 향을 사르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향도 매우 길다. 묶음으로 된 향은 땅바닥에 놓을 수 있다. 그곳에 놓여있는 향은 거의 사람키만큼 된다. 향객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두꺼운 향은 가격이 싸지도 않다. 비싼 것은 천위안이 넘는다.

 

과거에 음력그믐날과 새해가 교차하는 자시(子時)에 향을 바치는 사람들은 "삼모진군(三茅眞君)" 앞에 첫번째 향을 사르려고 다투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두주향(頭柱香)"이다. 이전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사방팔방에서 향객들이 그믐날 전에 모산으로 향하고, 산자락 아래에서 잠을 잔다. 모산의 북록에 "행향촌(行香村)"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이것때문에 이름을 얻었다. 현재는 서둘러서 가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현재 향을 사르는 것은 도관에 헌금한 금액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두주향"을 수십만위안을 호가한다는 것이다.

 

모산은 중국도교중 상청파(上淸派)의 발원지이고, 중국도교 모산종(茅山宗)의 요람이다. 동시에 "삼모진군" 축암(築庵)이 수도하고 기거했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모산에서는 뛰어난 도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유송(劉宋)시기에 모산은 당시 도성인 금릉의 후산으로, 조정이 병사를 모아서 적에 대항하거나, 제왕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거나, 관료선비들이 세상을 피해 은거하거나, 문인들이 거문고를 들고 붓을 놀리거나, 선남선녀들이 성현을 배알하는 경우에 모두 이곳에 모여들었다.

 

모산도사를 얘기하자면 당연히 먼저 "삼모진군"을 얘기해야 한다.

 

기원전82년, 60세가량된 섬서성 함양(咸陽) 사람인 모영(茅盈)이 구곡산(句曲山)으로 왔고, 산에서 약초를 채취하며, 세상사람들을 구제해주었다. 동굴에서 수련을 하여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원나라때의 <<모산지>>의 기록에 의하면: "어느 날, 왕군(王君)이 선서(仙書)를 받아, 서왕모(西王母)를 알현했다. 모영과 함께 갔는데, 쌍용신거를 몰았고, 백옥귀산을 날아서 넘어, 청림궁에서 서왕모를 만났다" 모영은 득도후에 한번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친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성사(聖師)의 부록(符)을 맏았으니 언제든지 천병(天兵)이 수호해주니 나를 때릴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삼관대제가 찾아내서 징계를 받게 된다' 부친은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여 지팡이를 들어 모영을 때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팡이는 부러져서 조각이 나서 날아가 버리고, 기둥과 벽에 박혀 버렸다.

 

범인이라면 수도를 통하여 신선이 되고 장생불로하고자 한다. 모영의 두 형제도 영화부귀를 쓰레기처럼 보고, 관직을 버리고 천리먼길을 걸어 구곡산으로 왔다. 마침내 원하는대로 상청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도교는 여러 신이 종합된 종교이고 방대한 신선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참배할 때는 가까운 곳에서 나타나고, 그 지방에서 가장 존경을 받게 된다. 모산에서 "삼모진군"을 모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에이다. 사실 도교의 기원은 고대의 무술과 진한시대의 신선방술이었다. 모산도사는 아주 유명하지만, 그다지 명성이 좋지는 않다. 약간 강호의 사기꾼과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다. 현재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모산도사는 수염을 기르고 도포를 휘날리면서 어떻게 요괴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어떻게 부적과 주문을 쓰면 된다고 말하며, 신통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온다. 귀신을 숭배하고 신선을 믿는 것과 방술 및 고대철학은 확실히 도교이전에 중요한 사상적인 내용이었다. 도사들이 종사하는 활동도 아주 복잡하다. 단초(壇醮), 포도(布道), 부록(符), 금주(禁呪), 점복(占卜), 기우(祈雨), 원몽(圓夢), 구역(軀疫), 사신(祀神)등이다. 이들의 교리는 아주 현기가 심오막측하여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모산도사는 또한 아주 특별한 점이 있는데, 바로 처를 가질 수 있고, 아들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산ㄷ교는 정일도(正一道) 부록파(符派)인데, 모산은 바로 정일도의 주요도량이다. 현존하는 도교는 크게 전진도(全眞道)와 정일도(正一道)의 두 계통이 있는데, 전진교의 도사들은 출가하고 도관내에서 생활하며 고기를 먹지 않고 내단수련을 중시하며 부록은 좋아하지 않는다. 성명쌍수(性命雙修)를 주장하고, 수진양성(修眞養性)을 정도로 한다; 정일도의 도사들은 일반적으로 가정을 가지고, 고기를 금하지 않으며 부록을 행하는 것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부적을 그리고 주문을 외며, 귀신을 몰아내고 요괴를 물리치며, 복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것등이다.